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을 올려? 말어?
시부모님 되실 분들께 결혼하겠다고 연락을 드리고, 바로 우리 어머니께도 말씀을 올렸다.
엄마는 “일본에서 계속 살 거라면 일본 남자랑 결혼하는 것도 괜찮다”고 쿨 하게 반응하셨다. 아무 반대도 없으셨다. 우리 엄마의 명언 중 하나는 “안하는 것보단 하는 게 낫다”인데, 이건 결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자, 이제 결혼을 결정했으니, 혼인신고서를 내야지. 참, 그전에 결혼식은 어쩌지? 올려? 말어?
결혼에 대한 환상도 없었지만, 결혼식에 대한 동경도 없었다. 매일 엷은 화장에 평범한 복장을 하고 다니다가, 결혼식날 하루만 두꺼운 화장으로 변신하고 드레스까지 차려입은 공주. 솔직히 좀 쑥스럽지 않은가.
그렇지만, 10년이 넘는 일본생활을 통해 참으로 많은 좋으신 분들의 도움을 받았고, 그분들께 잘 커서 결혼을 한다는 인사를 꼭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결혼식을 올리기로 결정했다.
일본 사람의 결혼식에 대한 의식은 어떨까? ntt 리서치 회사 조사에 따르면, 남성의 18%, 여성의 14%가 결혼식을 올리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2008년 4월 조사)
또한, 남성의 41%, 여성의 30%가 둘이서, 또는 친척만 불러서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 대답해, 일본인의 절반은 화려한 결혼식을 꿈꾸고, 나머지 절반은 조촐한 결혼식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도 20대의 30%, 30대의 15%가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호적만 올렸다고 대답했다. 또 20대의 20%, 30대의 25%가 둘이서 또는 친척만 불러서 식을 올렸다고 한다. 즉, 결혼을 한다고 해서 꼭 식을 올릴 필요가 없다는 게 최근 일본인들의 의식인 것이다.
내 친구의 경우도 넷 중 하나는 식을 올리지 않고 살고 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거나, 자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식을 올릴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돈이 드는 것도 사실이고…….
그 돈을 다른데 쓰겠다는 현실파도 있지만, 결혼준비가 복잡하고 불편해서 안 올린다는 친구도 있다. 얼마전 내가 받은 엽서는 친구와 그 남편이 결혼기념으로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자전거로 일주일동안 일본을 누볐다는 친구의 엽서엔 둘이 나란히 자전거를 탄 모습이 새겨져있었다. 이 엽서가 없었으면 난 친구의 결혼소식도 모르고 지냈을 판국이다.
결혼식까지의 모든 것
(1)프로포즈
결혼이 결정되자, 남편은 정식 프로포즈를 했다. 그건 그의 생일이기도 했다. 그리곤 둘이 약혼 반지를 맞추러 갔다. 약혼반지는 여자만 받는다. 긴자, 신주쿠 등을 돌았는데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보석이 너무 튀면 매일 하고 다니기엔 부담스러울 것 같고, 그렇다고 너무 작아도 좀 안쓰러울 듯 했다. 우연히 들어간 시부야의 한 보석방에서 꽃모양으로 펼쳐진 다이아몬드 반지를 발견했다.
지금까지 봤던 것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탈리아의 한 공방이 만든 샘플이라 하나 밖에 없을 뿐더러, 가격도 많이 저렴한 편이었다. 한 달쯤 고르고 고른 반지는 두 주 후, 오동나무 상자에 담겨, 유이노우(結納)의 형태로 우리집에 왔다. 유이노우란 우리식의 함과 같다. 혼인이 성립되었단 증거로 물품을 건네받는 것이다.
(2)상견례
프로포즈 이후엔, 상견례가 있었다. 상견례 회장으로 유명한 롯폰기의 호텔에서 처음으로 양가 부모님께서 얼굴을 마주하셨고, 한 시간 반쯤 걸렸다. 부모님 사이에서 결혼식 비용 얘기가 오가지도 않았고, 잘 부탁한다는 말만 나누기에도 긴장되던 하루였다.
(3)식장 고르기
일본의 결혼식은 결혼예식, 피로연, 2차 파티로 나뉜다.
결혼예식은 그야말로 예식이다. 보통 30분쯤 걸린다. 교회에서 하거나, 목사를 부르는 기독교 형식, 신사에서 하는 신전식, 목사나 주례사 없이 신랑 신부가 자신들의 입으로 결혼을 선포하는 인전식(人前式), 크게 이 세 가지로 나뉜다.
얼마전 여배우 사와지리 에리카가 메이지 신궁에서 결혼예식을 올렸는데, 최근엔 신사에서 올리는 일본식 결혼이 인기다. 그렇지만, 부동의 1순위는 뭐니뭐니 해도 기독교 형식이다. 각 예식장마다 교회를 하나씩 가지고 있고, 결혼식이 있을 때만 목사를 불러 식을 거행한다.
일본인의 경우, 종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식 때만 하느님을 찾는다. 한편 결혼예식은 가족과 절친한 친구만 부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우리 가족이 천주교다 보니, 천주교에서 올리기로 했다. 남편은 무교인데, 도쿄의 명동성당이랄 수 있는 마리아 대성당에 한 번 가보고 성당의 엄청난 규모와 웅장함에 반해, 꼭 여기서 결혼해야겠다고 나보다 더 좋아했다.
바로 혼인 교리를 신청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회사가 끝나고 성당에 달려가 혼인 교리를 받았다. 나야 천주교 신자지만, 천주교가 뭔지 하느님이 뭔지도 모르는 남편에겐 여간 고달픈 수강이 아니었다. 그치만 그는 군소리 없이 잘 참아주었다.
피로연은 결혼예식을 올렸음을 보고하는 파티다. 직장 상사, 동료, 대학 은사 등을 모시고, 친척과 절친한 친구를 부른다. 피로연 하객은 평균 75명(젝시조사 2009). 약 3시간에 걸쳐 진행되는 성대한 파티로, 주로 호텔 피로연장, 레스토랑, 정원 등에서 이루어진다.
흐름은 보통, 신랑, 신부 입장→신랑의 감사 인사→상사의 축하 인사→건배→신랑, 신부 퇴장(드레스 갈아입기)→ 신랑 신부의 결혼 비디오→신랑, 신부 재입장→친구들의 장기자랑→신부의 편지 읽기→부모님께 선물 증정→신랑, 신부 퇴장→하객 퇴장 까지다.
축의금은 평균 1인당 3만엔이며, 이 비용은 식사비 만 5천엔, 음료비 3-4천엔, 피로연장 렌탈 비용, 화환비용 등으로 쓰이게 된다.
우리는 결혼 피로연은 아오야마 스파이럴 빌딩안에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을 선택했다. 우리 보다 한해 먼저 결혼하신 아주버님이 호텔에서 결혼을 하셔서 같은 장소를 피하기 위해 레스토랑 웨딩을 택했다.
피로연 후보로 5곳쯤 가서 음식을 먹어보고 결정한 곳이었다. 아오야마 스파이럴 라마주 레스토랑을 선택한 이유는 아오야마란 장소부터가 세련됐고, 음식이 유난히 맛있어서, 고급스러워 손님을 초대하기 좋아서였다.
2차 파티는 피로연 자리가 부족해 부르지 못했던 친구들을 부르는 자리다. 피로연보다 가벼운 분위기에서 이루어진다. 입석 파티의 경우가 많다. 피로연 회장에서 5분 거리의 장소를 택했고, 약 120명이 참석했다. 2차 파티의 경우, 축의금이 아니라, 대체로 회비로 운영된다. 회비는 남자 8,000엔-만엔, 여자 5,000엔-8,000엔 가량이다.
일본 결혼 비용의 모든 것
결혼 정보지 젝시가 조사한 <결혼 트렌드 조사 2009>에 따르면 결혼 평균 비용은 433만엔. 결혼예식, 피로연 총액은 331만엔이라고 한다. 그 평균 비용과 필자가 실제로 쓴 비용을 비교해보자.
내역 |
평균비용 |
필자가 쓴 비용 |
결혼예식 |
24만엔 |
25만엔
성당에서 올린 결혼예식비
*남편이 부담
|
피로연 음식 비용 |
118만엔
(프랑스요리 풀코스 1인당 만 5000엔,
음료 3600엔)
평균 하객 75명분
|
160만엔
(프랑스요리 풀코스 1인당 만 6천엔,
음료 4000엔, 코스가 다양했으나 하객분들께 맛난 음식을 대접하고자 비싼 코스를 택했다)
하객 80명분
*시댁과 내가 절반씩 부담
|
비디오촬영 |
15.3만엔 |
0엔
(신랑이 방송관련일을 하다보니, 신랑회사에서 공짜로)
|
피로연 손님이 가실 때 드리는 선물 |
32만엔
평균하객 75명분
|
36만엔
하객 80명분
*시댁이 부담
|
웨딩케이크 |
평균 5.8만엔 |
0엔
디저트 뷔페가 있어 따로 하지 않음
|
피로연장 화환 및 테이블 장식 |
17만엔 |
20만엔
*내가 부담
|
피로연장 사용료 |
22만엔 |
18만엔
*시댁이 부담
|
드레스등 |
웨딩드레스:23만엔
컬러드레스:19만엔
신랑예복:13.6만엔
|
웨딩드레스:10만엔(하와이에서 구입. 해외에서 구입시 더 저렴함)
한복:0엔(이모님선물)
신랑예복:8만엔
*내것은 내가 부담, 신랑 것은 신랑이 부담
|
신혼여행 |
55.6만엔 |
30만엔
(신혼여행지는 하와이, 5박 6일)
*비행기 티켓은 시부모님선물
*호텔비용은 내가 부담, 나머지는 신랑이 부담, 호텔비도 지인의 소개로 50%dc를 받음
|
사진촬영 |
20.4만엔 |
600달러
(신혼여행지인 하와이에서 현지 카메라맨이 촬영함. 디지털 사진 1000장과 헤어메이크업 비용 포함)
|
살집 마련 |
보증금:30.7만엔
월세:10.3만엔
|
보증금:34만엔
월세:13만엔(시부야구, 1ldk)
*보증금은 신랑이 부담, 나머지 월세는 같이 부담
(일본의 경우 월세부터 출발함. 전세 제도는 없음. 시부야구 중심가의 새로진 아파트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함)
|
혼수 |
가구구입:50.3만엔
가전제품:42.9만엔
|
가구구입:20만엔
*친정이 부담
(신랑이 쓰던 가구와 가전제품을 그대로 사용함)
|
결혼 비용은 시부모님께서 많이 도와주셨고, 3분의 1은 내가 저축해 놓은 걸로 부담했다. 우리 홀어머니께 부담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혼수란 개념이 없어서 결혼 피로연에 가장 많은 비용이 들었다. 손님 대접을 제대로 하고 싶었기 때문에 음식도 가장 좋은 코스로 골랐고, 술도 가장 좋은 걸로만 대접해드렸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피로연 비용은 하객분들이 낸 축의금으로 고스란히 거둬들일 수 있다. 1인당 3만엔이 평균 축의금으로, 80명분이면 240만엔이다. 피로연 음식비, 피로연장 사용비, 화환비, 손님께 드리는 선물 비용, 드레스 비용 등등을 다 합치면, 약 240만엔 가량이 된다.
즉, <하객의 축의금=피로연회비>란 계산이 나오는데, 남는 것도 없고, 더 쓰는 것도 없는 돈계산이 확실한 일본다운 연회석이다.
(9부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