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에서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18세 미만의 청소년, 즉 '가상 청소년'의 섹스 혹은 그와 비슷한 행위를 묘사한 작품을 불건전도서로 지정해 청소년에 판매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도쿄도청소년건전육성조례개정안'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물론 불건전도서로 지정되면 청소년은 구입할 수 없습니다.
3월 15일, 편집자 출신의 메이지대학 후지모토 유카리(만화문화론 전공) 준교수를 비롯해 복싱만화 '아시타노 죠(あしたのジョー, 내일의 죠)'로 유명한 지바 데쓰야, '덴죠노 니지(天上の虹, 천상의 무지개)'를 그린 사토나카 마치코, '하렌치가쿠엔(ハレンチ学園, 파렴치 학원)'으로 엄청난 비판을 받았었던 나가이 고, '테라에(地球へ)'로 유명한 교토세이카대학 만화학부 다케미야 게이코 교수, 수도대학 미야다이 신지 사회학부 교수 등이 도쿄도청 기자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조례개정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 3월 15일 도쿄도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출석한 만화가 지바 데쓰야(왼쪽)와 나가이 고 ©시부이 테츠야/jpnews | |
그 후 도의회 회의실에서 반대집회도 열렸습니다만, 평일 낮시간대 임에도 불구하고 약 300명이나 참가했으니 사회적으로도 꽤 많은 주목을 끌고 있다고 봐야 겠지요.
제 입장을 말씀드리자면, 저 역시 이번 개정안에 반대합니다.
개정조례안은 지난 3월초 도쿄도의회에 상정됐습니다. '도서류 등의 판매 및 흥행 자율규제'를 정한 7조에 의한 현행규제범위는 "청소년에 대해 성적감정을 자극하고 잔학성을 조장하거나 자살 및 범죄를 유발하는 등 청소년의 건전한 육성을 저해하는 위험이 있는 것"으로 지정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에서 윗 요소들에 다음 항목이 새롭게 추가됐습니다.
"'연령 또는 제복, 소지품, 학년, 배경 그 외 등장인물의 연령을 상기시킬 수 있는 사항의 표시 또는 음성에 의한 묘사에서 18세 미만으로 인식되는 등장인물(이하 '가상 청소년)'을 상대로 하거나, 그들에 의한 성교 혹은 그와 비슷한 행위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 가상 청소년의 자태를 시각에 의해 인식할 수 있게끔 하는 것으로써, 이들을 성적대상으로서 긍정적으로 묘사함에 따라 청소년의 성에 관한 건전한 판단능력의 형성을 저해해 청소년의 건전한 성장을 저해할 위험이 있는 것." 얼핏 보면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기 힘든 문장입니다만,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런 말이 되겠지요.
가상 청소년은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등에서 18세 미만으로 설정됐거나 18세 미만으로 보이는 캐릭터를 의미합니다. 이들 캐릭터가 작품안에서 섹스를 하거나 그에 가까운 행위를 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독자가 짐작할 수 있는 묘사가 들어간 작품이 자율규제 대상으로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규제범위 8조 2항에는 "강간 등 현저하게 사회규범에 반하는 행위를 긍정적으로 묘사한 것으로 청소년의 성에 관한 건전한 판단능력 형성을 현저히 저해해 도쿄도규칙이 정한 기준에 저촉돼 청소년의 건전한 성장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것은 불건전조서로 지정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불건전도서로 지정될 경우 '분류도서'(zoning book)로 구분되므로 청소년들이 편의점에서 서서 읽거나 구입하는 것은 불가능해집니다. 그리고 성인들도 청소년에게 이런 도서를 접할 수 없게끔 노력해야 한다는 의무를 지니게 되지요.
구라타 준 도쿄도청소년치안대책본부장은 지난 3일 개정조례안과 관련해 "단순히 어린이나 어린이의 벌거벗은 몸이 소개됐다고 해서 규제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 또 불건전 도서지정은 어디까지나 청소년에 대한 판매규제이지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즉 도쿄도는 이번 조치가 '표현규제'가 아니라 '판매규제'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청소년의 건전한 육성을 위한 것으로 성인은 대상외라고 설명하고 있지요. 확실히 조례안의 취지는 성인이 아닌 청소년에 대한 규제로 봐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가지 문제가 존재한다고 봅니다.
먼저 규제범위가 상당히 애매모호합니다. 8조 2항을 보면 "강간 등 현저하게 사회규범에 반하는 행위를 긍정적으로 묘사한 것"이라 돼 있습니다. '현저'나 '긍정적'이라는 판단은 조례안이 통과된 후 만들어질 '도쿄도 규칙에서 정하는 기준'에 따라 내려집니다. '규칙'은 의회의 체크를 받지 않기 때문에 행정권의 확대라고 봐도 됩니다. 이는 결국 어떤 표현이 통과되고 안되는지 행정측(도쿄도)가 전부 판단한다는 것이지요.
두번째는 청소년에 대한 판매규제는 사실상 표현규제가 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점입니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은 산업이며 이 시장의 주요 고객층은 청소년입니다. 청소년에 대한 판매규제는 곧 시장규모의 축소를 의미합니다. 시장이 축소되면 당연히 작가들은 경제적 타격을 받게 됩니다. 사실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과 연결되지요.
세번째는 법률상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헌법상의 문제와 어린이 권리조약의 문제로 나뉘어 집니다. 헌법 21조 1항은 "집회, 결사 및 언론, 출판 그 외 일체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적혀져 있습니다. 그리고 2항은 "검열을 해서는 안된다. 통신의 비밀은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원칙적으로 국가권력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됩니다. 직접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지는 않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번 개정조례안은 간접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또 어린이 권리조약은, 유해정보로부터의 보호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의미로 본다면 확실히 '건전육성'을 위해 '유해정보'를 차단한다는 이번 개정조례안은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정보가 '유해정보'인지 아닌지 체크할 수 있는 권리가 어린이들에게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먼저 조약 12조에서는 어린이들의 '의견표명권'을 인정하고 있고, 13조는 어린이들에게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2항 (a)는 다른 사람의 권리 또는 신용의 존중, (b) 국가안전, 공공질서 또는 공중의 건강 및 도덕의 보호 등을 들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또한 13조에서는 어린이의 복지에 유해한 정보 및 자료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지침을 발전시켜 나갈 것을 권장한다는 내용도 들어가 있지요.
이 조항들을 본다면 유해정보로부터 어린이를 지키는 건 물론 필요합니다만, 이럴 때에는 어린이의 표현의 자유를 유의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 속에는 '다양한 종류의 정보 및 생각을 표현할 수 있고 그것을 다시 다른 이들에게 전파할 수 있는 자유'도 포함돼 있기 때문에 "왜 이 작품이 유해정보가 돼 버렸나?"라는 의문을 가진 어린이가 그 '유해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하는데 이번 개정조례안은 그러한 권리 자체가 차단돼 있습니다.
또한 이번 개정조례안은 불건전도서 지정이유의 공개 및 의의신청 프로세스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아주 불충분한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상당한 문제입니다.
개정조례안이 앞으로 어떻게 운용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 출판사, 인터넷사업자 등은 스스로 표현의 수위를 조절해야 합니다. 실질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겁니다.
회견에서 미야다이 씨도 지적했지만 어떤 정보가 어떤 개인에 영향을 줬을 때 그것은 정보의 흐름 때문이 아니라 그 정보를 접한 개인이 어떤 상태인지가 중요합니다. 그가 가정이나 학교, 친구관계 등에서 고립돼 있다면 악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처럼 정보를 발신하는 측(표현자)를 봉쇄한다고 가족, 학교, 친구관계가 붕괴돼 손 쓸 수 없는 상황에 빠진 청소년들이 나아질까요? 저는 도쿄도가 그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 계발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본만화에는 미성숙한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이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만화들이 일본만화의 독자적 발전을 견인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아마추어 작가들이 대량으로 배출될 수 있었던 것도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작품으로 평가하는 풍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상 청소년'의 섹스묘사를 규제한다는 것은, 명목상으로는 청소년만을 대상으로 한 규제입니다만, 이번 조치로 인해 일본만화를 지탱시켜 온 아마추어 작가군이 감소한다면 일본 만화산업 자체가 크게 후퇴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