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 소설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 탄생 백 주년을 맞이한다.
마쓰모토 세이초는 항상 범죄를 저지르는 인물과 그들을 둘러싼 시대와 사회 상황을 교묘하게 그려내기에 그 작풍을 "사회파 추리소설"이라 불렸다.
그 동안 많음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져 왔지만 올해는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 자신이 대표작이라 말하던 '제로의 초점'이 리메이크 되어 이번 11월 14일부터 일본에서 개봉된다.
무대는 쇼와 32년 (1957년) 호쿠리쿠(일본 북서지방) 가나자와이다. 중매 결혼을 한지 7일째 되던 날, 갑자기 남편이 실종되어 주인공은 남편의 행방을 찾아 그 전까지 근무하던 가나자와를 방문한다. 서로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갈 때마다 남편의 낯선 과거와 인생을 하나씩 알게 되어가고 결말은 패전국인 일본의 혼란기를 배경으로 뜻밖의 방향으로 전개된다.
사실 나도 이 작품에 잠깐이지만 출연한다.
촬영은 올해 2월부터 5월까지 약 100 일. 쇼와 32년 (1957년) 당시의 풍경을 찾아 촬영 팀은 일본 전국을 돌았다. 촬영이 시작될 즈음 일정표를 받고 "어라?"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무슨 연유인지 3월초에 한국 "부천 환타스틱 스튜디오"에서의 촬영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무대는 전부 일본일텐데 왜일까?
감독이 노린 것은 눈 많은 쇼와의 가나자와 경치다. 그런데 지금의 일본은 이 영상을 찍을 만한 곳이 없다. 게다가 세트 장에 노면 전차가 달리게 하려면, 일본 식민지 시대가 재현되어 있는 한국의 세트 장, 그것도 "부천 환타스틱 스튜디오"밖에 적당한 곳이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에서 100명이 족히 넘는 스태프와 배우가 바다를 건너 대거 서울 교외 부천을 향하게 된다.
세트장에 가 보니, 근처 일대에 눈이 쌓인 것처럼 꾸며져 있었다. 놀랍게도 이 조경을 만들기 위해 소금 120톤 (500만엔 상당 소요)을 뿌렸다고 한다. 내 촬영 차례는 3월1일로 예정되어 있었고, 그 날은 날씨가 좋아서 촬영은 중단되었다. "비가 내려 촬영이 중단"되는 일은 흔히 볼 수 있지만, 날씨가 너무 좋아서 중단되는 일은 오랜 배우 생활 속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다.
감독은 호쿠리쿠는 무겁고 낮게 구름이 낀 하늘을 생각하고 있어서, 상쾌하고 푸른 하늘은 원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한국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제시대 세트 장. 정작 그 속에 서 보니, 모조품이라고는 하지만 건물 하나하나와 거리 전체 분위기에 나로서는 특별한 감회가 있었다.
한국의 거리에 들어서 있는 일본 가옥, 오래된 일본식 건물에 내걸린 한글 간판들 그리고 이런 세트를 드라마 제작을 위해 필요로 하는 한국역사. 그 날은 상념에 잠기며, 시간여행을 하며 미로를 헤매는 듯한 기분으로 쇼와 거리를 걸었다.
드디어 촬영이 시작되던 3일은 정말로 세설이 흩날리는 추운 날이었다. 소금이 뿌려져 단단히 굳은 길에 진짜 눈이 쌓이면 눈은 점차 녹아 물구덩이가 되어 버린다. 그것을 어떻게든 닦아내려는 스태프들은 물구덩이에 걸레를 던져 물을 빨아들이고 양동이에 짜는 작업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현장 작업에서 항상 벌어지는 모습이지만, 실생활이라면 별 것 아닌 것들이 감독의 머리 속 그림을 실현하기 위해 스태프는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법한 일에 뼈를 깎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완전한 영상을 만들어 내기 위한 작업인 것이다.
촬영에서는 많은 한국인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았다. 한국 스태프 중에는 일본의 영화 학교에서 공부하여, 일본어가 능통한 사람도 많았다. 이미 훌륭하게 장편 감독을 하고 있는 분이 이번에 조감독으로 참여해 주셨고, 다른 한국인 스태프들은 그의 지시에 따라 활발하게 움직였다. 너무 고마운 마음에 고개가 수그러졌다.
엑스트라로서 sjc (서울 일본인 클럽)에 많은 도움을 두었다. sjc 여러분은 한국의 일본 기업 주재원으로 서울에 살고 계시는 분들이어서 이른바 엘리트 중의 엘리트들이다. 그런 분들이 이 영화를 위해, 부부동반으로, 그 중에는 젖먹이를 안고서 참가해주신 분도 있었다.
그분들의 대기실은 야외에 세워진 대형 천막이다. 테이블이나 난방기구를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는 하지만, 도시락 하나만을 지급하는 자원 봉사자들이었다. 이 이외에도 sjc 여러분께는 이벤트 단위로 협력을 요청 드리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 아는 얼굴이 있기도 했다. 이번에도 거듭 감사할 따름이다.
현장에서 나갈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때 함께 있던 엑스트라가 한국인임을 알았다. 그녀는 꽤 베테랑인 듯, 우리 일본 배우를 여러모로 걱정을 해 준다. 내가 통역을 맡아 빙 둘러 앉아 수다를 떤다. 한국에도 엑스트라 전문 기획사가 있어 "일본인 역"으로 모집될 경우에는 '알맞은 체격'인 사람이 '일본사람 같다'라는 이유로 선호 된다 등의 이야기가 오갔다.
그녀는 자신의 가방에서 준비해 온 간식을 꺼내 우리 일본 배우에게 권해 주었다. 어느 나라라도 이런 대기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똑같구나, 어쩐지 마음이 놓인 것 같이 따뜻해지는 시간이 흘렀다.
모두가 정말 단편적인 일이지만 일본인과 한국인이 마음을 모아 하나의 작품을 위해 노력하는 순간에 함께 하고 있음을 실감했다.
뉴스에서는 한일문제라면 언제나 뭔가 충돌이 있을 때마다 '메우기 어려운 깊은 골이 있다'는 식의 내용이 강조되어 보도된다. 그 반면 '(한일간)사람과 사람의 신뢰'는 많은 곳에서 구축되고 있지만 결코 뉴스가 되는 법이 없다. 뉴스는 언제나 과격하거나 위험한 사건이 아니면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영화를 만들면서 우리가 한국 사람들과 함께 나눈 신뢰와 온화했던 시간, 그것이 확실히 있었는데도...
이번에는 뉴스가 결코 다루지 않는 '소중한 것'들을 감사의 마음과 함께 전하고 싶었다. (번역, 스기모토 토모코, 김현근)
* 부천 환타스틱 스튜디오 http://www.fantasticstudio.or.kr/
映画『ゼロの焦点』を韓国で撮影
2009年度は日本を代表する推理小説作家、松本清張生誕百年にあたる。
松本清張は常に、犯罪を犯す人物と彼等をとりまく時代、そして社会状況を巧みに描きだしたことから、その作風は「社会派推理小説」と称された。
これまでも沢山の作品が映画化されてきたが、今年は松本清張自身が代表作と自認していた『ゼロの焦点』がリメイクされ、この11月14日から公開される。
舞台は昭和三十二年(1957年)の北陸、金沢である。
見合い結婚をして七日目、突然夫が失踪してしまった主人公は夫の行方を捜してそれまでの勤務地であった金沢を訪れる。絡み合った謎を紐解いてゆくうちに、ひとつひとつ見えてくる夫の見知らぬ過去と人生。そして結末は敗戦国日本の混乱期を背景に、意外な方向へと展開してゆく。
実は私もこの作品に少しだけ出演している。
撮影は今年の2月から5月までの約100日間。
昭和三十二年(1957年)当時の風景を求めてロケ隊は日本全国を移動してまわった。
撮影に入るにあたって日程表を貰って「おや?」と思った。何故か3月上旬に韓国「富川ファンタスティックスタジオ」でのロケが組み込まれていたからだ。舞台は全編日本だというのに何故なのか。
監督が狙ったのは雪深い昭和の金沢の景色だ。ところが今の日本にはこの映像を撮れるところがない。しかもそこに路面電車を走らせるとなると、日本植民地時代が再現されている韓国のオープンセット、しかも「富川ファンタスティックスタジオ」しかありえないということになった。
そんなわけで日本から100人をゆうに越えるスタッフとキャストが海を越え、大挙してソウル郊外の富川に出向くことになる。
セットに行ってみると、辺り一面に雪が降り積もったように装飾がしてあった。なんとこの景色を作り出すために塩が120トン(500万円分)撒かれたという。
私の出番は三月一日に予定されていたが、その日は天気がよく、撮影は中止になった。
「雨になって撮影が中止になる」というのはよくあることだが、天気が良すぎて中止になったのは長い俳優生活のなかでも初めてのことだ。
なぜならば監督は北陸の重くたれ込めた雪空を狙っていたのに、清々しい青空では話にならないからだ。
韓国ドラマでは度々目にしていた日帝時代のオープンセット。いざその中に立ってみると、作り物ではあっても建物の一つ一つや街全体の雰囲気に私は特別な感慨をもった。
韓国の街並みに混然とする日本家屋。古い日本式の建物に掲げられたハングルの看板。そしてこのようなセットがドラマづくりの上に必要であった韓国の歴史。
その日はそんなことに思いを馳せながらタイムスリップして迷路にでも迷い込んだような気分で昭和の街並みを歩いて帰った。
やっと撮影が開始された三日は本当に小雪の舞う、寒い一日だった。
塩が撒かれ、踏み固められた道に本物の雪が降り積もると、それは次第に溶けて水たまりになってしまう。それをなんとか拭おうとスタッフ達は水たまりに雑巾を投じ、雑巾に水を吸わせてバケツに取るいう地道な作業を始めた。
現場の作業を見ていていつも思うことがある。
実際の生活ならなんでもないことなのに、監督の頭の中にある映像を実現するために、スタッフは常識では考えられないような仕事に身を削ることがある、と。それが完全な映像を作り上げるということなのだ。
撮影では多くの韓国人スタッフの協力があった。
韓国の撮影スタッフのなかには、日本の映画学校で学び、日本語の堪能な人も多かった。すでに立派に本編の監督をしているという方が助監督として加わってくださり、他の韓国人スタッフは彼の号令一下のもときびきびと動いてくれた。頭が下がった。有り難かった。
エキストラとしてはSJC(ソウル日本人クラブ)の応援を得た。
SJCの皆さんは日本企業の駐在員などとしてソウルに暮らしていらっしゃる方々で、いわばエリート中のエリートだ。そんな方々がこの映画の為に、ご夫婦共々、なかには乳飲み子を抱えて参加してくださった方もあった。
皆さんの控え室は屋外にたてられた大型のテントだ。最大限の配慮がされていて、テーブルや暖房器具も用意されているが、お弁当一つが支給されるだけのボランティアだ。
これ以外にもSJCの皆さんにはイベントごとでご協力を願うことが多い。中には知った顔をみつけることもできた。今回もまた感謝にたえない。
現場で出番を待っていたとき、一緒にいたエキストラの方が韓国人であるとわかった。彼女はベテランであるらしく、私達日本人俳優にいろいろ気遣いをしてくれる。私が通訳をして車座になっておしゃべりをする。韓国にもエキストラ専門のプロダクションがあること、「日本人役」として募集される場合は「中肉中背」の人が「日本人らしい」として好まれるなどという話しも出た。
彼女はやおら自分のバッグから用意のおやつを私達日本人俳優に勧めてくれた。どこの国でも、こんな待ち時間の過ごし方は同じなのだなと、なにかほっとするような和やかな時間が流れた。
どれもほんの断片的な出来事だ。けれど日本人と韓国人が心を合わせて一つの作品に取り組む瞬間に居合わせたのだと実感した。
ニュースなどでは日韓といえばなにかの衝突があるたびに、「埋めがたい溝がある」などということが強調され報道される。一方「人と人の信頼」はあちこちで築かれつつあっても決してニュースにはならない。ニュースはいつでも過激で剣呑でなければ価値がないからだ。
映画を作り上げるなかで私達が韓国の人達と分かち合った信頼と穏やかな時間、それは確かにあったのに・・。
ニュースでは決して取り上げられない「大切なこと」を今回は感謝と共に伝えたいと思っ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