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 270만 명이 이용하는 도쿄 부도심 이케부쿠로의 쇼핑타운 선샤인시티에 '쨍쨍쨍~' 꽹과리 소리가 들려오자, 느긋하게 평일 쇼핑을 즐기고 있던 일본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멀리서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이들은 새하얀 요리복을 입고 주방장 모자를 쓴 셰프들. 한 손에는 주걱을, 한 손에는 냄비를 들고 씨익 웃음을 날려준다.
대사 한 마디 없이 온 몸으로 말하고 웃기고 소리를 낸다. 도쿄를 찾은 수많은 외국인도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들을 바라보다 남들과 똑같은 타이밍에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말이 필요없는 공통의 즐거움, 그것이 바로 한국 대표 넌버블 퍼포먼스(비언어적 공연) '난타'다.
29일, 세계적으로 호평받고 있는 우리 공연 난타가 도쿄에 상륙했다. 2011년 3월 도쿄, 오사카에서 개최될 정식 공연을 앞두고 난타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프로모션 공연을 펼친 것이다.
이제까지 전세계 40개국, 250개 도시, 500만 명이 넘는 관객들을 대상으로 공연한 난타이지만 이번 일본 공연만큼은 조금 더 특별하다. 난타팀 최초로 영입된 외국인이자 일본인, 이와모토 유카 씨가 고향에 와서 선보이는 첫 공연이기 때문이다.
난타는 지난 2000년 이후 4번에 걸쳐 일본에서 공연했고, 오는 2011년 3월에 도쿄, 오사카 공연을 예정, 총 5회 째를 준비하고 있다. 사실 한국의 난타 공연장을 찾는 관객 80% 이상은 외국인으로 관객 전체의 절반에 해당하는 48%가 일본 관객일만큼 일본인의 난타 호응도는 좋은 편이라고 한다.
그런데다 이번엔 일본인 최초 난타 멤버 이와모토 씨가 참가하는 첫 무대인만큼, 뜨거운 열기가 예상되고 있다.
"처음 난타를 본 건 2002년이었어요. 할머니가 한국 분이셔서 건강하실 때 마지막으로 온 가족이 한국여행을 가기로 했죠. 그렇게 처음 한국에 가서 지방을 돌다가 마지막에 서울에 가서 난타를 보게 되었는데, 와, 보는 순간 온 몸에 전율이 느껴졌어요. '아 이거다''나는 여기 관객석이 아니라 저 무대 위에 서 있어야 한다' 계시라도 받은 듯이 빨려 들어갔어요"
8년이나 지난 지금도 왜 자신이 그토록 난타에 빠져들었는지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다고 한다. 사람을 보고 한 눈에 반하듯이 그녀는 난타를 보고 깊은 짝사랑에 빠졌으니 말이다. 성인이 다 되도록 춤과 노래를 따로 배운 적도,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도 없었던 그녀지만 마치 운명처럼 난타에 홀려버렸다.
일본에 돌아와서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남들 다 취업활동을 준비하는 3학년 때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자신이 무대체질인가하여 연극도 보러다니고, 뮤지컬도 찾아다녔다. 두드리는 리듬감이 좋은게 아닐까 생각하고 타악기 공연장에도 가봤지만, 그녀의 머릿 속을 차지하는 것은 오로지 난타 뿐이었다.
그렇게 단단히 짝사랑에 빠진 뒤 이와모토 씨는 부모님, 친구들의 반대에 무릅쓰고 꿈을 쫓아 2007년 한국으로 날아오게 된다.
보통 일본인은 사생활 간섭을 싫어해서 한 방에서 누군가 같이 지내는 것을 꺼려하지만, 이와모토 씨는 일부러 한 방에서 부딪히며 살 룸메이트를 찾았다. 무조건 한국인과 부딪히며 한국말을 배워야하겠다는 일념하나에서였다. 그렇게 한국어를 마스터하고 꿈에 그리던 난타 오디션에 응모, 합격통지를 손에 쥐었다.
4차까지 치열한 오디션을 합격하고서도 긴 연습생 기간이 시작되었다. 언제 무대에 설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동고동락한 동기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기 시작하고, 곱디 고운 손이 깨지고 터지고 굳은 살로 뒤덮였을 즈음 드디어 데뷔에 성공했다.
"한 번은 무대에 섰는데 시작하자마자 옆 사람이 휘두른 스틱에 눈 언저리를 된통 맞았어요. 순간 별이 번쩍했는데 공연이 시작되었으니 죽을 힘을 다해 정신을 차렸죠. 공연 중간에 눈이 점점 부풀어 올라 보이지도 않는데, 어휴, 그 공연 끝나고 2주간 쉬어야 했어요"
레스토랑 키친을 배경으로 주방용품을 이용하여 공연을 펼치다보니 부딪히고 맞고 칼에 베는 것은 일상다반사다. 실제 그녀의 손은 20대 여자의 손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부르트고 딱딱하고 군데군데 손톱이 깨져있었다. 한참 멋부리고 예쁠 나이인만큼 손을 보면 속상할만도 한데, 후회없냐고 물으니 단 한번도 '그만두고 싶다',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한다.
"제가 그토록 원했던 일이잖아요. 물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 고되고 힘든 일일 수 있어요. 하지만 전 꿈을 이룬 거니까 모든 게 행복하고 감사하죠. 뭐 가끔 악수할 때 손 내밀기가 좀 그렇긴 하지만요"
그녀의 열정 덕분인지 처음에는 그렇게 반대하시던 부모님과 일본 친구들도 이제는 모두 이와모토 씨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고 한다. 난타 최초 외국인인 탓에 매스컴의 주목도가 높은 데 신문이나 티비, 인터넷을 꼼꼼하게 체크하며 모니터를 해주고 언제나 응원부대가 되어주고 있다.
그런 그녀가 처음으로 일본에서 난타 정식 데뷔 무대를 갖는 자리가 내년 3월에 열리는 도쿄, 오사카 공연이다.
"너무너무 영광스럽고,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그런데 엄청난 책임감도 느껴요. 일본인 최초 멤버로 저를 응원해주는 분들도 있을테고, 그 분들의 기대에 어긋나면 안 되니까요. 지금 제 인생의 목표는 3월 공연을 최고로 성공시키는 거예요. 그 밖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으면 평생 일을 안해도 된다던데, 그녀야말로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서 하다보니 자연스레 유명해진 케이스인 듯 했다.
두꺼운 나무 도마를 한 달에 한 번 갈아야할 정도로 무서운 칼질을 해대고, 주방장 모자가 날아가 땀으로 젖은 머리가 흐트러져도 그 땀방울마저 반짝이는 것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만이 내뿜는 행복의 기운이리라. 깨지고 터지고 찢어진 손을 가진 그녀가 왠지 부러워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