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유명한 검색 사이트 구글이 있다.
아마 모두들 한번쯤은 들어봤을 테다. 한국에서는 네이버나 다음 등 국산 토종 포털 사이트가 워낙 강력해 점유율이 낮지만, 일본에서는 <야후! 재팬>의 아성을 넘 볼 정도로 급성장하고 있다.
특히 이쪽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거의 구글이 제공하는 지메일 서비스와 검색 서비스를 활용하는 듯 하다. 실제로 회사 메일이 아닌 사적인 메일을 주고 받을 때 지메일 어드레스 주소가 압도적으로 많다.
나도 구글맨이다. 검색은 물론 지메일, 날씨, 지도, 애드센스, 어낼리틱스 서비스까지 사용할 정도니까 꽤나 구글에 빠져있는 셈이다.
오늘 오후 구글 검색을 하던 중 재미있지만, 너무나 슬픈 사실을 발견하고 말았다. 보통 일본회사는 오늘부터 신년 연휴에 들어가는데 <제이피뉴스>는 1월 1일 아침까지 일이 잡혀 있다(2일과 3일은 쉰다).
12월 31일 자정이 지날 때 아내에게 선물을 하는 게 그간의 습관이었다. 하지만 이번 해는 그게 어려울 것 같아 인터넷으로 선물을 주문해 12월 31일날 집에 도착하도록 했다.
구글에서 "아내 프레젠트"를 검색했다. 먼저 일본어로 아내를 의미하는 '쓰마(妻)'를 넣고 스페이스 바를 눌렀다. 그런데 스페이스 바를 누르는 순간 검색창에 후보 검색어들이 좌라락 나열된다. 아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이거 상당히 편리한 기능이다.
▲ '妻'를 넣고 한 칸 띄면 주로 검색되는 단어들이 옆에 뜬다. © 구글 웹페이지 캡쳐 | |
妻 ヒステリー (히스테리)妻 誕生日プレゼント ランキング (생일선물 랭킹)妻 誕生日プレゼント (생일선물)妻 焼酎 (소주)妻 呼び方 (호칭)妻 プレゼント (선물)妻 謙譲語 (겸손어)妻 うつ (우울증)妻 プレゼントランキング (선물랭킹)妻 未届 (혼인미신고) 무난하다. 물론 '히스테리'나 '우울증' 같은 검색어도 있지만 생일선물이 압도적으로 많다. 나도 그렇지만 "참 세상에, 비슷한 사람들 많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검색창에 '아내'라는 단어를 넣는 사람들은 남편이 많다. 그 수많은 남편들이 아내에게 무슨 선물을 하는 게 좋을까 라는 순수한 마음에 구글 검색창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도 조금은 감동적이다.
지금 이 시간에 나와 같은 검색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동지적 마인드 같은 것. 문득 오 헨리의 걸작 단편 '크리스마스 선물'이 떠오르면서 아마 아내들도 '남편 프레젠트'로 검색을 하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색창의 '아내(妻)'를 지운 후 웃음을 머금은 표정으로 '남편'을 쳤다. 일본어로 '옷토(夫)'라고 발음한다. 커피를 마셔가며 스페이스 바를 눌렀다. 프레젠트가 1위로 올라오겠지 라고 생각한 그 순간 삼켰던 커피, 뿜어버리고 말았다.
▲ '夫'를 넣고 한 칸 띄었을 때 주로 검색되는 단어들. 누굴 믿고 살란 말이냐! © 구글 웹페이지 캡쳐 | |
夫 嫌い (싫다)夫 小遣い 平均 (용돈 평균)夫 言葉の暴力 (언어폭력)夫 呼び方 (호칭)夫 死亡 手続き (사망 수속)夫 うつ (우울증)夫 小遣い (용돈)夫 失業 (실업)夫 スペース (공간)夫 死亡 年金 (사망 연금)'싫다, 용돈 평균, 언어 폭력, 호칭, 사망 수속, 우울증, 용돈, 실업, 공간, 사망 연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싫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기라이(嫌い)'가 1등을 차지할 줄이야. 웹페이지 수도 무려 5백 34만건에 달한다.
수많은 아내들은 결국 남편이 싫다는 말이다. 내친 김에 '남편 싫다'로 검색해 들어가 봤는데, 세상에 이런 사이트들이 실제로 존재했다니. 차마 여기선 구체적으로 소개하기 어려울 정도로 잔인한 문구들이 춤췄다. 그나마 아래 내용은 부드러운 것들이다.
"정말로 남편을 죽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완전범죄를 할 수 있나요?""남편이 사망한 후 연금을 받으려면 어떤 수속을 밟아야 하나요?""밤에 잘 때 이불을 걷어버리세요. 특히 겨울이 좋아요. 일단 감기에 걸려야 합니다.""보험을 남편 몰래 하나 넣어 두세요. 인감은 가지고 있죠?" 처음엔 거짓말이나 농담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정말 남편을 싫어하는 아내들이 넘쳐났던 것이다. 갑자기 선물이고 뭐고 의욕상실이 빠졌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이라는 걸로 검색해 본 적 있어?""어? 아니... 왜?""아냐, 됐어." 아내는 아니라고 했지만 이 말도 못 믿겠다. 구글은 도대체 왜 저런 기능을 만들어 놔서 사람을 이렇게도 괴롭히는 것일까. 연말연시가 갑자기 한없이 우울해 진다.
ps) 아! 물론 이건 일본의 예다. 한국은 설마... 그렇지 않겠지?
■ 기자주
이 기사는 평소 알고 지내던 일본인 지인의 정보를 토대로 기자가 직접 검색해서 사용한 체험기를 바탕으로 씌여졌으나, 몇몇 독자들의 지적이 있어 지인에게 확인해 본 결과 일본의 코미디언 '다운타운'이 진행한 연말특집 프로그램에 이와 비슷한 소재의 이야기가 방송됐다는 사실이 밝혀졌기에 알려드립니다. (2010/1/2 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