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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월트디즈니 지브리의 빛과 그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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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요네바야시 감독과 아리에티, 지브리의 미래 괜찮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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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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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한 시골 마을 한 저택. 마루 밑에서 인간들의 눈에 띄지 않고 살아가는 소인들은 인간의 눈에 띄면 그 집을 떠나야 한다는 룰이 있다. 심장병 치료차 시골집을 찾은 소년 쇼우와 14세 소녀 아리에티는 인간과 소인이 서로 만날 수 없다는 철칙을 깨고 위기를 넘어 우정을 나눈다. 지브리의 신작 '마루 밑 아리에티'가 9일 한국에서 개봉됐다. 아리에티에 대한 일본 내 평가, 요네바야시 감독의 발탁 배경, 지브리의 미래에 대해서 짚어봤다. 지브리의 빛과 그늘 (상)에서 이어짐
▲마루밑 아리에티, 아리에티 역에 ©jpnews/山本宏樹 | | ■ 깜짝 발탁, 요네바야시는 누구인가
올해 69세를 맞이한 미야자키 감독이 향후 작품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은 한 편 정도. 지브리의 뒤를 누가 이을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2010년 여름 개봉한 '아리에티'야말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복제화' 성공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떠올랐다.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1973년생으로 가나자와 미술공대 상업디자인과를 중퇴하고 1996년 지브리에 입사했다. 요네바야시는 '원령공주'에서는 동화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하울의 움직이는 성''벼랑 위의 포뇨' 등의 원화를 담당했다. 미야자키 고로 감독의 '게드전기'에서는 작화감독을 담당했다. 애니메이션에서 원화는 화면 위 캐릭터의 움직임을 결정한다면, 작화감독은 작품 내 모든 캐릭터가 일관된 모습을 갖추도록 그림을 다듬는 역할을 한다.
▲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 ©jpnews/山本宏樹 | | 요네바야시 감독은 센과 치히로에서 '치히로의 아버지가 신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음식을 마음대로 먹다가 돼지로 변하는 장면'을 실감나게 그렸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는 소피가 하울과 함께 공중에서 걷는 장면을 그려내면서 미야자키 작품의 핵심 키워드를 소화해냈다. 이후, 포뇨에서도 '포뇨가 물고기들과 함께 수면 위로 상승하는 가장 박력 있는 장면'을 그려냄으로써 미야자키 감독의 신임을 돈독히 했다지브리에서 가장 뛰어난 애니메이터로 알려진 그는 '아리에티'로 지브리 작품 중 최연소 감독이 됐다. 미야자키 감독은 요네바야시에 대해 "그는 맡겨진 장면을 자기 나름대로 소화해서 그리는 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미야자키 감독은 아리에티 공식 블로그에서 마로(요네바야시 감독의 지브리 내 애칭) 감독을 고른 이유에 대해 "우선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감이었다"고 운을 뗀 뒤, "그동안 지브리 내에서 야심을 가진 사람이 배출이 안됐고, 어떻게 할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을 때 '마로'가 있었다. 마로는 재능이 있지만, 감독을 하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따라서 이건 우리 내부에서도 도전이었다"라고 밝혔다. ■ 왜 아리에티의 배경은 유럽이 아니라 일본일까 이번에 지브리의 신작이 아리에티로 결정된 데에는 미야자키 감독의 젊은 시절 경험이 크케 작용했다. 미야자키는 "내가 20대 속해있던 회사에서는 유명한 작품만 했고,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작품은 안했다. 당시 업계 상식으로는 '부모가 이런 작품은 아니까 가서 보고 오라'라고 할 만한 작품만을 기획했다"며 그런 분위기 가운데 메리 노튼의 '바로워즈'(아리에티의 원작)의 소인 이야기는 그에게 신선하게 느껴졌고 언젠가는 꼭 작품화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러나, 아리에티의 원작이 영국임에 비해 배경을 일본으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은 일본을 무대로 하지 않으면 관객이 보러 안온다. 우리들 세대와 다르게 요즘 일본의 젊은 세대는 유럽 문화나 문명에 대한 동경, 호기심이 없다. 알고 있는 것은 자기 생활권 속, 눈에 비치는 것 정도다. 이렇게 시야가 좁아졌기 때문에 다시 한번 자신들이 사는 곳을 살펴보자는 뜻에서 기획했다. 일본의 오래된 집이나, 엔노시타(일본의 오래된 집을 받치는 대들보, 마루 밑)라든가. 특히 요즘 젊은 애니메이터들에게 영국에 가서 현지로케를 한 뒤 그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미야자키 감독은 요즘 일본의 젊은 세대가 "사람이 살아온 곳, 물건, 쓰는 것, 먹는 것, 선조 등에 대해서 혹은 지금도 일본 어딘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없어졌다"고 강조했다. 아리에티는 바로 그런 "우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는 의미에서 기획했다고 밝혔다. 요네바야시 감독이 아리에티에 깜짝 발탁된 이유에 대해 스즈키 대표는 "미야자키 감독이 젊은 시절 구상한 이 작품을 젊은 요네바야시에게 맡기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아리에티'는 탄생했다. 아리에티는 미야자키 감독이 각본을 썼을 뿐, 애니메이션의 설계도라고 하는 그림 콘티, 연출, 캐릭터의 움직임에 대해서 일체 관여를 하지 않았다. 작품 제작이 들어간 날부터 미야자키 감독은 요네바야시에게 지브리 건물 창가에 있는 감독석을 물려주고 얼굴 조차 마주하지 않았다. '아리에티'의 모든 것은 요네바야시의 손을 거쳐, 캐릭터 설정부터 마지막 엔딩까지 마무리됐다. 미야자키는 요네바야시 감독이 제작 도중 연출의 어려움을 겪자, "감독의 결정이 작품 내 마지막 선택이 되는 것"이라는 조언과 함께 "이 이상 개입하면 그의 주체성을 빼앗을 것 같은 한계까지만 도와줬다"고 밝혔다. 미야자키 감독의 이렇게 연출을 해본 적도 없는 신인감독을 일부러 철저하게 외면한 이유는 '귀를 기울이면' 감독을 맡은 곤도의 죽음때문이다. 후배인 곤도에게 감독을 맡겼음에도 미야자키는 자신의 지나친 간섭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자책감을 가지고 있다. 나름 신인 감독을 키우려 최선을 노력을 다한 것이다.지브리 스태프와 신생감독의 400일간 사투를 통해 탄생한 '아리에티'. 긴장감 속에서 치뤄진 관계자 시사회에서 미야자키 감독은 요네바야시 감독의 손을 번쩍 들어올리면서 만족을 표시했다. 그러나 개봉후 일반대중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달렸다. ■ 아리에티의 한계와 가능성?
일견, 미야자키가 만들었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익숙한 캐릭터. 지브리만의 전매특허이라고 할 수 있는 환상적인 배경설정 및 아기자기한 생활 묘사는 아리에티에서 잘 살아났다. 아리에티가 심야에 처음으로 아빠를 따라 물건을 가지러 가는 장면을 통해 소인들의 생활방식을 리얼하게 그려졌고 시침핀, 각설탕, 빨래집게, 못 등이 소인들의 일상에서 전혀 새로운 물건으로 재미있게 묘사됐다. 쏟아지는 빗방울, 소인의 눈으로 본 도랑, 거대한 식탁, 그리고 세밀하게 그려진 아리에티의 방이나 인형집 세트 또한 지브리 특유의 색감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아리에티를 지지하는 관객은 "아주 평범하고 아름답고 잔잔한 영화다. 담담한 느낌이라고 할까. 욕먹을 정도로 나쁘지는 않았다"라고 후한 점수를 주거나, "세세한 부분도 아름답게 그려져서 감동적이었다. 옛날 지브리 작품은 스토리도 감동적이었고, 훨씬 좋았지만 이번 작품도 그 나름대로 차분하게 즐긴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라며 옹호하고 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다 만 느낌이다. 안타깝다"거나 "지브리라는 간판이 없었다면 인기가 있었을까. 일부러 극장까지 갈 정도의 애니메이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른 것을 봤으면 좋았을 거라고 후회했다"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한 일본인 관객은 "최근 지브리 작품은 한 번 보고나면, 반복해서 보고싶지 않은 작품 뿐이어서 안타깝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까지는 몇 번이고 보고싶다고 생각하는데, 아리에티의 좋은 점을 말한자면, 음악하고 영상 정도?"라며 최근 지브리의 작품의 경향성까지 짚어냈다. 기존의 지브리가 갖춘 미덕인 아름다운 배경이나 세심한 묘사는 살아있지만, 미야자키 감독이 보여준 웅대함이나 두근두근하는 느낌이 없다는 평이다. 특히, 이야기가 굴곡이 없고 시작되다 마는 듯 끝나버리는 스토리는 가장 큰 문제로 지적받고 있다.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은 미야자키 감독 작품의 큰 줄기인 '소년이 소녀를 만난다'는 설정에 갇힌 것으로 보인다. 지브리의 전매 특허인 독특한 상상력도 만나기 어려웠다. 단지 재현만 있을 뿐이다. 왜그럴까. 스즈키 프로듀서는 nhk 프로그램에서 "애니메이션 제작기간 중 이렇게 스케쥴이 늦어진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연출을 해본 경험이 없는 요네바야시로서는 갑자기 자신에게 던져진 스토리를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제때 일정에 맞춰서 만드는 것만으로 버거워했을 수도 있다.
▲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 ©jpnews/山本宏樹 | | 애니메이션 연구가 히가와 류스케씨는 "이야기 작가로서 미야자키 하야오를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그의 애니메이션을 소설로 바꿔서 써놓으면 얼마나 따분해지는지 바로 알 수 있다"면서 "그의 작가성은 원작을 그림으로 만드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이라고 평했다. 미야자키의 세계는 이야기가 아닌 그림으로 표현된 풍부한 감성이 가장 강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미야자키 하야오가 기획한 '아리에티'는 미야자키식 연출을 통해서만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을 공산이 크다. 미야자키라면 같은 이야기라도 다양한 실험과 독특한 캐릭터를 넣을 것이다. 원령공주의 '거대한 늑대', 센과 치히로의 '가오나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칼시퍼', 포뇨의 아버지 등 미야자키의 작품에는 묘하게 그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요네바야시 감독이 만든 아리에티에는 정해진 것외에 모험은 없었다. 아리에티의 아버지는 지나치게 엄숙하고 어머니는 지나치게 소란스럽다. '극장판 마크로스 f' 등으로 알려진 애니메이션의 거장 가와모리 쇼지 씨는 "지금 극장판 애니메이션의 근저에 있는 '그림이 일그러지지 않고 움직이는 기술' 점점 떨어지고 있으나, 지브리의 작화는 늘 숙성된 레벨을 보여준다. 그러나 내용면에서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 매스컴이나 관객도 지브리 작품이기 때문에 비평하는 눈이 없어지고 말았다. 그것을 되돌리면 더욱 뛰어난 작품이 태어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즉, 세대가 바뀌어도 스토리성이 점점 약해지는 지브리의 경향을 처음 감독 자리에 앉은 신인 감독이 뒤엎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사람들이 지브리를 보러 극장까지 발걸음을 옮기는 이유는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상상력 때문이다. 그것이 요네바야시 감독 작품에서는 사라져버린 채 껍데기만 남은 것"이라고 평가한다. 어떻게 보면 이제 막 감독을 시작한 요네바야시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운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미약한 것을 보면 그림만 열심히 그려온 요네바야시 감독이 앞으로 얼마나 새로운 이야기를 가져올지 의문시된다는 의견도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오래 일해온 k 프로듀서는 이렇게 말한다. "미야자키 감독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이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끝났다고 본다. 아무래도 미야자키 감독이 직접 캐릭터나 레이아웃을 직접 체크하지 않는 한 지브리만의 맛이 나지 않는다. 센과 치히로 이후 포뇨 등은 흥행을 위해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름을 내거는 전략이었다. 액션 등의 화려한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는한 굳이 영화관에 가서 볼 필요성을 못느낀다." 그는 이어 지브리와 디즈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디즈니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또 다른 수많은 디즈니를 복제했고 그 나름의 왕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지브리는 이제와서 후계자를 찾으려고 하다보니, 이번 감독을 고른 것 같다. 이번 작품 '아리에티'도 요네바야시가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꾸중을 듣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만들었을 뿐, 미야자키 본인만이 가지고 있던 세계를 풀어낼 수는 없었다. 지브리의 젊은 애니메이터는 미야자키 스타일의 그림은 흉내낼 수 있을지 몰라도, 미야자키가 가지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세계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건 미야자키 말고는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니까. 미야자키식이 아닌 또 스타일의 젊은 애니메이터가 지브리에서 진작에 나왔어야했지만, 이미 늦은 게 아닐까." 이런 가운데 임박한 미야자키 감독의 은퇴. 그의 은퇴는 곧 지브리의 은퇴를 뜻한다. '아리에티'의 한계는 그래서 지브리의 한계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말한다. "20년전에도 희망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늘 이게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작업해왔다. 그러니까 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 대체 무엇인가라고 생각하고 만드는 수 밖에 없다." 지브리가 앞으로도 명가 스튜디오로 살아남으려면 '3d를 거부하고 손으로만 그린다'는 작법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동안 지브리를 구축해온 매력을 앞으로도 계속 생산해낼 수 있는 세대가 있는지 고민해야할 것 같다. 지브리의 후계자의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었던 이번 '아리에티'만 놓고 보면,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표한다는 '지브리'의 미래는 비관적이다. <끝>
▲세실 코벨 / 배경음악을 맡았다 ©jpnews/山本宏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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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9/10 [10:00] 최종편집: ⓒ jpnews_co_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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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와모리 마사하루가 아니고요... |
너부리군 |
10/09/10 [10: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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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治라고 쓰지만, しょうじ라고 읽습니다. 인명이니 정정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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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했습니다. |
편집부 |
10/09/10 [10: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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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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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그늘... |
ㅎㅎㅎ |
10/09/10 [17: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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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지브리는 후계자를 두고 이런저런 말이 많았고 콘도요시후미가 죽고 난 후 미야자키의 복귀... 그리고 고양이의 보은등... 지금까지 있던 수 많은 지브리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와 무엇이 다른지?? 죄송하지만 이 기사에서 말하고 싶은게 무엇인지 전혀 알 수가 없네요. 지브리가 위험하다 위기다. 후계자가 없다. 그런와중에 아리에티가 나왔다. 신인감독이다. 그런데 이 넘 애니메이터로는 최고여도 감독으로는 아직 별로다.. 후계자가 없다. 위기다... 이게 이 기사가 말하고 싶은건지? 그것도 상하로 나누어서... 특집기사 치고는 알맹이가 너무 없는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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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
chanwoomul |
10/09/10 [18: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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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스튜디오 치고는 음악연출 같은 데에서 너무 초보적인 실수를 초반부에 내다가 후반부 갈수록 안정된다고 생각했더니, 완전 신인 감독이었군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야 나우시카로 극장판 제작하기 이전부터 미래소년 코난이나 루팡3세 같은 TV시리즈를 다작한 경험이 있으니, 출발부터가 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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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봤기에 망정이지 내 돈내고 봤으면 후회했을정도로... |
별로였다 |
10/09/10 [21: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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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파워가 점점 떨어지네
게드전기 보다는 낫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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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되겠지요... |
troia |
10/09/10 [21: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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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감독은 천부적인 재능과 노력 그리고 철저한 현장실습에서 다져진 보기 힘든 인재이죠 ... 아마 앞으로도 그를 뛰어넘는 인재가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브리의 위기야 어재 오늘일이 아니지만 위에서 미야자키 감독이 말하듯 .... 20년 전에도 희망이 있었던것은 아니고 늘 이게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 하고 작업해 왔다... 는 그의 말처럼 그의 뜻을 이어간다면 되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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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가 길기만하고 내용이 없네요 |
흠 |
10/09/11 [0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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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후계자 주제로 씨네21에서 나온 기사가 있는 그 쪽이 훨씬 짧고 알차군요. 이 기사는 뭐 익히 알려져있는 내용 반복해서 양만 늘린것에 불과한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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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는 늙었다. |
너구리 |
10/09/11 [0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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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만큼 세계관도 스토리도 너무 안전?적으로 바뀌어버렸다. 미야자키를 답습하는 사람이 아닌 색다른 사람을 뽑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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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수정 부탁드립니다. |
우리말사랑 |
10/09/11 [0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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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어법과는 맞지 않은 부분이 있어 지적드립니다. 1.(전략) 미야자키 감독 작품의 큰 줄기인 '소년이 소녀를 만난다'는 설정 (후략) * 직접인용과 간접인용의 용법을 혼동하신 듯 합니다. 직접인용이라면 "'소년이 소녀를 만난다'라는"으로 쓰셔야 맞고, 간접인용이라면 따옴표 없이 "소년이 소녀를 만난다는"으로 적어야 맞습니다. 2.(위와 같은 문장에서) 설정에서 갇힌 것으로 보인다. * "~에 갇히다"리고 쓰거나, 아니면 "~에서 벗어나지 못하다"라고 써야 맞습니다. "~에서 갇히다"는 말이 안 되죠. 3.(전략) 요네바야시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진 것일 수도 있다. * "요네바야시가 너무 많은 짐을 진 것일 수도 있다"라고 쓰시거나, 아니면 "요네바야시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운 것일 수도 있다"라고 쓰셔야 맞습니다. 남에게 짐을 지도록 시킨다는 뜻으로 쓰려면 사동의 보조어간/선어말어미인 '우'를 넣어서 '짐을 지우다'라고 써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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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중 |
찬계곡 |
10/09/15 [1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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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끼의 영화는 '센과치히로'에서 끝났다는 애기는 동감합니다. 당시 영화를 보고 나도 영화동호클럽에서 '내가 미야자끼라면 이제 영화를 그만 만들 것이다.' 라고 쓴 기억이 나는 군요. 애리에티는 영화관에 가서 보기에는 그림의 질도 떨여졌습니다. 좋은 내용의 심층기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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