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한국영화제가 열릴 예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영화제 개막을 앞둔 일주일 전이었다.
영화제 소식을 먼저 알았다기보다는 러블리 페이스의 그녀, 신민아가 도쿄를 찾았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한국 인터넷 신문을 보면, 하루에 한 번꼴로 신민아의 화보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인기. 그런 그녀의 도쿄 방문인지라 약 50여 사의 미디어들이 몰려들었다.
신민아가 도쿄를 찾은 이유는 의외로 작은 영화제를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신민아 주연의 영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가 일본에서 상영을 앞두고 있어 무대인사 겸 인터뷰 차 실로 몇 년 만에 찾는 도쿄였다.
▲ 도쿄 무대인사에 나선 신민아 © jpnews/ 幸田匠 | |
요즘 제일 잘 나가는 여배우가 해외의 작은 영화제 무대인사에 참석하는 것은 드문 일. 영화제를 기획한 시네마스코레 키마타 준지 매니저 역시 신민아의 참석 소식에 놀랐다고 했다.
"영화제를 기획하면서 도쿄 방문을 요청하기는 했지만, 정말 참석할 거라고는 생각 안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참석하겠다는 연락이 왔죠. 신민아 씨는 자신의 영화에 대한 애정이 크고, 더 큰 영화배우로 성장하고 싶어합니다. 때문에 일부러 찾아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 의견에 대해서는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를 찍은 부지영 감독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이전에도 신민아 씨는 영화 홍보를 위해 도쿄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만, 한류스타 남자배우들의 파트너, 보조역할 출연자 역할로 찾았어요. 최근에 신민아 씨는 저예산 영화라도 자신이 영화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연기자를 희망하고 있어서,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를 찍고, '키친'이라는 작품을 찍었죠"
어쨌든 영화제 홍보가 가장 고민이었다던 키마타 씨에게 신민아는 천사나 다름없었다. 신민아의 깜짝 방문으로 '진! 한국영화제'는 톡톡히 홍보 효과를 봤다고 했다.
신민아 뿐만 아니다. 영화제에는 <날아라 펭귄>에 출연한 배우 최규환, 그리고 임순례, 노진수, 부지영, 오점균 등 감독 4명도 참석했다.
특히 최규환은 일본 진출을 위해 지난 1월부터 고베에서 어학 연수를 하고 있던 중 영화가 개봉되어 한달음에 달려온 모습이었다. 이들이 이렇게 반갑게 도쿄를 찾은 이유는 각자가 자신있는 작품을 들고 왔기 때문이다.
진! 한국영화제 어떤 작품이 상영되나?
지난 2월 27일에 개막한 '진! 한국영화제'는 총 4편의 한국 영화를 상영한다. 임순례 감독의 <날아라 펭귄>, 노진수 감독의 <하늘을 걷는 소년>, 부지영 감독의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오점균 감독의 <경축! 우리사랑> 등의 네 작품으로 한국에서 크게 흥행하지는 않았지만 잔잔한 감동을 주었던 현대 가족 이야기 4편이 선정되었다.
한국의 독립영화 전문배급사인 키노아이의 일본 지사 키노아이 재팬, 1980년대부터 한국영화를 일본에 소개한 배급사 시네마스코레, 1990년대부터 미공개 한국영화를 소개한 영화제 시네마코리아 등 3사가 참여하여 영화제를 탄생시켰다.
일본에 들어오는 영화들이 대부분 한국에서 흥행한 영화, 스케일이 큰 영화, 폭력적인 영화인 점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한국의 서민들과 있는 그대로의 삶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를 일본인들에게 소개하고 싶어서 이런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시네마스코레 키마타 준지 매니저는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랐다고 할까. 이 작품을 언젠가 일본에서 상영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라며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본인들이 한국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때문에 영화제 타이틀도 <진! 한국영화제>가 되었다. 과장되고 포장된 한국의 모습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소망이다.
▲ 진! 한국영화제가 개최중인 포레포레 히가시나카노 © jpnews | |
영화제에 상영되는 작품을 하나씩 살펴보면, 우선 <날아라 펭귄>은 교육열을 올리는 엄마, 기러기 아빠, 베지테리언 신입사원과 흡연을 발각당한 여사원이 등장하여 한국 사회의 단면을 들춘다.
<하늘을 나는 소년>은 사고를 위장한 자살을 꿈꾸는 퀵서비스 아가씨와 수취를 거부당한 8살짜리 아이의 여행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키마타 씨가 영화제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된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는 의붓자매와 성동일성장애라는 기묘한 결합을, <경축! 우리사랑>은 중년의 금기된 사랑을 소재로 하여, 때로는 눈물을, 때로는 미소를 짓게 하는 잔잔한 영화 네 편이 선정되었다.
지난 28일, 기자가 영화관을 찾았을 때는 마침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상영을 마쳤을 무렵, 감독과의 대화를 남겨놓고 있었다.
▲ 진! 한국영화제 감독과의 대화- 부지영 감독 © jpnews | |
여성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쓴 작품인데다가 신민아, 공효진 두 여배우의 영화인지라, 관객도 여성이 많지 않을까라는 예상을 했었는데, 의외로 남성 관객들이 꽤 많았다. 얼핏 봐도 2~30여 명 정도. 연령대는 어머니와 함께 온 듯한 10대부터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장년층까지 다양했다.
엔딩크레딧이 다 흘러가도 미동도 없이 스크린을 응시하던 관객들은 부지영 감독과의 대화에서 감상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도쿄국제영화제를 비롯하여 이번에 세번째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를 보고 있다는 중년의 여성 관객은
"이모 역할을 하신 분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며 "
카메라 하나로 따라가듯이 찍은 이유가 있느냐"며 세 번이나 영화를 본 팬으로서 구체적인 질문을 했다.
영화팬으로서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전 영화를 두 번 봤는데요"라고 밝힌 중년 남성은
"클라이막스 부분, 반전 부분에 대단히 놀랐다. 그런데, 명주(극 중 언니 역할)는 왜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같이 여행을 떠났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 감독과 진지한 대화를 나눈 관객들 © jpnews | |
구체적이면서 심층적인 질문에 부지영 감독도 열심히 대답하는 모습이었다.
30대 정도로 보이는 한 남성은
"전 이 영화 첫번째 보는 데 설마..하는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참신한 내용인데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게 되셨나요? 성동일장애라는 것이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나요?"라고 질문.
부지영 감독은
"사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 여자만 있는 집에서 자랐는데, 한국에서는 결손가정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동정의 눈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나의 친언니는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언젠가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가족의 우월함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고, 영화가 만들어지게 되었다"며 솔직하면서도 명쾌한 답변을 이어갔다. 감독과의 대화시간이 끝이 났지만, 좀처럼 극장 앞을 떠나지 못하는 관객들. 극장 앞의 의자에 앉은 부지영 감독에게 사인을 요청하기도 하고, 기념사진을 찍기도 하는 등 대단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눈치였다. 이들 중 대부분이 <진! 한국영화제>에서 상영하는 4편의 한국영화를 전부 보려는 이들이었다.
▲ 사인을 하고있는 부지영 감독 © jpnews | |
도쿄 롯본기에서 it 관련 일을 하고 있다는 남성은 "한국 영화를 대단히 좋아합니다. 오늘은 쉬는 날이니까 4편을 몰아서 보려고 왔습니다"며 흥분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어의 독특한 억양에 매료되어 보기 시작해 한국 영화 팬이 되었다는 그는 좋은 한국영화가 많이 개봉할 수 있었으면 한다는 소망을 전했다.
<진! 한국영화제> 4편의 영화들은 2월 27일부터 3월 19일까지 3주간 도쿄 포레포레 히가시 나카노에서 상영중이다.
◇ 진! 한국영화제 홈페이지::: http://cinemakorea.org/rkcf/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