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2008년까지 김정일 총서기의 후계자로서 유력시됐던 차남 정철이 싱가포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kbs는 정철이 싱가포르를 극비 방문해 영국의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튼의 공연 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2006년 독일에서 열린 에릭 클랩튼의 콘서트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4년만이다.
15일에는 북경에서 평양으로 향하는 직행편이 있었다. 정철이 북경을 경유해 귀국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마카오에 있는 형(정남)처럼 아버지의 생일을 해외에서 보냈을 수도 있다. 형은 카지노에, 동생은 락 가수의 공연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굶고있는 북한 국민들이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생각해보면 기가 막힌다.
15일자 <조선일보>는
"김정철은 이복형 김정남이 후계구도에서 배제된 뒤 유력한 후계자로 평가받기도 했다. 김정철 후계설은 지난 2005년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철이 만찬에 참석한 사실이 외신에 알려지면서 거론됐다. 당시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과 일본 마이니치 신문 등 외신들은 김정철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가장 유력하다고 분석했었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이는 조금 이상하다. '김정철 후계 유력설'을 최초로 보도한 곳은 일본 미디어가 아닌 한국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그 증거는 다음과 같다.
북한 문제에 정통한 것으로 알려진 <중앙일보>는 2005년 7월 19일자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환갑을 맞은 2002년께부터 평양의 노동당 조직지도부 사무실에 '김정철(김 위원장의 차남) 동지의 사업체계를 세우자'는 구호가 걸리는 등 후계 체제 수립을 위한 움직임이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2006년 1월 17일자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둘째 아들인 김정철(25·사진)의 사진이 노동당 고위관리들의 사무실에 걸리기 시작했으며, 김정철은 고위 간부들과 함께 작년 말 함북 회령의 할머니 김정숙(김 위원장의 생모)의 동상에 헌화한 것으로 알려졌다""북한에서 고위층에 있던 한 탈북자는 16일 “중앙당(노동당) 고위관리들의 사무실에 김일성·김정일·김정철의 ‘3대 장군’ 사진이 부착되기 시작했다는 확실한 정보가 있다”고 말했다. 이 탈북자는 “김정철은 현재 노동당 중앙위 조직부 책임부부장에 임명돼 후계 수업도 받고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며 '김정철 후계설'을 전했고, 이를 요미우리 신문(2006년 1월 17일자)이 그대로 보도하기도 했다. 후계자가 정은으로 최종적으로 밝혀진 2009년 1월까지, 한국 미디어는 북한 전문가로 알려진 세종연구소의 정성장 연구원의 분석을 토대로 '김정철 후계설'을 주구장창 보도해 온 것은 불변의 사실이다.
물론, 조선일보가 지적하는 마이니치 신문도 2007년 11월 25일자로
"정철 씨가 후계자로서 유력하고, 최근 노동당 조직 지도부 부부장에 발탁됐을 뿐 아니라 김 위원장의 집무실을 수시로 출입하고 있다"라고 알린 것은 사실이다.
마이니치는 2008년 9월 25일자 신문에서도
"정철 씨가 북한의 최대 요직 중 하나인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에 발탁된 것이 23일 밝혀졌다. 북한에 정통한 복수의 관계자가 마이니치 신문의 취재에 밝혔다"고 '정철 후계설' 보도를 계속해왔다.
심지어 23일자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렸다.
"정철 씨는 김 총서기가 있는 '중앙당 본청사'에 집무실을 두고 지시를 받고 있다. 김 총서기가 조직 지도부에서 정치활동을 통해 당조직을 장악하고 후계자로 임명된 경위를 미뤄보면, 정철의 후계는 유력하다. 관계자에 따르면, 정철은 몇 년전부터 조직 지도부에 배속돼 올해 부부장에 승격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무 경험이 적기 때문에 김 총서기의 측근인 이제강 제 1부부장이 후견인으로서 집무를 보좌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동생 정운 씨는 당의 요직이 아니라 조선인민군에 배속돼 후계 레이스에서 사실상 탈락했고, 정남 씨는 '조직 지도부 소속' 설이 한때 나왔지만, 실제로는 소속되지 않은 '방임 상태'로 여겨진다." 지금 보면, 실로 우스꽝스러운 내용이 아닐 수 없다. '북한에 정통한 관계자'가 정말로 정통한 관계자였는지 의심될 정도다. 마이니치의 당시 북경 특파원은 이후에도 '정통한 관계자'를 정보원으로서 신뢰해 '특종'은 커녕, 대단한 오보를 해버린다.
14일, 매스컴 윤리 간담회의 월례회의가 있어 '북한의 동향과 보도의 역할'에 대한 강연을 의뢰받았다. 일본 잡지협회, 일본 민간방송연맹, 일본 서적출판협회, 아사히신문 논설위원 등 매스컴 관계자 50여명이 출석했다.
이 날 강연에는 북한에 대한 오보가 많다는 사실을 다룬 '미디어와 오보'를 주제로 채택했다. 일본의 매스컴이 한국의 오보를 무조건적으로 신봉해 내보내는 폐해와 그 후유증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강연을 위해 과거 5년간 한국 언론의 북한 관련 오보 기사를 기사를 철저히 조사했다. 백서로 만들 수 있는 수준의 양이 채워졌다.
확실히 일본 미디어도 한국이 홍수처럼 내보내는 북한 관련 정보에 편승해,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고 신뢰할 수 없는 정보를 내보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간담회에서는 그 일례로 마이니치 신문의 기사와 주간지 '아에라'의 기사를 다뤘다. 이는 당사자인 마이니치 신문과 주간지 기자가 간담회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도가 지나치는 '허위 보도'를 했기 때문이다.
우선, 마이니치 신문은 2010년 4월 20일자 1면 톱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 사진을 싣고 후계자 '정은'의 사진이라는 특종 보도를 했다.
"북한의 김정일 총서기(68)의 최유력 후계자 후보로 삼남 정은(26)의 사진을 조선중앙통신과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등 국영 보도기관이 3월초에 보도했다. 북한의 공식미디어가 정은 씨의 모습을 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정은 씨에게 권력 이행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는 모습이 부각됐다"는 기사를 첨부했다.
나는 당시 마이니치의 기사를 읽고, 사진을 검증한 결과, 오보라고 확신했다. 한국의 정부당국자도 기사가 나온 당일
"일본 미디어가 2009년에 이어 부정확한 사진과 함께 오보를 내보냈다"며 보도를 일축했다. 왠만하면 스스로 '오보'임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 미디어도 연달아 '오보'라는 기사를 실었다.
그럼에도, 마이니치는 4월 21일 저녁에도 외신 부장의 이름과 함께
"기사는 충분한 취재에 근거해 있고, 내용은 확실한 사실이다"라는 담화를 발표했다. 나는 마이니치의 당당한 태도가 놀라움을 넘어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9월 하순에 열린 당대표자회의에 진짜 정은 씨가 등장한 것으로, 마이니치는 10월 6일이 되서야 겨우 '오보'인 것을 인정하며 정정 기사를 내보냈다. 오보를 인정하는데 무려 반년이 걸린 것이다. 본인의 사진이나 영상이 공개되지 않았다면, 기간은 더 길어졌을 것이다.
정정 기사 내용에는
"정보원에 과도한 신뢰를 보냈던 것이 오보로 연결됐다"라고 해명했지만 이는 한마디로 '불확실한 정보원'에게 기댔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사기꾼'에게 당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주간지 '아에라'는 2009년 6월 29일호에서 '김영춘 인민 무력상의 망명설'을 보도했다.
"김영춘 인민 무력상이 6월 13일 중국에 입국한 뒤 2주가 넘는 기간동안 귀국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함께
"가족이 다 함께 출국했다"라고 보도하며 망명설을 밝혔다.
무력상에 취임한지 얼마 되지않은 시점에 망명할만한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7월 13일호에는
"김정각 부국장도 국방장관의 뒤를 이어 북한을 떠났다는 정보가 있다. 두 사람 모두 정운 씨의 후계 옹립에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여겨진다"라며 망명 가능성을 전했다.
그런데 7월 13일호가 한창 팔리고 있었던 9일, 북한에서 김일성 주석 추모식이 열렸고, 단상에는 '망명했음이 분명한' 김영춘 인민 무력상이 김 총서기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라를 떠났다'고 보도한 김정각 인민군 총정치국 제일부국장도 김영춘 무력상의 옆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 호에 정정 기사도 없었던 것을 보면, 아에라는 오보가 부끄럽지도 않았던 것 같다.
나는 "허위 정보를 통한 것인지, 추측으로 기사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이 불황 속에서 점심 밥값보다 비싼 구독료(380엔)을 지불하는 독자를 위해서라도, '소설'이 아닌 검증된 기사를 실어줬으면 좋겠다"라고 당시 블로그에 썼다.
또, 이 날 강연에서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 매스컴이 북한 체제를 흔들기 위한 심리전, 정보전의 일환으로 허위 정보를 흘리는 것은 일종의 '국가 정책'이다. 일본 미디어가 거기에 편승해 오보를 연발하는 현 상황이 한심하다"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상 : 오보를 낸 마이니치신문 4월 1일자, 하 : 기사가 '사실'임을 주장하는 외신부장 서신전문)
변진일(코리아리포트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