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니즈 기사를 실었으면 사진이라도 한 장 넣어주던가, 기자가 센스가 없다"
일본 연예 관련 기사를 맡고 있다보니,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소속사 자니즈 아이돌에 관한 기사를 종종 쓰게 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자니즈 아이돌 기사에는 그들의 사진이 한 장도 없다. 때문에 제이피뉴스는 가끔 독자들의 불만과 항의의 메시지를 받는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자니즈는 1975년에 설립된 남성 아이돌 중심 프로덕션으로 레코드회사, 음반, 영화제작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연예기획사다. 사장은 자니 기타가와 씨이기 때문에 회사이름이 자니즈가 되었다고 한다.
소속된 스타는 스마프, 아라시 등 일본 대표 남성 아이돌을 포함해 토키오, 킨키키즈, 캇툰, v6 등 모두 일본 연예계를 주름잡고 있는 남성 톱스타들이다. 이들은 아이돌 활동을 기본으로 하는만큼 음반이나 공연이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은 물론이고 연기자로서도 활발히 황동하고 있다.
특히 한국에서도 유명한 기무라 다쿠야는 '시청률의 남자'라고 불리우며 90년 대 후반부터 2000년 대 일본 드라마의 전성시대를 이끌어왔다. 제 2의 스마프라 불리우며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국민아이돌 아라시는 1분기에 한 명씩 각 방송사를 돌아가며 주연을 맡고 있다.
일본방송, 연예, 문화계에서 자니즈가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엄청나, '자니즈 없이는 방송프로그램을 만들수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사진이야기로 시작해서 왜 장황하게 자니즈에 대한 설명을 하느냐 하면, 이처럼 영향력이 대단한 자니즈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일본 언론사들이 자니즈 소속 연예인의 사진을 싣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제이피뉴스에서는 자니즈에 대한 취재를 꽤 여러번 했다. db에는 스마프며 아라시, 토키오, nyc 보이즈 등 자니즈의 사진이 가득 들어있다. 그러나 그 사진들은 한번도 제이피뉴스에 실리지 못했다. 아니, 실을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자니즈가 자사 소속 연예인들의 인터넷 사진게재를 철저하게 금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상업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물론, 보도 목적이라도 사진을 게재해서는 안된다. 자니즈에 관한 한, 이것은 일본매스컴 전체의 암묵적인 룰이기 때문에 특별히 자니즈 측에서 부탁을 하지 않아도 매스컴이 알아서 자체검열을 한다.
얼마전 만난 한국 모 방송국 특파원에 따르면, 자니즈 아이돌은 한국 tv에서 방영되는 것도 금지라고 한다. 인터넷이 아니라 tv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초상권 계약관계가 성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해외 tv까지 24시간 감시할 수 없으므로 때때로 자니스 아이돌은 한국 전파를 타고 있지만 말이다.
따라서 지난해 스마프가 20주년 콘서트를 했을 때도, 아라시 음반이 골든디스크 10관왕을 차지했을 때도, 그들의 기사에 해당하는 사진을 실을 수가 없었다. 가끔 일부 매체에서 연예인의 캐릭터를 사진 대신 일러스트로 그려 기사에 넣기도 한다.
이처럼 사진을 보고 따라 그린 일러스트는 용납이 되지만, 사진은 실으면 안되는 것, 이것이 자니즈와 인터넷 매체의 관계다.
만일 이런 룰을 어기고 사진을 무단게재 하면, 이후 자니즈는 물론 자니즈 관련 모든 행사에 서 출입금지를 당하게 된다. 심할 경우, 엄청난 액수의 초상권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다. 제이피뉴스는 한국어로 뉴스를 발신하는 외신이지만, 일본에서 취재하기 때문에 일본 룰을 지킬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제이피뉴스가 자니즈 사진을 싣지 못하는 이유다.
얼마전, 일본 영화상 수상식에 다녀왔다. 시상식에는 평소 이런 이벤트에서 보기 힘든 스마프 이나가키 고로가 참석했다. 13인의 자객이라는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사극에 도전한 이나가키는 남우조연상을 수상, 미디어의 뜨거운 플래쉬 세례를 받았다.
그런데 행사 맨 마지막 수상자 단체 촬영에서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다. 단체 사진에 이나가키 고로가 들어가면 인터넷 매체들은 사진을 쓸 수 없게 되고, 이나가키 고로가 빠지면 신문, 잡지에 실릴 사진이 마땅치 않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절충된 방법이 이나가키가 없는 사진과 이나가키가 있는 사진을 찍어 각자 매체에 맞게 나눠쓰자는 것이었다.
취재진이야 당연히 납득하고 있었지만, 문제는 이나가키를 위해서 몇 분동안이나 같은 포즈로 카메라 앞에 서야하는 다른 수상자들이었다. 수상자 중에는 60~70대 원로 스타도 있었고, 일본 영화계에서는 스마프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는 대스타들도 가득했다. 연기경력만 따져도 이나가키의 몇 배가 되는 선배들, 그러나 그들은 아무 불평없이 계속된 촬영에 응했다.
물론 이 상황에 가장 진땀을 뺀 것은 이나가키였다. 자신 때문에 몇 번이나 똑같이 포즈를 취해야하는 대선배들에게 미안해 어쩔 줄 모르며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선배들은 '이나가키가 문제가 아니라 자니즈니까 어쩔 수 없지'라며 이해하는 모습. 일본 연예계에서 강력한 위치를 차지하는 자니즈 파워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자니즈는 왜 그렇게 철저하게 인터넷 매체의 사진 게재를 막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자사의 아이돌 초상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인터넷은 잡지나 신문과 달리 사진이 쉽게 퍼져나가고 때로는 악용되는 경우도 있다. 합성사진을 만들어 허위사실을 유포할 수도 있고, 인터넷 사진을 이용하여 불법 캐릭터로 쓰일 수도 있다.
또한, 아이돌의 초상권은 주요한 수익이 되기 때문에 이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번 카라 분열사건으로 알려졌다시피, 일본에서도 가수, 아티스트의 음반 수익셰어 비율은 매우 작은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스타들이 훨씬 풍족한 생활을 하는 것은 초상권을 이용한 각종 스타상품, 즉 굿즈 판매를 통해 많은 이익을 얻기 때문이다.
공식석상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신비주의 스타라면 굿즈가 더 잘 팔리는 것은 당연한 사실. 자니즈는 특히 인터넷 상에서 사진을 취급할 수 없기 때문에 초상권 상품이 더욱 인기를 끈다. 초상권에 대한 민감한 반응은 단순히 자니즈만 부유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에서 얻을 수 없는 정보를 실을 수 있기 때문에 잡지며, 신문 등 유료매체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일본에서도 일부 누리꾼들은 '자니즈가 뭔데 사진도 못 싣게 하냐'며 불만을 터트리기도 하고, 자니즈의 특권의식에 대한 성토가 벌어지기도 한다. 요즘같은 인터넷 스마트 폰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비난도 있다.
인터넷매체에서 기사를 쓰고 있는 기자도 자니즈에 대한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단체사진에 조그맣게라도 자니즈 아이돌 사진이 들어있으면 금세 어딘가에서 규제가 들어오니, 여간 피곤한 것이 아니다. 최근에는 자니즈 뿐만 아니라 인기 연예인들의 인터넷 사진규제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철저한 초상권 보호의식이 있기 때문에 일본 연예 산업이 튼튼하게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한국에도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에는 서태지와 아이들 스티커며, 왕조현 책받침, 주윤발 브로마이드가 날개돋힌 듯 팔릴 때가 있었다. 그런데 그 많던 스타캐릭터 상품숍은 이제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원하는 것을 너무 공짜로만 얻으려고 한 것은 아닐까. 가끔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