귄터 그라스(gunter grass)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충격적인 내용의 명작 <양철북>을 기억한다. 바닷가 한복판의 네 사람.
3살 이후 성장이 멈춘 오스카와 그의 어머니 아그네스 그리고 그녀의 첫 애인 얀과 남편 알프레트...
바닷 속에서 건져올린 잘려나간 말대가리의 눈과 코, 귀... 구멍이란 구멍 속에는 온통 뱀장어가 우글거린다.
아버지는 장어를 잡느라 혈안이고 경악한 어머니는 구토를 한다. 정부 얀은 그녀의 등을 두드려주고
그리고 오스카는 태연히 양철북을 친다. 집으로 돌아와 장어요리를 식탁에 내 놓고 먹으라 강요하는 남편과 한사코 거부하는 아내 아그네스. 보다 못한 정부 얀의 위로의 손길을 뿌리치고 뱀장어를 먹어치우는 그녀.
그 후, 얀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에 스스로 자학하며 정신이상이 되고 난 후 부터 정어리 통조림만 먹고 나중에는 급기야 날 생선까지 먹어치우는 아그네스,
그리고 창너머로 그녀를 묵묵히 바라보는 아들 오스카...
내 기억속에 담겨있는 생선에 대한 잔상이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2011년 1월, 도쿄의 긴자에 있는 코보 갤러리 3층, 콘 미치코 전에서 '생선'이란 존재를 다시 만났다.
파충류처럼 미끈덩한 질감, 비릿한 냄새, 단조로운 선,그리고 눈꺼풀이 없는 동그란 눈...
왜 하필이면 오브제(objet)의 주 소재가 생선이냐는 나의 질문에 콘 미치고는 '생선의 눈을 좋아합니다' 라고 대답해 주었다.
'생선의 눈...이라면 살아있을 때? 혹은 죽어있는? 어느 쪽을 비중있게 염두에 두시는지요?'
'글쎄요...저는 생선을 통해서 삶과 죽음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 중에서도 죽은 자연의 상태(死せる自然)라고나 할까요...'
죽은 자연의 상태라면...잘 알아듣지 못하는 나에게 이이자와 선생이 "죽은 자연의 상태라는 말로 번역되는 이 말은 이태리어로는 natura morta, 영어로는 still life 그리고 정물(靜物)"을 이르는 말이라 설명해 주신다.
시각적인 매개물인 정물 사진을 통해 작가의 상상력은 무한의 세계를 유영한다.
촛점을 잃은 동그란 눈, 거친 새털사이로 비집고 나온 미끈한 질감의 넉넉해 보이는 생선 몸뚱이, 그리고 그 옆으로 쉬어가듯 걸쳐있는 비쩍마른 닭발과 마녀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길다란 발톱. 무념무상의 표정으로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전체적인 실루엣은 살풍경한 소재의 집합임에도 불구하고 안정된 구도 속에서 넘치는 여유와 유머러스한 상상력마저 제공한다.
그리고 바로 그 옆으로 손님처럼 조용한 모습으로 대각선 눈높이를 맞추고 있는 주소재로서의 생선 대가리, 꼭 다문 입에서 활짝 피어난 꽃 한 송이, 관음상의 손가락 모양같기도 하고 뒤집으면 서양의 퍽큐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또 하나의 닭발.
물고기...
불교에서는 풍경과 목어, 담목 등 물고기의 형상이 많이 등장하며, 명나라와 청나라에 유행했던 음양어태극도에서는 두 마리 물고기의 눈을 표시하는 점을 찍어 태극을 표현하는데 그 영향을 받은 몽골과 티베트는 현재도 물고기의 눈을 그대로 유지한 태극문양을 국기에 사용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그리스도 최초의 상징으로 알려졌으며 그리스어로는 이크튀스라 한다. 초기 기독교 신자들이 로마의 박해를 피해 기독교인들의 신분을 서로 알아보는 암호로서 사용되었다. 시끌벅적한 수산시장이나 식탁에서 마주하던 생활속의 생선이라는 존재가 콘 미치코의 작품을 통해서 예술적인 대상으로 거듭나면서 색다르게 다가오는 가치. 이것이 아마도 예술가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오브제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아닐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만지지 마!'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가장 많이 입에 올리는 교육적인 단어는 '만지지 마!' 이고 아이가 태어나 말을 알아들으며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잔소리 역시 '만지지 마!' 이다.
한국에서는 '지지'라는 토속적인 표현을 쓰기도 하는 '만지지 마!'에 대한 심리적 배경은 지나칠 정도로 예민한 위생관념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또 다른 면으로 아이가 이런 저런 것을 만지고 나서 엄마들이 뒤치닥거리를 많이 해야하는 '귀찮은' 이유도 간과할 수 는 없다. 깨끗이 씻겨야 하고 옷도 세탁해야 하며 어지러진 장소를 청소도 해야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가 흙장난을 비롯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지는' 행동에 대해 극도로 예민한 안테나가 자동으로 움직인다.
유아기, 어떤 아이는 하얀 쌀밥을 움켜잡아 손바닥에 달라붙은 밥알을 혀로 핥아 먹고, 예쁜 딸기를 거머쥐는 순간 물크덩 짓이겨져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빨간 즙을 먹느라 온 얼굴과 입가에 딸기 범벅이다.
또 어떤 아이는 엄마가 먹여주는 작은 스픈이 한 입에 쏙 들어가 입만 오물오물한다. 한 아이는 지저분해 보이고 한 아이는 깔끔해 보이지만, 두 아이의 뇌 속으로 전달되는 질감에 대한 느낌과 촉감 그리고 따스한 손을 거쳐 전달되는 음식 맛에 대한 미각 그리고 냄새와 소리에 대한 정보는 하늘과 땅의 차이일 것이다.
어린 시절, 젖은 흙장난에 대한 기억으로 도예가가 된 사람도 있고 하얗고 몰랑몰랑한 밀가루 반죽에 대한 기억으로 제빵사가 된 사람도 있는 것을 보면 손에 의한 오감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물오징어나 문어, 생선과 꽃, 과일 등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에 대한 나의 촉감은 어느 정도일까. 콘 미치코의 주된 소재, 오브제 작품을 보면서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이 마련해 준 음식을 수저나 젓가락 혹은 포크를 사용해서 먹은 것이 전부였고, 성장해서는 부엌에서 음식을 처음 만들어 볼 때 였다. 커다란 소고기 덩어리를 도마에 올려놓고 칼로 잘게 썰 때, 움찔움찔 손에 감기던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너무도 창피한 고백이지만 그 후로 지금까지 물오징어나 생선 그리고 육류 등 장보기를 할 때, 아예 다듬고 썰어 달라해서 사온다. 그리고 부엌에서는 분홍색 고무장갑을 끼고 흐르는 수돗물에 깨끗하게 씻어서 요리를 하는 정도이다.
손으로 '만졌을 때' 느껴지는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이질감과 나아가 접촉이나 스킨쉽에 대한 기피현상은 어쩌면 유년기의 왜곡된 교육탓일수도 있고 타고난 천성일 수도 있겠지만 감성적인 면에서 어느 한 부분 심하게 비어있다는 사실을 감출수는 없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작가와 나의 세계는 거의 극과 극의 대립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콘 미치코의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질감은 범상함을 뛰어 넘는 대단히 예민한 촉감을 아주 효율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온갖 종류의 생선과 과일로 치장한 전위예술과도 같은 오브제의 촬영이 끝난 후 그 재료의 뒷처리에 대해 궁금하다는 질문에 먹을 수 있는 것은 먹고 먹을 수 없는 것은 뒷 마당에 묻는다고 한다.
상상이 하나의 현실이 되고 그 현실은 다시 음식이 되어 몸 안으로 들어가 작가의 일부가 되는, 시작이 끝이고 끝이 시작이 되는 뫼비우스의 띄가 연상되면서 조금 전과는 또 다른 시각과 느낌으로 작가의 작품을 한 번 더 둘러본다.
끈적하고 미끈거리는 질감을 중화라도 시키듯, 꽃과 과일이 어우러지는 콘 미치코의 오브제는 소재의 균형이라는 면에서 조화의 극치를 이룬다. 어떻게 이런 소재로 이런 이미지를? 라는 반문이 절로 나오는 동시에 '아... 역시...' 라는 탄성이 뒤따른다.
메론과 문어발의 조합이지만 그것은 난소를 연상케하기도 하고 여성의 외음부 모양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드레스, 하이힐, 부츠, 모자, 브래이지어 등 여성적인 주제는 지극히 그로테스크하게 연출된다.
그러나 파충류의 그것을 연상시키는 물오징어와 생선 등의 통념화된 지적 선입견을 배제하고 그 '느낌'만을 강조한다면 '촉촉함과 부드러움' 그 자체이다. 그것은 태아의 상징이기도 하고 사춘기 소녀의 상징이기도 하며 농익은 여자의 몸에 대한 상징과 더불어 본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몬스터를 연상시키는 기괴한 모습으로 연출된 작품은 본질을 외면한 채 '아름다움만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작가의 통렬한 일침이기도 하고 본질을 외면한 채 '아름다움만을 판단하는 잣대'에 대한 작가의 알러지와도 같은 거부반응이기도 하며 본질을 외면한 채 '오로지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자들의 열망'에 대한 작가의 속깊은 충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따스하고 촉촉한 어머니의 자궁 속 기억과 사춘기, 그 아름다웠던 시절의 알 수 없는 통증. 기괴한 모습에서 풍기는 몽환적인 순수함이 묻어나는 작가의 작품에는 본질로 돌아가고자 하는 노스텔지어적인 회귀본능으로 시간이 정지된 듯한 느낌이다.
사진이라는 시각의 극대화, 그것을 역이용해서 리얼리즘의 본질에 다가서고자 하는 작가의 표현방법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에필로그>
이번 달 부터 도쿄의 사진 갤러리에 일본의 사진 평론가 이이자와 고타로飯沢耕太郎 선생과 함께 동행할 수 있어서 너무도 기쁘다.
조금 일찍 나와 약속한 카페에서 기다리면서 오늘은 어떤 갤러리에서 어떤 작가를 만나게 될까 한껏 들뜬 마음에 커피향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그냥 습관처럼 홀짝이며 창밖을 내다본다.
긴자의 그 화려한 거리에 아주 오래된 모습 그대로의 독특한 갤러리가 있고 그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콘 미치코라는 일본의 여성 사진 작가의 작품을 보러 가자는 선생의 말을 듣고 어떤 분일까 호기심이 몽글몽글 피어난다.
여기서 잠깐, 긴자까지 가는 전철을 타고 가면서 이이자와 선생으로 부터 들은 설명을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콘 미치코씨는 일본의 현대 여성 사진가이다. 그녀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선 컨스트럭티브 포토constructive photo 에 대해 알아야 한다. 이것은 여러 종류의 오브제를 구성해서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 그것을 촬영해서 작품으로 거듭나는 것을 이른다. 일본에서는 콘 미치코씨, 미국에서는 바바라 카스텐barbara kasten, 로리 시몬 laurie simmons, 샌디 스코글런드sandy skoglund 등 유명한 작가를 들 수 있다. 콘 미치코씨를 비롯 위에 열거한 인물이 모두 여성작가라는 점이 흥미롭다.그 중에서도 콘 미치코씨의 경우 처음부터 지금까지 '정물'만을 촬영해왔다는 점에서 분명 특이한 사진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종일관 '자연'을 이용해서 기발하면서도 기괴한 '정물'을 리얼하게 촬영해나가는 이 작가의 세계를 지금부터 감상하러 가 보자>
긴자의 번화한 거리 한복판에 있는 오쿠노奥野 빌딩은 건물 전체가 모두 사진 및 미술 갤러리이다. 지하 1층과 3층에서 콘 미치코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우선 지하로 발길이 향한다.
축축한 습기와 더불어 훅~ 풍겨오는 곰팡내.
냄새에 유난히 민감한 나로서는 역겨운것이 당연할 터이다.
그러나 사진촬영을 하느라 스튜디오를 찾아다니던 그 시절(대부분의 스튜디오가 지하에 있었다) 어느 날 부터인가 지하의 그 독특한 냄새에 익숙해졌다.
무겁게 느껴지는 곰팡내를 조금이라도 중화시키려고 마셨던 커피. 비라도 오는 날이면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개의 냄새가 코끝을 감돌며 가끔 향수를 불러일으키듯 그리워지기까지 한다. 그와 같은 뒷이야기는 모두 생략하고 '저는 이런 지하의 냄새가 좋아요' 계단을 내려가며 혼자 중얼거리듯 작은 소리로 말하자 옆에 있던 이이자와 선생이 '이상한 취향이네'라며 웃으신다.
도쿄 최고의 부자동네 긴자, 화려한 거리와는 달리 건물의 내부는 아주 오래된 모습 바로 그것이다.
낡고 거무튀튀한 바닥은 몽테스크리스토 백작이 갇혀있던 스산한 감옥과도 같다.
복도 한 구석에 놓여있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세면대를 지나 방(사실은 전시실)으로 들어서니 병풍과도 같은 모양의 이미지 두 개.
으스스한 지하의 분위기와 딱 어울리는 호러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아서 방안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꼴깍 마른침이 넘어간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가까이 다가가 바라본 이미지는 해괴하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창호지 문살 하나하나에 들어있는 군상은 마치 서민 아파트에 세들어 살고 있는 물고기들이 오후의 달콤한 낮잠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스냅으로 잡은 듯한 느낌이다. 각양각색으로 늘어져 잠자는 폼들이 재미있어 혼자 쿡 소리나게 웃음이 나왔다.(오른쪽)
또 하나는 햇살 따스한 어느 봄 날, 깊은 바닷 속으로 소풍나온 꽃게들이 여유롭게 점심식사를 즐기는 모습같다. 어디선가 기분좋게 흥얼거리는 작은 합창소리가 들려올 것 만 같다. (왼쪽)
언뜻 불쾌해 보이는 이미지들이었는데 막상 가까이 다가서보니 유쾌한 바닷 속 일상의 단면처럼 보인다.
3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손으로 열고 닫는 자바라 식의 문이다. 전철에서 들은 이이자와 선생의 말대로 여기는 모든 것이 독특하다.
3층 복도 벽을 채우고 있는 전시 홍보용 팜플랫을 보고서야 여기가 사진 갤러리임을 실감한다. 코보(巷房)라고 쓰인 유리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서니 작가 콘 미치코 씨가 환하게 웃으며 맞아준다.
강렬한 붉은 색 스카프가 마치 검푸른 깊은 바닷속을 유영하는 길다란 물고기와도 같다.
작가의 안내로 미로처럼 옆에 붙은 방과 또 하나의 방에 들어서자 천장에 붙어있는 낡은 형광등과 또깍이 스위치가 보인다. 지금도 이런 형광등이 그것도 도쿄의 긴자 한 복판에 있는 건물에 남아있다니...
별거아닌 것에 감동하는 나를 보고 콘 미치코 씨는 이 방은 아주 오래 전에 어떤 할머니가 미용실을 하며 살았는데 죽고 난 후에도 전혀 수리나 공사를 하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해 준다.
그러고 보니 작품 뒤로 그 시절 사용했던 동그란 미용거울이 벽에 그대로 붙어있고 오래된 페인트는 머드 마사지를 마치고 일광욕을 즐기는 코끼리의 등가죽처럼 온통 바싹말라 버석거린다.
게다가 전시된 작품의 촬영 배경이 다름 아닌 바로 이 자리라는 설명을 듣고 마치 어떤 깜짝 이벤트 행사가 연달아 벌어지는 것 처럼 놀라움이 계속된다. 진주황색의 약간은 촌스러워보이는 바닥에 인형과 생선 그리고 가재로 가득한 오브제가 자연광으로 촬영한 흑백의 이미지로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아, 내가 지금 리얼리즘의 한계를 뛰어 넘는 초현실주의 작가의 세계 바로 그 현장에 있구나 하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깜짝 이벤트의 최종편...
두꺼운 코트를 입은 채 사진을 찍는다고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방 한구석에서 작은 물결처럼 폴랑이던 a4 용지의 하얀 프린트물 한 장, 그 정체가 궁금하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m: ed.15 189,000 와 같은 내용이 기입되어 있다.
미디움 사이즈 에디션 넘버 15, 그리고 18만 9천엔
기억의 필름을 되감아 두 달 전으로 돌아간다.
인사동의 어느 갤러리, 대설주의보가 내리던 날이었다.
흑백톤의 사진들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그 중의 한 이미지를 보는 순간 잘 알고 지내는 a 선생이 생각났다. 평소 그분이 좋아라하는 종류의 이미지여서 이번 설 날에 과일이나 고기 대신에 이 사진을 선물하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옆에 서 있던 작가에게 '이 사진은 가격이 어느 정도 하나요? 라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그 작가는 몹시 당황스런 표정으로 '그걸 왜 나에게 물어요? 갤러리 관계자에게 문의하세요!'라고 말하고는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아...그렇구나...예술하는 사람에게 돈이 얼마냐고 묻다니...생각이 짧은 어처구니없는 내 모습... 옆에 함께 있던 사진 동호회 친구보기가 무안해서 시선을 피했던 순간.
지금도 생각하면 뒷통수가 뜨근거릴 정도의 그 기억은 불과 두 달 전, 그리고 오늘.
일본의 유명한 여성 사진작가의 작품 바로 옆에 소리없이 나부끼는 깃발처럼 다소곳하게 붙어 있는 가격 안내표. 이 다음에 내가 사진전을 하게 된다면 작품 판매를 위한 나의 선택은 어떤 것일까... 아직 마음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다가올 그 때를 위해 지금 나는 아주 소중한 경험을 두루두루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이자와 선생 덕분에 독특한 갤러리와 독특한 작가를 만날 수 있어 너무도 감사드린다.
게다가 작가와의 인터뷰도 할 수 있었고 실내 촬영도 맘껏 담아 올 수 있어서 원고를 작성하면서 많은 참고 자료가 되었다.
다음 달에는 또 어떤 갤러리를 소개해 주실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집으로 돌아와 콘 미치코씨에 대해 검색하던 중 <still lifes> 책을 발견하고 인터넷으로 구입했는데 아직도 배송중...이라는 메시지만 뜨더니 관계자에게 전화가 왔다. 단 한 권 남아있던 책의 귀퉁이가 조금 떨어져나갔는데 그래도 주문하겠느냐 확인을 한다.
나는 두 말 않고 빨리 보내달라 했는데 설 연휴에 밀려서 앞으로 나흘 정도 더 기다려야 한다.
소설가 무라카미 류의 서문에 미술평론가 토시하라 이토의 후기... 어떤 내용일까 너무도 궁금하다. 콘 박스도 사고 싶은데 1000부 한정이라하니 다음에 작가선생님을 만날 기회가 있으면 꼭 개인적으로라도 구입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얼핏 그로테스크하고 음산해 보이는 작가의 작품은 보면 볼수록 소녀의 순수함이 아프게 베어있는 것 같아 자꾸 되돌아 보게 하는 중독성마저 느낀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더 만나서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작가의 사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 가득이다.
콘 미치코 "michiko kon
1955 년 일본의 가나가와현의 가마쿠라(神奈川県)에서 태어난 콘은 소케이미술학교創形美術学校에서 목판 인쇄, 콜라주 그리고 조립을 공부하며 판화과를 졸업했다.
1978년 졸업과 동시에 도쿄 사진 전문학교에서 2년간 공부하면서 사진을 시작하였으며 수상경력으로는 神奈川県美術展美術奨学会賞(1984年)、第3回東川賞新人作家賞(1987年)、木村伊兵衛写真賞(1991年)등이 있다.
publication
"michiko kon" 光琳社 출판 kyoto (1997)
"michiko kon : still lifes" aperture, new york (1997)
*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작가 무라카미 류가 서문을 쓰고 미술 평론가 토시하라 이토伊藤俊治가 후문을 썼다고 한다.
"kon box" p.g.i. & nazraeli press (1996)
*책이라기 보다는 6.5*6.5*1.2 인치, 42장의 낱장카드 40장이 밀어서 열 수 있는 투명한 상자에 들어있는 카드 박스이다. 피터 c 버넬peter c. bunnell의 소개말이 영어와 일어로 따로 4장 들어있고, 이이자와 고타로의 글이 영어와 일본어로 26페이지짜리 어코디온 같은 형태로 첨부되어 있다. 이 첫 에디션은 1000개 한정 판이다.
public collections 도쿄도 사진 미술관 (도쿄),
tokyo metropolitan museum of photography, tokyo
이타바시 구립 미술관 (도쿄),
itabashi art museum, tokyo
조지 이스트만 하우스 국제 사진 미술관 (로체스터, 미국),
international museum of photography at george eastman hou se, rochester, u.s.a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시카고, 미국),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chicago, u.s.a
애리조나 대학 센터 포 포토 포토 그래피 (투싼 미국),
center for creative photography, university of arizon a, tucson, u.s.a.
대학 박물관 (프린스톤, 미국),
the art mu seum, princeton university, princeton, u.s.a.
mit리스트 비주얼 아트 센터 (캠브리지, 미국),
mit list visual arts cen ter, cambridge, u.s.a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 (arles, 프랑스),
museum of vincent van gogh, a rles, france
내셔널 갤러리 오브 캐나다 (오타와, 캐나다 ),
national gallery of canada, ottawa, canada
내셔널 갤러리 오브 오스트 레일 리아 (캔버라, 호주),
national gallery of australia, canberra, australia
아트 갤러리 오브 뉴 사우스 웨일스 (시드니, 호주)
the art gallery of new south wale s, sydney, australia
퀸즐랜드 아트 갤러리 (브리즈번, 호주)
queensland art gallery, brisbane, australia
파인 아트 미술과 (미국)
museum of fine arts, houston, u.s.a.
* 작품사진은 콘 미치코 씨 작품을 가져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