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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포커스, 너무나 일본적인 영화
제로 포커스 제대로 보고 싶다면 소설을 읽어라
 
김봉석 (문화평론가)
마쓰모토 세이초 원작이라는 정보를 알고서도, 오프닝이 뜨기까지 <제로 포커스>가 <제로의 초점>임을 눈치 채지 못했다. <점과 선> <모래그릇> 등과 함께 <제로의 초점>이란 제목만 각인되어 있었기에, 어느 단편이겠거늘 생각한 것이다.
 
약 40년간의 작가 생활동안 마쓰모토 세이초가 발표한 작품은 에세이와 논픽션을 포함하여 980여 편이고, 그 중 장편소설은 100여편, 중단편은 약 350여편이다. 그러니 ‘제로 포커스’란 제목이 있어도 이상할 건 없었으니.

어쨌거나 영화로 만들어진 <제로 포커스>는 1950년대를 배경으로, 실종된 남편을 추적하는 미스터리물이다. 하지만 원작과는 달리, 영화에서는 범인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즉 <제로 포커스>에서는 누가 죽였는가를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는, 왜 죽였는가를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애초에 마쓰모토 세이초란 작가는 ‘사회파 추리’를 주장하고 실현한 작가다. ‘종래의 동기는 일률적으로 개인적인 이해관계, 예를 들어 금전상의 싸움이나 애욕관계에 놓여 있는데, 매우 유형적이고 특이성이 없는 것이 불만이다. 나는 동기에 사회성을 더할 것을 주장하고 싶다.’

<제로 포커스>에서 데이코는 사라진 남편의 행방을 찾아 근무지였던 가나자와로 간다. 그리고 남편과 잘 아는 사이였다는 거래처 사장 부인 사치코를 만난다. 데이코가 가나자와에서 남편을 찾아 해매는 동안 남편의 형과 직장 동료까지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과연 누가 잔혹한 연쇄살인범인 것일까? 하지만 <제로 포커스>는 범인을 냉혈한이나 사이코패스로 그리지 않는다. 말 그대로 ‘사회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전쟁에서 패한 후 일본 사회는 급격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고, 치욕을 감수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면서, 그들은 새로운 삶을 살고 싶어 한다. 과거의 어둠을 잊어버리고, 아니 지워버리고 ‘신시대’를 맞이하고 싶어 한다.
 
▲ 제로 포커스     ©제로의 초점 홈페이지

<제로 포커스>에는 전후 미군들을 상대로 몸을 팔았던 ‘팡팡 걸’이란 여인들이 등장한다. 누구는 시골에서 올라와 글도 읽을 줄 모르는 채 몸을 팔았고, 누구는 폐병에 걸린 동생의 병원비를 대기 위하여 대학까지 중퇴하고 들어왔다. 그리고 미군 헌병대의 지휘 하에 팡팡 걸들을 구타하고, 구금했던 경찰도 있었다. 그들은 그 끔찍한 과거를 지워버리고 싶었다.
 
지우고 싶어서 비밀을 아는 자를 죽이기도 하고, 배신하고 떠나버리는 이를 죽이기도 한다.<제로 포커스>에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인간군상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그들의 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지만, 그들의 심정에는 때로 공감이 간다.

다만 <제로 포커스>가 아주 뛰어난 영화라고는 할 수 없다. 그보다는 일본의 위대한 작가의 하나인 마쓰모토 세이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영화로서, 일본인의 보편적인 정서에 맞게 연출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정갈하고 차분하게, 그러면서도 그들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게 꼼꼼하게 만든 영화. 일본인이라면 그 시대의 아픔을 떠올리면서, 잔잔한 여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으로서는 가해자였던 일본이 전후의 고통을 되씹는 것을 보며 다소 불편하기도 하겠지만.
▲ 제로 포커스 세 여주인공들     ©jpnews

그래서,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굳이 <제로 포커스>를 보라고 권하고픈 생각은 없다. 다만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들만은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제로 포커스>에도 소위 ‘악녀’가 등장하지만, 마쓰모토의 소설에는 강렬한 악녀들이 매우 많이 등장한다.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을 책임 편집한 미야베 미유키의 말에 따르면 ‘강인한 악녀상을 빚어내는 데에서도 선구적인 작업’을 했던 것이다. 드라마로 만들어진 <나쁜 녀석들> <짐승의 길> 등을 통해서도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 수 있다. 또한 악녀를 그저 나쁘게만 그린 것이 아니라, 그녀들이 왜 ‘악’을 택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정말 리얼하게 그려낸다.
 
‘이토록 부드러운 필치로, 그러면서도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동정적인 시선은 일체 배제하고 공감을 담아서 그렸던 까닭은 당신 내부에도 있었을 게 분명한 고독을 그녀들에게 투영한 때문이 아닐까’(미야베 미유키)

그리고 무엇보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을 권하고 싶은 이유가 있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세계에는 ‘고독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경의’가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타인과 어울리지 못하는 고독한 인간에 대해 불편한 시각을 가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마쓰모토의 소설에는 고독한 이의 진정한 세계가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쓸쓸하다고 해서 악의만 키우는 것은 아닙니다. 타인의 인생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건너다보면서 자신의 일상을 묵묵히 살아가는 고독한 사람의 선의와 긍지라는 것도 분명히 존재하는 거죠.’(미야베 미유키)
 
그러니 부디 <제로 포커스>를 보며 실망하기 보다는, 마스모토 세이초의 소설 특히 <마쓰모토 세이초 걸작 단편 컬렉션>을 읽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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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3/22 [09:49]  최종편집: ⓒ jpnews_co_kr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한번 보고 싶은 작품 이네요. 너구리 10/03/22 [17:37]
히로스에 료코가 나오는것도 좋고.. ㅎㅎ..;; 수정 삭제
몰랐다는 것자체가... fusionk 10/03/22 [20:29]
영화 보기위한 사전 준비 부족이겠죠.. 그리고 60년대 후반에 나온 흑백영화을 봐도 어느정도 도움이 될듯합니다... 수정 삭제
우리도.. 문화인 10/03/23 [06:17]
추리소설이나 공상과학소설이 많이 나오면 좋을텐데 "여명의 눈동자"이후에 추리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를 본 기억이 없네. 일본은 마츠모토 세이초라는 한 작가의 작품으로만 추리소설 드라마 시리즈가 나오는 형편인데..그리고 추리소설 전문작가가 쓰기는 했지만 "여명의 눈동자"는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역사소설로 분류하는게 맞을듯 싶네. 우리나라 SF소설은 아직 본적이 없고.. 수정 삭제
일본영화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cinnamon316 10/03/23 [14:45]
우리나라가 만들었으면 더 그럴듯하게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온리 유 음악은 영화와 겉돌고..
악녀의 비주얼은 너무 독한데 웃기고..-_-;;
안타까웠습니다. 수정 삭제
정말 피해자일까요?? 안나 10/03/31 [13:11]
일본에 살 때 8,15 전후해서 일본인들이 도쿄대공습과 원폭 을 이야기하며 자신들을 피해자로 여기는 드라마 등을 보면 정말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이 소설에서도 남편이 참전군인으로 나오던데, 참전군인으로서 그 남편이 했던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면 그 남편이 "새 인생 찾고 싶다"라고 하는 대목이 참으로 불편하지요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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