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동계올림픽이 개막됐다. 동아시아 축구선수권 대회도 개최중이다. 골프의 이시카와 료는 pga 개막전을 성공적으로 장식했다. 가메다 복싱 3형제 중 차남인 가메다 다이키도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가히 스포츠뉴스의 전성시대라 부를만 하다.
그러나 이 뉴스들은 '메인'이 아니다. 물론 메인면을 장식했다. 하지만 세간의 관심은 여전히 전 요코즈나 아사쇼류(朝青龍)에 집중돼 있다. 특히 스포츠신문과 주간지는 아사쇼류의 일거수 일투족을 좇고 있다.
바꾸어 말한다면 아사쇼류는 그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인 셈이다. 사실 휴먼 인터레스트(human interest)를 자극하는 모든 요소를 아사쇼류는 갖추고 있다. 기자 역시 그의 스모를 보며 몇 번이고 주먹을 불끈 쥔 적이 있다. 그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괴력과 카리스마 때문이 아니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절체절명의 대회에서 우승하고 마는 드라마속의 주인공을 아사쇼류는 충실히 재현했기 때문이다.
마치 영화같은 그 모습을 보며 대중들은 열광했다. 스모장 밖에서는 여러 문제를 일으키는 천하의 악동이었지만 스모대회가 시작되면 누구나 아사쇼류에 빠지기 마련이다. 또다른 요코즈나 '모범생' 하쿠호'(白鵬)에게는 없는 매력이다. 아니, 사실 지금까지 이런 독특한 매력을 선보인 요코즈나는 그다지 많지 않다.
작가 이쥬인 시즈카(伊集院静)는 아사쇼류의 은퇴를 누구보다도 아쉬워 한 사람중 한 명이다. 그는 <주간문춘>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아사쇼류만이 욕을 먹어야 할 만큼 나쁜가? 그는 대중을 끓어오르게(沸かせる) 만드는 거의 유일한 존재였다. 21개 대회 동안 혼자서 요코즈나의 지위를 지켜왔다. 온갖 스모협회의 잡음에도 불구하고 대회장에는 수많은 팬들로 북적거렸다. 이 모든 것은 사실 요코즈나 아사쇼류 혼자서 견인한 것이다." 이쥬인 씨는 "스모가 국기라고 암만 주장해봐야 팬들을 흥분시키지 못하면 '프로'로서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즉 아사쇼류가 보여준 파이팅넘치는 승부욕과 투쟁심, 투지에 스모팬들이 갈채를 보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아사쇼류는 스모선수의 본래모습을 충실히 따른 것이다.
▲ 더 이상 '아사쇼류'의 그 호쾌한 스모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야마모토 히로키/jpnews | |
요코즈나 심의위원회를 비롯해 스모협회 고위 관계자들은 아사쇼류가 크고 작은 트러블을 일으킬 때마다 "요코즈나의 품격"을 거론했다. 이 말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 였다. 당시 아사쇼류는 부상회복이라는 이유로 준교(巡業, 스모협회가 주관하는 순회사업)를 결장한채 몽골로 일시귀국했다. 그러나 <후지tv> 등은 부상회복을 위해 귀국한 아사쇼류가 활발하게 축구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도했다.
이 사실을 접한 요코즈나 심의위원회의 우치다테 마키코(61, 작가)는 "요코즈나는 강하다고 해서 모든 걸 용서받는게 아니다. 요코즈나에게는 '요코즈나의 품격'이 요구된다. (거짓말로) 협회를 기만하고 스모팬들을 배신한 아사쇼류는 은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으로 인해 그녀에게는 '아사쇼류의 천적'이라는 닉네임이 붙여졌고 '요코즈나의 품격'이라는 단어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과연 요코즈나는 '품격'이 필요한 것일까? 아니 그 이전에 스모가 과연 일본의 국기인가? 스모는 17세기 에도시대부터 에도(江戸, 도쿄)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시작된 흥행사업이지만 처음부터 낭인(사무라이) 집단과 깊은 관계를 가져 1648년에는 스모금지령까지 내려질 정도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스모가 오늘날과 같은 지위를 얻게된 것은 메이지덴노(明治天皇)의 취미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덴노라는 신분에 걸맞지 않게 스스로 훈도시(ふんどし, 스모식 샅바)만 차고 스모를 즐기는 등 열광적인 스모팬으로도 유명했다. 이런 메이지덴노의 모습을 본 이토 히로부미가 스모육성과 그 지원에 온 힘을 쏟았다. 그 결과 스모가 오늘날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애초 스모선수에게 품격을 요구하는 건 무리가 따른다. 스모의 역사를 봐도 에도시대의 스모선수들에게 품격이 있었다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스모라는 격투기의 특성상 예의바름을 요구하는 품격은 양날의 검이 될 수 밖에 없다. 승부사들에게 예의를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사실 스모는 이런 류의 규제가 많다. 이를테면 도효(土俵, 흙으로 쌓아 만든 스모시합장)가 그렇다. 지금도 이 도효에는 여성이 올라가선 안된다는 룰이 있다. 도효는 신성한 것이기 때문에 감히 여자가 올라가서는 안된다는 이유다. 하지만 스모협회는 이를 '전통'이라고 강변한다.
'악동' 아사쇼류는 보수적인, 너무나 보수적인 일본 스모계에서는 별종 중의 별종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스모협회가 그의 은퇴를 쌍수들어 환영하고 있다는 말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기자는 이런 분위기를 지난 07년 실제로 느꼈다. 아사쇼류가 몽골에서의 '꾀병축구' 이후 다시 일본으로 귀국했을 때였다. 이날 나는 국기관에서 아사쇼류와 요코즈나 심의위원회가 대면했던 현장을 직접 취재했었다. 이때 요코즈나 심의위원회의, 아사쇼류를 향한 그 고압적이고 보수적인 태도는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항변하고픈 부분이 있을 법한데 아무 말없이 묵묵히 그들의 말을 듣고 있는 아사쇼류가 오히려 인상적이었을 정도다.
스포츠 저널리즘은 '선수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데서 출발한다. 굳이 저널리즘 뿐만이 아니다. 일정한 지위에 올라간 프로선수에 대해 예의를 지키는 것은 '요코즈나의 품격'만큼이나 중요하다. 게다가 요코즈나 심의위원회는 제3자 기관으로 그 구성원들은 스모협회의 위촉은 받은 비(非)스모인으로 구성된다. 현역시절의 경험을 지닌 오야가타(親方, 관장)들로 구성된 스모협회와는 전혀 다르다.
당시 심의위원회의 위원장은 에비자와 가쓰지(海老沢勝二) 전 일본방송협회(nhk) 회장이었다. 에비자와 씨는 흔히 '에비정일'로 불린다. 이 별명은 북한의 김정일 총서기에서 따온 것으로 물론 'nhk의 독재자'라는 의미를 지닌다.
대표적인 일화가 '국회방송 중단'이다. 일본국회는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회기중 국회내에서 진행되는 여야당의 질의응답을 nhk를 통해 방송한다. 꼭 방송해야 한다는 규칙은 없지만 국민의 시청료, 즉 세금으로 운영되는 nhk가 국회방송을 하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에비자와 씨가 회장으로 재직중이던 2004년 nhk의 대표적 방송 '홍백가합전' 책임프로듀서의 제작비 유용문제가 터졌다. 이 문제는 국회에서도 크게 논의되었고, nhk의 최고책임자였던 에비자와 씨도 중의원 본회의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때 nhk는 에비자와 씨가 증인심문을 받는 2004년 9월 9일 국회방송을 일부러 하지 않았다. nhk는 '편집권의 자유'를 이유로 내세웠지만 이 방송중단에는 에비자와 씨의 강제적 명령이 있었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또한 에비자와 씨의 아들이 nhk에 입사한 것을 두고도 말이 많았다.
이런 인물에게 몽골에서 온 젊은 외국인 선수에게 예의를 지켜달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아사쇼류의 은퇴를 강요한 2010년도 사실 비슷하다. 물론 이번에는 요코즈나 심의위원회가 직접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2월 4일 아사쇼류 처분문제를 두고 료코쿠(両国) 국기관에서 열린 제1차 이사회의 면면을 보면 아사쇼류는 은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이 날 이사회 출석 멤버는 다카노하나(貴乃花) 신임이사를 포함해 스모협회 소속 이사 10명과 외부이사 2명, 그리고 외부감사 1명 도합 13명이었다. 하지만 스모협회의 의견은 '해고처분'과 '5시즌 출장 금지'로 팽팽했었다.
<주간문춘>은 협회관계자의 입을 빌려 "무사시가와 이사장과 신임 다카노하나 이사를 비롯해 5명의 이사는 해고처분에 찬성이었지만 나머지 5명은 그것에 반대했었다"고 보도했다. 즉 스모협회만 놓고 보면 5대5로 팽팽하게 맞섰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나머지 2명의 외부이사와 외부감사가 강력하게 해고를 요구했다고 <주간문춘>은 보도했다.
그런데 이 외부이사와 감사의 경력이 재밌다. 무라야마 히로요시(村山弘義) 외부이사는 전 도쿄고검장 출신이다. 재직시절 우익, 좌익, 야쿠자 등 조직범죄를 전담한 공안통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요시노 준(吉野準) 외부감사는 경시총감 출신이다. 요시노 씨의 저서인 '정보국가의 추천(情報国家のすすめ)'을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강경보수파인지 알 수 있다. 국가가 정보를 효과적으로 컨트롤하고 통제해야만 일본사회가 풍요로워진다는 요시노 씨는 이 책을 통해 구(旧)사회당 계열을 난도질했다.
이 검경 출신의 두 명이 아사쇼류의 해고를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폭력사건' 의혹 때문에 더더욱 그랬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사건은 아직 의혹차원으로 피해자인 클럽 오너의 진술도 번복되는 등 아직 진상이 제대로 밝혀진 것이라고 할 수 없다.
▲ 07년 몽골에서의 꾀병축구로 물의를 일으킨 아사쇼류가 귀국후 국기관에서 요코즈나 심의위원회로부터 주의를 받았다. 탁자 건너편 왼쪽이 다카사고 관장, 오른쪽이 아사쇼류. 사진 오른쪽 아래가 에비자와 가쓰지 위원장이며 그 옆이 우치다테 마키코 씨다. ©요시가와 다다유키/jpnews | |
그런데도 스모협회는 성급하게 아사쇼류를 내쳤다. 해고를 당하면 그간의 공로금, 적립금, 은퇴시합 수익금 등 4억엔 상당의 돈을 받지 못하게 된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따 몽골의 친족들과 함께 세운 'asa그룹'의 현금사정이 좋지 않은 아사쇼류 입장에서는 이 돈을 받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은퇴할 수 밖에 없었던 셈이다.
한편 스모협회도 '요코즈나는 스스로 은퇴할 때만 물러날 수 있다'는 오랜 '전통'을 지킬 수 있게 됐다. 있지도 않았던 '요코즈나의 품격'이라는 말까지 만들어 내면서 지난 3년간 줄곧 은퇴를 종용해 왔던 스모협회는 어쩌면 앓던 이가 빠진 심정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폭력행위는 나쁘다. 하지만 이런 사건이 터지기 이전에 그의 스승인 다카사고와 스모협회 관계자들은 왜 아사쇼류에게 주도(酒道)를 가르치지 못했는가? 이쥬인 시즈카 씨가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긴자의 한 클럽에서 아사쇼류가 후원자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언젠가 문제가 터지겠구나 싶었다. 아사쇼류의 술버릇은 스승인 다카사고는 물론 스모협회 관계자들도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진정 그들이 아사쇼류의 '품격'을 원했다면 이전에 무슨 조치를 처했어야 했다." 일본의 스모선수들은 모두 스모협회에 등록돼 있다. 소속된 선수(力士)들의 됨됨이를 지도하는 것도 스모협회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하지만 일본스모협회는 아사쇼류를 비롯해, 특히 외국인 스모선수들에 대해서는 그 지도임무를 소홀히 했다.
또한 그들이 소속된 도장(部屋)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선수들의 '책임'은 엄하게 물으면서도 그들을 1차적으로 지도할 책임이 있는 관장(親方, 오야카타)은 월급감봉 등 가벼운 징계만을 받았다. 아사쇼류의 스승도 마찬가지다. 현역 요코즈나가 폭력행위 의혹에 따른 불상사로 인해 은퇴를 강요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카사고 관장은 감봉 및 2단계 지위하락의 가벼운 처분만 받았을 뿐이다.
08년 9월 대마초 양성반응으로 스모협회로부터 해고처분을 받은 로호(露鵬) 등 러시아 출신 스모선수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쓸쓸히 귀국길에 올랐지만 정작 그들이 소속돼 있던 오오타케(大嶽) 도장의 오오타케 다다시게 관장은 경고만 받았을 뿐 실질적인 처벌은 전혀 받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스모협회의 고질적인 인맥・파벌주의는 올해 있었던 이사회 선거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났다. 일본 스모협회의 최고의결기구인 이사회는 12명의 이사로 구성된다. 이중 10명이 스모협회 내부에서 선출되고 2명은 외부에서 초빙된다.
그런데 이 10명의 이사직은 일본 스모계의 5개 파벌이 나눠먹기 식으로 가져간다. 데하네우미(出羽海), 니쇼노세키(二所ノ関), 다쓰나미(立浪), 도키쓰카제(時津風), 다카사고(高砂)로써 각각 3명, 3명, 2명, 1명, 1명씩 이사를 배출해 왔다. 선거권을 가진 관장이 총 105명이므로 이사당선 라인은 10~11명선이다. 이 '전통'은 과거에 몇 차례 불협화음을 겪었지만 2002년 기타노후미(北の湖) 전 이사장 시절 정착됐다.
하지만 올해 이 나눠먹기가 공식적으로 깨졌다. 니쇼노세키 그룹 소속인 다카노하나가 그룹의 결의에 반대해 독자적으로 출마해 이사로 선출된 것이다. 문제는 나중에 발생했다. 다카노하나에게 표를 던지는 바람에 다쓰나미 그룹의 후보자가 이사직에서 탈락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다쓰나미 그룹은 '배신자'를 찾기 위한 긴급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아지가와(安治川) 관장은 자신이 다카노하나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고 실토하면서 "그룹의 총의(総意)에 반하는 결정을 내린 것에 책임을 지겠다"며 스모계에서 영원히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아지가와 관장의 이 은퇴결정은 여론의 역풍을 의식한 스모협회의 만류로 없었던 일이 됐다. 그러나 이 사례만 보더라도 스모협회 이사회 선거가 얼마나 비민주적으로 치뤄지는지 잘 알 수 있다.
이런 스모협회의 잘못된 관행, 보신주의를 상당부분 커버해 온 이가 바로 아사쇼류다. 아사쇼류는 비록 사생활에서는 문제를 일으키는 '악동'이었지만, 본 시합에 나서기만 하면 관객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지게 만드는, 진정한 스모를 선보인 '승부사'였다.
결국, 결전에 나서기 전 제한시간이 됐음을 알리는 심판(行司)의 신호가 울리면 여지없이 나오는, 오른손으로 자신의 배를 강하게 두드리며 기합을 넣는 아사쇼류의 그 우렁찬 포효를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과연 일본 스모협회가 아사쇼류를 대신할 수 있는 '선물'을 스모팬들에게 선사할 수 있을까? 내 예상으로는 단 시일내에 아사쇼류에 버금가는 선수를 만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