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국기로 불리는 스모.
스모는 '반즈케(番付, 랭킹)'가 모든 것을 말한다. 이 '반즈케'의 최고 정점에 요코즈나(横綱)가 존재한다. 요코즈나는 한국씨름의 천하장사와 전혀 다르다.
천하장사는 매 대회마다 바뀔 수 있지만 요코즈나는 자신이 은퇴선언을 하지 않는 이상 계속 그 자리에 머물 수 있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휴장(休場, 대회를 쉬는 것)을 해도 된다.
실제 '헤이세이의 대 요코즈나'(平成の大横綱)라 불렸던 다카노하나는 부상으로 약 1년 2개월간 7개 대회를 연속으로 결장했지만 요코즈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또한 요코즈나는 덴노(天皇)와 독대가 가능한 유일무이한 존재다. 지방순회 시에는 퍼스트클래스 지정적이 교부된다. 또 요코즈나는 현역이면서도 스모협회의 평의원 자격을 얻어 각종 선거에 참가할 수 있으며, 은퇴시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도장(部屋, 헤야)도 운영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요코즈나의 특권이다.
물론 이런 특권을 누리기 위한 품격과 절대적 강함을, 요코즈나는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일본에서는 현역 요코즈나가 형사사건에 연루되는 말썽을 일으켜 사회가 들썩거리고 있다. 몽고출신의 괴물 요코즈나 아사쇼류(朝青龍)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 요코즈나 아사쇼류의 폭행사건을 다룬 <주간신초>의 특종기사 ©jpnews | |
아사쇼류는 2010년 첫 대회(初場所, 1년 동안 개최되는 6번의 정규대회 중 가장 먼저 열리는 대회. 각 대회는 총 15일간 진행된다)에서 13승 2패의 성적으로 25번째 우승을 기록하는 등 발군의 기량을 선보였다.
하지만 1월 23일 우승을 확정지은 14일째 시합 후 아사쇼류 특유의 승리포즈는 나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16일 심야에 벌어졌던 소동 때문이었다.
사진주간지 <프라이데이>(1월 22일 발매호)는 도쿄 롯폰기의 클럽에서 만취될 때까지 술을 마신 아사쇼류의 헝클어진 모습을 대문짝만하게 보도했다. 이 잡지에 따르면 아사쇼류는 술만 마신 게 아니라 니시아자부(西麻布) 도로변에서 '지인'을 구타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요코즈나의 품격이 걸린 중대한 상황이다. 대회기간 중에 술을, 그것도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마신 것도 문제지만 사람까지 때렸다면 그냥 넘어갈만한 사안이 아니다.
<프라이데이>가 발매된 다음 날 스포츠신문들도 이 잡지를 인용해 후속보도를 실시하는 등 사태가 커질 기미가 보이자 아사쇼류 측은 즉시 스모협회에 사건의 경위를 설명했다. 또 구타당한 지인은 아사쇼류의 개인 매니저인 이치미야 씨라고 밝혔다.
이치미야 씨는 <스포츠호치> 등의 취재에 "요코즈나한테 양손으로 뺨을 맞고 목 울대를 한번 잡혔지만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치미야 자신이 스모선수로 활동한 경력도 있고, 아사쇼류의 개인매니저를 5년간 해 온지라 이 정도의 '체벌'은 단순한 해프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 <스포니치> 22일자는 "매니저가 크게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아 경찰이 움직일 가능성은 적다"고 보도했다. <닛칸스포츠> 역시 23일 "다카사고 도장(高砂部屋, 아사쇼류가 소속된 도장)의 다카사고 관장이 무사시가와 이사장에게 사건 경위를 설명하면서 구타당한 지인은 이치미야 씨가 맞다고 인정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이 모든 보도가 거짓말로 판명났다.
<주간신초>(2월 4일호)에 따르면 아사쇼류가 이날 취해서 때린 사람은 이치미야 씨가 아니라 도쿄 롯폰기에서 클럽을 운영하는 야마다(가명) 씨였다. 이 클럽은 연예인, 스포츠 선수들 사이에서 유명한 곳으로 야마다 씨 역시 연예인이 관련된 사건에 심심찮게 이름이 등장하는 유명인사다.
연예기자 네모토 씨는 "작년 각성제 흡입 및 소지 혐의로 체포된 사카이 노리코의 남편 다카소 유이치가 도쿄 시부야에서 현장체포됐을 때 그 옆에 있었던 수수께끼의 인물이 야마다 씨가 아니냐는 소문이 한동안 떠돌았다"고 말한다.
<주간신초>는 "아사쇼류도 야마다 씨가 운영하는 클럽의 단골멤버였다" 면서 가게 종업원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사쇼류 일행은 클럽 내의 vip 전용 룸에서 심야까지 술을 마셨다. 아사쇼류는 40도를 넘나드는 위스키를 10병 정도 마시는 등 엄청나게 취했다. 야마다 씨도 이 자리에 같이 있었는데 아사쇼류와 같이 왔던 일행들은 야마다 씨에게 '요코즈나 돌봐 줘라'는 부탁을 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아사쇼류는 이들이 자리를 뜬 이후에도 계속 술을 마셨다. 요코즈나의 술 파티가 끝난 시각은 새벽 4시였다. 사건은, 아사쇼류가 클럽을 나서면서 발생했다. <주간신초> 당시의 광경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아사쇼류가 새벽 4시에 클럽을 나서면서 통행인들에게 '비켜! 길을 열어. 이 자식들!'이라며 술주정을 해 댔다. 보다 못한 야마다 씨가 '요코즈나, 그러면 안됩니다' 라고 한 마디 하자 갑자기 아사쇼류가 야마다 씨의 가슴을 가격했다. 야마다 씨가 '왜 이러냐'며 항의하자 아사쇼류는 '차에서 이야기하자'며 야마다 씨를 차로 끌고 갔다. 야마다 씨가 뒷좌석에 타는 순간 아사쇼류가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태는 진정될 가능성이 있었다. 왜냐하면 야마다 씨가 "맞은 건 없던 걸로 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사쇼류의 폭주는 멈추지 않았다.
<주간신초>는 "아사쇼류가 운전수에게 '강으로 가자'고 명령한 후 야마다 씨한테 '내가 널 오늘 죽여버릴테니까'라고 협박했다"고 전한다. 이쯤되면 완벽한 '야쿠자'다.
이성을 완전히 잃은, 게다가 무시무시한 힘을 소유한 아사쇼류의 이런 협박성 발언에 야마다 씨는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야마다 씨는 10분후 기적적으로 탈출했다. 다른 차들이 교통사고를 내 도로가 정체되고 있을 때 빈틈을 노려 아사쇼류의 검정색 세단에서 뛰어 내린 것이다.
이 광경을 목격한 택시 운전수가 <주간신초>의 취재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검정색 세단(아사쇼류와 야마다 씨가 탄 차량)은 우리가 있던 곳에서 약 3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갑자기 차 문이 열리면서 '살려주십시오! 사람 죽어요!'라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를 듣고 우리 쪽 교통사고를 조사하던 경찰관이 급히 그쪽으로 달려갔다. 어두워서 확실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 남자(야마다 씨)가 '납치됐어요! 경찰관님 봤죠? 구타당했어요. 구타!'라고 절규하는 소리는 확실히 들었다." 야마다 씨는 아사쇼류로부터 구타당해 코뼈가 부러지는 등 전치 1개월의 중상을 입었다. 경찰차 3, 4대에 경찰관도 10명이상 몰려왔다. 그러나 아사쇼류는 이 날 경찰서에 끌려가지 않았고 그날 오후에 열린 '하쓰바쇼' 7일째 시합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승리했다. 보통 사람같았으면 바로 현행범으로 체포될 폭력사건이다. 이것도 요코즈나의 특권인가?
<주간신초>는 아사쇼류가 체포되지 않은 것에 대해 이렇게 보도했다.
"당시 다른 자동차를 타고 있던 요코즈나의 쓰키비토(付き人, 어느 정도 직급이 올라간 스모선수의 심부름꾼 역할을 하는 하급 스모선수. 요코즈나에게는 보통 15명 정도의 쓰키비토가 따라다님)가 경찰에 읍소했다. 그들은 '내일 시합에도 출장해야 하고 지금 돌아가서 아침 훈련도 하지 않으면 안된다. 대회가 전부 끝나면 경찰서에 출두해 전부 말할테니까 제발 부탁한다'고 말했다." 또한 경찰관계자 역시 이대로 체포했다간 엄청난 소동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 일단 방면했다고 한다. 경찰관계자의 말이다.
"아사쇼류는 때린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그런 변명이 통할 리가 없다. 그 자리에서 폭행사실을 인정하는 진술서에 서명을 받았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병원에 가서 진단서를 떼 오라고 어드바이스 했다. 당시 교차로 주변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어서 이대로 체포했다간 엄청난 소동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 체포하지 않았다." 경찰관계자, 피해자, 주변의 증언을 살펴볼 때 <주간신초>의 이 기사는 거의 사실로 보인다. 그렇다면 아사쇼류는 물론 아사소류의 스승인 다카사고 관장도 거짓말을 한 셈이 된다. 현역 요코즈나와 스모협회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관장이, 전치 1개월이나 나온 폭력사건을 없었던 일로 하려 했다는 말이다.
<주간신초>의 이 기사가 나오자마자 <스포니치>, <스포츠호치> 등 스포츠지들은 물론 <마이니치신문>, <아사히신문>, <산케이신문> 등 종합일간지들도 <주간신초>의 보도를 인용해 아사쇼류의 심야폭행을 크게 다뤘다.
<마이니치신문> 28일자는 "요코즈나 아사쇼류가 16일 새벽 4시에 개인 매니저가 아니라 음식점에서 일하는 지인을 때렸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남성은 요코즈나(아사쇼류)가 미안하다고 사죄한다면 문제시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요코즈나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 변호사와 협의한 후 25일 아자부 경찰서를 방문했다"라고 보도했다.
<산케이스포츠>는 이마무라 사토시의 칼럼을 통해 "이런 요코즈나 필요없다. 당장 은퇴시키고 철저한 수사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터넷 미디어 <제이캐스트>도 "스모협회가 도대체 언제까지 아사쇼류를 애지중지할 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며 빈정거렸다.
실제 아사쇼류는 08년 부상으로 대회를 결장, 고향인 몽고에서 요양을 하고 돌아온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시합에 출장하지 못할 정도의 부상이라던 그가 몽고에서 열린 자선축구시합에서 현란한 움직임을 선보이며 골을 기록하는 '건강한'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는 바람에 구설수에 올라야 했다.
물론 이 정도는 요코즈나의 '애교'로 너그러이 봐줄 수도 있다. 아사쇼류는 실력적으로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오면 그 다음 대회에서 우승해 버릴 정도로 '강함'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다른 요코즈나 하쿠호(白鵬) 보다 아사쇼류가 훨씬 팬이 많은 것도 이런 데서 연유한다. 언제나 화제를 몰고 다니는 아사쇼류가 팬들에게는 더욱 친밀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전치 1개월의 폭행사건이다. 게다가 폭행상대가 일반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격투기의 '프로'가 일반인을 상대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그냥 넘어가서는 안될 대형사건이다.
한편 아사쇼류 측은 29일 현재 별다른 입장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