도쿄 시내를 도는 서울의 2호선에 해당하는 순환선 야마노테선은 1년에 한번, 12월 31일 밤부터 1월 1일 새벽까지 24시간 운행 체제에 들어간다.
일본에 오면 누구나가 한 번은 꼭 들리게 되는 하라주쿠역 바로 옆에 있는 메이지 진구 (메이지신사)에 가기 위해서다. 메이지 진구는 야마노테선 순환구역 안에 들어가 있다.
도쿄 시부야에 있는 메이지 진구는 메이지 천황과 쇼우켕 황태후에게 제신하는 신사다. 메이지 진구의 하츠모우데(初詣)는 매년 일본 최고의 참배자 수를 자랑한다.
하라주쿠 역에서 일년에 딱 한번 12월 31일부터 1월 1일까지 열리는 개찰구가 있다. 이 개찰구는 메이지 진구로 들어가는 입구와 직접 연결돼 있어 새해 첫날 하츠모우데를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날 하루만 딱 개방을 한다.
이날은 메이지 진구에 많은 포장마차가 늘어선다. 한국의 고속도로 휴계소에서도 팔고 있는 다코야끼를 비롯 야키소바, 라면, 당고, 오뎅 등을 판다. 1월 1일 0시에 제일 먼저 선조 들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 12월 31일 저녁 때부터 메이지 진구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파는 먹거리 장사들이다.
하츠모우데는 새해 첫날에 우리나라의 사당에 해당하는 신사에 가서 올해도 무탈하게 잘 지내게 해달라고 선조들에게 참배 드리는 일종의 전통의식이다. 일본은 뿌리깊은 불교 나라 이면서도 태어날 때와 자랄 때는 신사에 가서 선조들에게 아이를 잘 자랄 수 있도록 기도를 드린다.
예전에는 결혼식도 신사에서 많이 거행했지만 지금은 크리스찬이 아니더라도 교회에서 결혼 식을 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또한 생의 마지막 길을 갈 때는 절에서 불교 식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이 일반화가 되었다.
이렇듯 일본인들은 각 종교에서 좋은 것만 따른다. 여러 종교를 접하는 데도 거부감이나 거 리낌이 전혀 없다. 이런 의식구조로부터 매년 새해가 되면 일본인들은 대개 가까운 신사에 하츠모우데를 하러 간다.
하츠모우데를 하고 난 후에는 신사에서 파는 오미쿠지를 사서 그해 1년간의 운세를 점친다. 오미쿠지는 개개인의 운세를 봐주는 것이 아니라 7종류나 12종류의 내용이 적혀있는 제비를 뽑는 형식의 점이다.
7종류는 대길, 중길, 소길, 길, 말길, 흉, 대흉으로 나뉘어 운세를 점치는데 12종류는 내용이 좀 더 세분화 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므로 7개중 5개가 ‘길’로 좋고 2개가 흉으로 나쁜 점쾌가 나온다. 따라서 나쁜 운세보다 좋은 운세가 나올 확률이 2배나 높다
어느 해인가 연말연시에 서울에서 조카가 놀러 와서 우리 가족들도 관광 삼아 메이지 진구로 하츠모우데를 간 적이 있다. 1월 1일 0시에 하츠모우데를 하고 싶어서 31일 밤 9시쯤 가서 일년에 딱 한번 열리는 하라주쿠 개찰구를 통해 메이지 진구로 들어갔다.
그런데 우리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 지, 긴 줄을 선 채로3시간 이상 추운 데서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생전 처음하는 하츠모우데는 생경하지만 독특한 경험이었다.
특별한 목적이 없는 이벤트여서 금방 끝났지만, 가는 해 마지막 시간과 새해 첫날 첫 시간을 가족과 함께 누군가를 위해 기원한다는 것은 행복한 경험이었다.
하츠모우데가 끝나니 모두들 춥고 배가 고프다고 난리였다. 초등학교3학년 아들, 1학년 딸, 남편, 중학교1학년 조카 등 우리 모두는 쏜살같이 포장마차로 달려갔다. 염불보다는 잿밥에 관심이 있듯이, 우리 가족들은 하츠모우데 하는 차례가 왔을 때는 주변을 둘러보는 구경으로 끝낸 다음 포장마차에서 파는 여러 가지 음식을 사먹기에 바빴다.
그때의 오뎅과 야키소바의 맛이란, 한마디로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지금까지 먹었던 야키소바 중에서 아마 그 때 먹었던 야키소바가 가장 맛있었던 것 같다.
그 날 우리는 하라주쿠역에서 일년에 딱 한번 운행하는 새벽 시간에 야마노테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새해에도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면서. 아마도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바로 이 같은 기분을 맛보기 위해 매년 집 근처 신사를 찾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