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학이 만들어낸 최첨단 기초연구 성과를 일본의 전자기업이 아닌 한국 기업이 채택해 응용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고 아사히 신문이 8일 보도했다.
아사히는 한국이 응용에 강해, 일본의 기초 연구성과로 만든 액정 tv나 휴대전화 등이 세계에서 높은 점유율을 자랑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기초 보다는 응용'에 강점도 되지만 약점이기도 해서 한국내에 불안감도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사히는 기초 연구 성과를 한국이 응용한 첫번째 사례로 액정화학이 전문인 규슈대의 기쿠치 교수의 연구팀을 들었다.
"컴퓨터와 연결된 특수 현미경으로 프레파라트상의 액정물질의 온도를 38도 전후까지 내리면 화면에 비친 액정물질이 파란색을 띈다. 더욱 온도가 내려가면 아메바가 증식하는 것처럼 모든 곳에 흰 색과 회색이 퍼져 결국에는 파란색을 모두 침식한다."
기쿠치 교수는 "이런 파란색을 액정의 블루 페이즈(blue phase)라고 하는데, 나타나는 온도의 폭이 적은 것이 난점이긴 하지만, 안정시키는 방법을 2002년에 발견했다"고 한다. 그는 이 같은 내용으로 같은 해 특허를 취득하고 학회에 발표했다.
3d 대응 등 진화를 계속하는 액정 tv. 고속으로 움직이는 영상을 흔들림 없이 부드럽게 비추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다. 기쿠치 교수팀의 블루 페이즈라면 지금의 액정 보다 응답속도가 10배 빠른 데다가 백라이트의 소비전력이 1/3로 경감된다.
신문에 따르면 학회 발표 후 기쿠치 교수에게 먼저 접근한 것은 일본 국내 대형 전자기업이었으나, 연구자 끼리의 이야기로 끝나버려 실용화 이야기까지는 나아가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08년 5월, 연구자나 디스플레이 업계에 충격이 전해진다. 액정 패널 세계 1위인 삼성전자가 블루페이즈 특성을 사용한 패널 시제품을 발표, "10-20년에 한 번 나올만한 획기적인 발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기쿠치 교수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말하면서, "내 연구도 참고해 수면아래서 삼성이 연구를 계속해 개발까지 도달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새로운 기술에는 결점이나 과제가 따라 붙는다 그것을 극복한다 하더라도 생산방법의 변경으로 새로운 설비투자가 필요하다. 기구치 교수는 "일본 전자 기업은 그저 개발동향을 지켜봤지만, 삼성은 소재의 유망성을 간파하고 강력하게 밀어부쳐 제품으로 만들어 낸 것"이라고 토로했다. 규슈대 연구팀에는 현재 삼성의 연구자가 소속돼 장기간에 걸쳐 연구를 계속한다고 신문은 전했다.
또 일본 기술 응용의 또 다른 사례는 나노테크 소재인 탄소의 '카본 나노 튜브'의 발견자로 이지마 스미오(飯島澄男) 교수. 노벨상 후보로도 점쳐지는 이지마 교수는 일본 기업의 무력함에 강한 위기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지마 교수는 한국의 성균관대와 함께 탄소소재 '그라펜(
graphene)'을 사용해 가볍고 휘어지는 대형 디스플레이 소재의 개발에 성공, 휘어지는 터치스크린의 시제품을 제작, 6월 중순에 발표했다.
이 연구를 강력하게 지원하고 있는 것이 삼성그룹이다. 이지마 교수가 6월 하순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의 연구자로부터 "삼성은 이미 그라펜 터치 패널의 실용화를 위해 박사급 학위를 가진 연구자 20명을 확보했다. 2년 후 실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이지마 교수는 일본의 연구지원기관 등에 그라펜의 중요성을 호소했지만 대응이 더뎠다고 한다. 그는 "만약 내년 예산에서 연구비가 책정된다 하더라도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1년 반 정도 후의 일. 삼성이 신제품의 개발에 성공해 있을 시점"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1-3월 실질 gdp(국내총생산)은 전년비 1.2% 증가했으나, 일본처럼 자원이 부족하고 수출에 의존하는 한국(2.1%)에 미치지 못했다.
아사히는 "한국 기업은 1960년대부터 90년대 후반까지 생산기술이나 기업통합 등의 많은 부분을 일본기업에서 도입했기 때문에 기업체질도 닮아 있다"고 하면서도 "97년 imf 이후 사업의 선택과 집중을 가속화, 미국식의 생산주의를 적극채용함으로써 '응용력'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한국경제전문가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 교수는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가져오기 경주'에 비유했다. 세계로부터 소재나 부품, 기술을 모아서 취사선택해 그것을 응용해제품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또한 경영자 중 재벌 오너가 많아 "일본 기업 보다 리스크를 끌어 안고 의사결정도 빠르다"고 지적한다. 그것이 응용과 순발력의 차이로 나타나며, 일본은 유망한 기초기술이 자기 눈 앞에 있음에도 투자까지 끌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사히는 한국에게 약점도 있다고 지적했다.
후카가와 교수는 세계시장 점유율 상위를 점하는 반도체나 액정 패널, 휴대전화, 조선업에 대해 "한국이 스스로 만들어낸 오리지널 제품은 없다"는 점이다. 아시아 경제연구소 오쿠타 씨도 "한국 기업이 독자성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고, 참고 대상이었던 일본의 그림자가 흐려지면서 고민 중"이라고 지적했다.
아사히는 삼성전자의 이건희 회장이 직원들에게 "향후 10년 이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이나 제품은 대부분 없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며, 응용능력에 의존해서 앞으로 계속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라며, 이 회장의 말은 그런 위기감의 발로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