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에 다녀왔다.
최근 2년 정도 자주 한국에 오지만, 주변을 느긋하게 둘러 볼 마음의 여유가 내게는 없었다. 광화문로 주변의 변화함에 정말 놀랐다. 큰길 중앙에 산책로가 만들어지고, 커다란 세종대왕 동상이 세종회관 앞에 있다.
밤이면 라이트 업 된 황금빛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모습에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카메라를 든다.무엇보다 내심 감동한 것은 이순신 장군 동상 발 밑에서 장군의 모습을 올려다 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25년 동안이나 배기 가스를 뿜어내는 차량 너머로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이순신 장군 동상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가까이에서 올려다 볼 수 있게 될 줄이야 생각조차 못했다.
그곳 중앙 산책로에는 맑은 냇물이 흐르고 서울의 밤을 밝혀 붉고 푸르게 비추고 있다. 그 덕분일까? 이순신 장군도 맑은 물을 마시고 되살아난 것처럼 생생해 보인다.
청계천이 그러하고, 이 산책로가 그러하듯이, 서울은 물의 도시가 되어가고 있는 걸까?
인구가 밀집한 서울 중심부에 물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시민들이 마음의 위안을 받는다. 청계천을 되살린 서울은 여름철 평균 기온이 2 ~ 3도 떨어 졌다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강이 가진 힘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올해 5월,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가 서울을 방문하여 "세계 대도시 기후 정상회의"에 참석했을 때, 청계천 재개발을 견학하고서 "청계천은 많은 참고가 되었다. (도쿄의) 스미다강을 되살려야 한다. (청계천 개발을 통해) 확신을 얻었다"고 전한다.
이 코멘트를 들었을 때, 2007년 도쿄 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이시하라 씨와 선거전을 치렀던,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이며 도시 계획가이기도 했던 구로카와 키쇼 씨 말을 떠올렸다.
구로카와 씨의 독특한 캐릭터와 유니크한 선거활동은 세상의 이목을 끌었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나고(물론 구로카와 씨는 낙선하였고, 이시하라 씨가 당선되었다.) 불과 두 달 후인 2007년 10월, 당년 73세의 나이로 병으로 고인이 되었다. 참으로 극적이었다.
구로카와 씨는 선거운동에 자신이 디자인한 기발한 선거차량으로 도내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헬기를 타고 도쿄도의 여러 섬을 선회하기도 했다. 또, 유세 때 가까이 접근한 이시하라 신타로 씨로 향하여 갑자기 메가폰을 들고 이시하라 씨의 동생인 거물 배우 고 이시하라 유지로 씨의 히트곡 '긴자의 사랑 이야기'를 부르기 시작하는 등, 그 "기행"은 모두의 관심의 대상이었다.
언론사로부터 "구로카와 씨, 당신의 출마는 당선을 위한 것입니까?"라는 인터뷰 질문을 받기도 하였고, 우리 유권자들도 솔직히 그 진의를 파악하기 어려워했다. 그러나 "도지사 선거 출마"가 진진한 도전이었는지 혹은 세간에 대한 조소인지를 알 수 없었던 쿠로카와 씨의 행동은 언론으로서는 좋은 가십거리였다.
종종 tv에 등장하여 진지하게 정책에 대해서 언급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자연스러운 베이식 옷차림에 우아한 소품으로 세련된 센스를 엿보이게 했다. 한마디로 "이상한 사람"이었으나, 참으로 매력적이기도 했다.
그런 구로카와 씨가 방송을 통해 이야기하던, 잊을 수 없는 말이 있다. 지진이 많은 도쿄의 방재 대책에 대해 토론하게 되었을 때 일이다. 관동대지진과 같은 수도권의 직하형 지진은 앞으로 상당한 확률로 일어날 것이라 예상되고 있다.
건물의 지진 대책과 방재 대책이 시급하지만, 도쿄도의 모든 건물들이 지진 대책을 시행하기에는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들기 때문에 지금 바로 실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보다는 도쿄를 "운하의 도시"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에도의 거리가 그랬던 것처럼, 200 미터 간격으로 운하를 둘러싸게 함으로써, 화재 발생시 화재 확산을 막을 수 있고, 환경보전을 위해서도 유익하다. 그가 방송을 통해서 전했던 이야기이다. 아무래도 도시 계획가의 의견이라, "물의 도시"가 될 도쿄를 상상하면서 흥미롭게 들었다.
아마도 나는 이 발언으로 단번에 구로카와 키쇼 팬이 되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정치인으로서 도쿄 꾸려나가기 위하여, 과연 어떤 역량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꿈이 넘치는 말이 기억에 오래 남아 재생될 도쿄의 이미지가 눈앞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사람은 항상 물과 함께 살아간다.
작은 물고기도, 잠자리도, 새도,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물이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리고 사람은 물을 통해 치유를 얻는다. 그런 진리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은 말로도 여겨졌다. 어쩌면 이시하라 도지사의 청계천을 통해 촉발 받은 생각의 배경에는 구로카와 키쇼 씨가 주창한 "운하의 도시, 도쿄"의 이미지가 있었던 것이 아닐런지.......
구로카와 씨라면 지금의 서울을 거닐며 이 서울의 도시 계획을 어떻게 평가했을까? 그리고 도쿄를 물이 풍성한 도시로 만들 수 있었을까?
광화문로의 산책로를 걸으면서 수면에 비치는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다 구로카와 키쇼 씨를 상기하는 자신을 발견했다.(번역 스기모토 토모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