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kg의 배낭, 단단해 보이는 등산화, 방온・보습 재질의 점퍼.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3개월 간의 일본 횡단 도보여행을 떠나는 데라시타 다케시(57) 씨를 지난 22일, 지바 현 후나바시에서 만났다.
다음 날 야마가타로 출발해 25일, 이 도보여행의 스타트 지점이 될 센다이의 다이린지(大林寺)로 간다는 데라시타 씨는 벌써부터 완전무장 상태였다.
"이미 한 달 전부터 연습을 하고 있어요. 3개월이나 되는 강행군이고, 또 겨울이라서 연습을 미리 해 두지 않으면 안됩니다."
▲ 22일 니시후나바시 역에서 만난 데라시타 다케시 씨. 그는 이미 '완전무장' 상태였다. ©박철현/jpnews | |
▲ 그의 수첩에는 도보 연습 일정이 빽빽하게 적혀져 있었다. ©박철현/jpnews | |
그의 수첩은 여행 일정으로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23일 야마가타를 거쳐 25일 다이린지에 도착해 그 날 10시부터 출발, 나가노, 히로시마, 시코쿠 지방 등을 거쳐 부산으로 가는 스케쥴이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내년 2월 중순 부산에 도착하게 돼 있다. 그는 부산에서 다시 북상해 3월 24일 서울에 도착, 26일에 열리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기념식에 참가할 예정이다.
한 겨울 3개월 간의 도보여행, 아니 여행이 아니라 '행군'이다. 데라시타 씨는 이 '행군'을 위해 다니던 직장까지 관뒀다. 근 30년간 일본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에 근무한 그는, 인생의 전환점이 될 이번 도보행군이 성공적으로 끝날 경우 니이가카 현으로 이주해 제2의 인생을 보낼 계획이라고 한다.
안중근 의사를 알고서 10년이 지났다. 10년의 추억과 동경이 현실로 다가온 지금, 흥분될 법도 한데 의외로 차분하다.
"원래 쑥스러움을 잘 타서... 그렇게 막 시끄럽게 알리고 그러고 싶진 않아요. 그냥 내가 마음속 깊이 느껴왔던 것을 실천에 옮기려는 것 뿐이죠." 1952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데라시타 씨는 어렸을 때부터 재일동포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다. 하지만 그들과의 어울림을 부친은 반대했다고 한다.
"나중에 커서야 알았는데 아버지는 일본 제국주의의 교육을 받고 자라셨으니까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저는 이해가 잘 안되었어요. 왜 같이 못 놀게 하는지 궁금했죠. 계속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가 20살 때부터 조선문제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아! 일본이 조선에 엄청난 짓을 했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됐지요." 그가 당시 읽었던 소설 '쪽발이'(고바야시 마사루 저)와 '또 다시 이 길에'(이회성 저)는 그를 평화, 반전, 반핵주의자로 거듭나게 했다.
그는 생협에 들어가면서 평화운동의 일환으로 열린 '세계 도시에 원폭 패널을 보내며'라는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그 와중에 불거진 교과서 문제를 통해 3・1 독립운동, 강제연행, 강제징용, 종군위안부 등 한반도의 가슴아픈 역사적 현실을 알게 됐다.
원폭 패널을 보내는 운동에서 데라시타 씨는 한국을 담당하게 되었고, 이것이 계기가 돼 2000년 2월, 종군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를 초청해 '평화와 협동의 21세기를 향하여'라는 심포지움도 개최했다. 안중근 의사를 안 것도 이 즈음이었다고 한다.
"이 때 한국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됐습니다. 안중근 의사도 알게 됐지요. 남산공원에 안중근 기념관도 있다길래 찾아 갔는데 이게 또 묘한 인연이예요. 한국여행 4번만에 기념관을 들어갈 수 있었거든요."
▲ 근처 커피숍에서 인터뷰에 응해준 데라시타 씨 ©박철현/jpnews | |
사정은 이랬다. 처음 찾아갔던 2002년은 휴관일, 두번째로 갔었던 2003년에는 서울이 기록적인 강설량 35.6mm을 기록하는 바람에 기념관 직원들이 출근하지 못해 휴관했다. 세번째로 찾아갔던 2004년에는 마침 개보수 공사중이라 들어가지 못했다.
"이렇게 운이 없나라고 생각했을 정도예요. 2005년, 네번째 도전 끝에 드디어 안중근 기념관을 방문할 수 있었죠(웃음).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잘 된 것 같아요. 못갔던 3년간 안중근 의사의 삶과 사상에 대해 많이 연구하고 공부할 수 있었으니까요." 데라시타 씨는 한국 친구들을 만나면서 한국어 공부도 시작했다. 2000년 즈음에 만났던 친구들과는 지금도 친분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막연했던 역사관도 정립돼 갔다고 한다.
"자, 그러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를 깊이 생각하게 됐죠. 하나의 벽이 가로막고 있다면 그 벽을 어떤 행동을 통해 뛰어넘을 수 있을까. 진정한 한일간의 우호관계를 실현시키기 위해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를 말이죠. 그러다가 내년이 한일합방 100년이고, 또 안중근 의사가 순국하신지 100년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지금을 놓치면 안되겠다, 평생 후회할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1년전 미야기 현 센다이에 있는 다이린지를 찾아갔다. 다이린지는 안중근 의사의 위패와 유묵(遺墨, 생전에 남긴 글과 그림)이 보관돼 있던 절이다. 1979년 다이린지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을 한국정부에 흔쾌히 반환했다.
그가 다이린지를 찾아갔을 때 만난 이가 사이토 다이겐(斎藤泰彦) 주지스님이었다. 사이토 스님은 "내 마음속 안중근 - 지바 도시치 합장의 생애"라는 책을 냈을 정도로 안중근 의사의 삶에 공명한 사람중 하나다. 이 책 제목에도 나오는 지바 도시치 합장은 1910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운명했던 뤼순 감옥의 간수로, 안 의사가 운명하기 직전에 쓴 유묵 '위국헌신군인본분(為國献身軍人本分)'을 건네 받았다.
지바 합장은 안중근 의사가 숨을 거둔 11년 후에 고향 미야기 현으로 돌아와 안중근 의사의 위패와 사진, 그리고 유묵을 불단에 모셔놓고 하루도 빠짐없이 합장을 드렸다.
데라시타 씨는 안중근 의사의 삶과 사후 궤적을 연구하면서 자기와 비슷한 이들 일본인 선배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한다.
"일본에서 안중근 의사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거의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죠.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 하더라고 흔히 '테러리스트'로만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데, 그건 정말 큰 오해지요. 안 의사는 평화주의자입니다. 제가 평화운동을 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안중근 의사의 봉기는 말 그대로 세계평화를 위한 행위였습니다." 그는 "안중근 의사는 원래 부자집 양반 출신으로 교육사업에 매진하려고 했던 평화주의자였다"고 강조했다.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기 보다 행동에 옮기자. 조선의 평화, 나아가 세계평화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셨던 겁니다. 잡힌 후 감옥에서 여생을 보내실 때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안 의사님은 재판정에서도 세계의 평화를 어긴 일본의 침략행위가 왜 잘못되었는지 논리적으로 따지셨지요. 그러한 추호의 흔들림 없는 모습에 뤼순 감옥의 모든 간수들, 재판관들이 전부 존경심을 품게 됐다는 건 유명한 일화입니다." 데라시타 씨는 올해 1월 두번째로 다이린지를 찾았을 때 도보행군을 결심했다. 기본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 친구들과 함께 지난 10년간 일본의 명산을 40회, 한국 산을 10여차례 올랐다. 대부분 후지산, 남 알프스, 북 알프스 등 3천미터가 넘는 산들이다.
풀 코스 마라톤도 3년전부터 해 왔다. 2007년 서울에서 열린 동아마라톤에서 처음으로 풀 코스에 도전해 3시간 58분이라는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이번 도보행군은 한 겨울에 진행한다. 10kg에 육박하는 배낭도 걸머진다. 연습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조금씩 연습해오다가 지난 12월 16일에 처음으로 하루 코스로 잡고, 실제 행군할 때 모습으로 도쿄 신주쿠에서 지바 후나바시까지 걸어와 봤어요. 딱 30km 입니다. 그런데 신발이 안 좋아서 왼쪽 새끼발가락에 물집이 터져 버렸죠. 연습해 보길 잘 했습니다. 신발도 바꾸고 시속 얼마 정도의 페이스로 걸으면 될까 스스로 체크도 됐지요." 그는 시속 5km의 스피드가 적절하다는 걸 깨달았다. 18일에는 12.5km를 걸었다. 하루 30~40km를 8시간 걷는다고 가정해 보니 2월중순까지 정해진 코스를 완주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10일에 하루 꼴은 완전한 휴식을 취할 생각입니다. 제가 들를 각 지역에는 생협을 통해 알게 된 지인들의 집에서 신세지기로 했어요. 그래도 여행비용은 100만엔 가까이 듭니다. 이 돈은 직장을 그만두면서 나온 퇴직금으로 충당하기로 했어요. 누구는 스폰서를 받으라고 하는데 그러면 안중근 의사의 뜻에 반하는 것 같아서 순수히 제 힘으로 하려고 해요."
▲ 화이팅 포즈를 취하는 데라시타 씨. 그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센다이 다이린지를 떠나 서울까지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추도 도보여행'을 떠난다. ©박철현/jpnews | |
그는 한국과 일본의 블로그에 여행기를 매일 올릴 생각이라고 말한다. 단, 일본어 블로그는 조금 시차를 두고 올릴 생각이다. 왜냐면 실시간으로 올릴 경우 우익세력이 괴롭히지 않을까 걱정돼서다.
"저는 어디까지나 이번 도보여행을 세계평화를 위한 여행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쓸데없는 마찰을 일으키고 싶지도 않아요. 어디까지나 저 개인의, 안중근 의사를 향한 순수한 심정의 발로로 받아들여줬음 해요." 데라시타 씨는 부산에 도착한 이후 임진왜란의 흔적이 남아 있는 진주성과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광주도 들릴 생각이라고 한다.
"일본보다 하루빨리 한국에 도착하고 싶어요. 한국분들의 정을 느끼고, 따뜻한 격려에 용기도 얻어가면서 즐거운 도보여행을 하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한 마디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스스로를 '애주가'라고 밝히는 데라시타 씨는 계면쩍은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안중근 의사님이 옛날 독립운동에 나서면서 나라의 해방을 보기 전까지 술을 먹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술을 좋아하셨던 분인데 안 의사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이 약속을 지켰어요. 저도 이번 도보여행 3개월간 술을 끊기로 했습니다. 안중근 의사님의 약속에 비한다면 정말 보잘 것 없지만 저 스스로 지켜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3월 26일, 안중근 의사님의 순국 100주년 기념행사까지 무사히 끝내겠습니다. 그렇게 모든 일정이 다 끝난 후, 맛있는 소주 한잔 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의 3개월 간의 여정에 안중근 의사의 가호가 함께 하길 기원한다.
■ 관련링크데라시타 다케시의 "평화를 위한 도보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