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병원에선 받아줄 수가 없어요.”
“예? 뭐라구요? 여기 산부인과 아닌가요?”
“아니, 당신처럼 임신 중기에 유산했을 경우 받아줄 수가 없으니, 이 소개서를 가지고 큰 병원에 가보세요.”
우리집 주변엔 걸어서 5분이면 갈 수 있는 종합병원이 두개나 된다.
코 앞에 있는 구세군병원엔 안타깝게도 산부인과가 없다. 요즘은 종합병원에도 산부인과가 없는 곳이 태반이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릿쇼 고세이카이 종합병원이다. 이전 회사 동료의 언니가 출산을 한 곳으로 겉모습은 좀 오래되긴 했지만 괜찮은 산부인과라고 전해 들었다. 그러나 유산을 했다는 이유로 의사는 내게 대학부속병원을 권했다.
이유인 즉, 신생아 집중치료실(nicu)이 있는 병원이 안심이 되기 때문이라곤 했지만 의사의 태도는 좀 달랐다. 왜냐면 초음파 검사와 내진까지 했으니 내가 임신했단 사실을 알았을 텐데, 의사는 “아마도 임신한 것 같다”라며 ‘아마도’를 붙였던 것이다.
내 생각이 좀 지나칠 정도로 과민반응인지도 모르겠지만, 위험한 산모의 경우 진찰 자체를 꺼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왜 일본엔 산부인과가 부족한가?
일본 산부인과 의사협회 조사에 따르면 1984년엔 6000개 가까웠던 분만 시설이 2008년도엔 2700개까지 25년 사이에 절반 이하로까지 줄었다.
2006년도 후생노동성 조사에 따르면, 출산적령기 여성(20-39세) 만명당 출산 가능 병원은 1.69개소이며, 도쿄의 경우 여성 만명당 0.98개소, 출산할 가능성이 있는 여자는 만명이나 되는데 병원은 1개도 되지 않는다.
왜 일본 종합병원들이 산부인과를 폐지하고 산부인과 의사가 점점 줄어드는 걸까?
최근 방영중인 후지와라 노리카 주연의 드라마 ‘기네 산부인과의 여자들’ 을 잠깐만 봐도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산부인과 의사들은 그야말로 잠을 못자고 일하는 사람들이다. 아이가 언제 태어날지 모르기 때문이란 당연지사와 더불어, 산부인과 의사가 줄면서 근무시간이 점차 길어져 장장 38시간의 연속근무를 요구당하고 있다.
근무환경도 문제지만 일본에서 산부인과 의사가 되기를 꺼리는 또 한가지 이유는 다른 과에 비해 소송이 많기 때문이다. 일본 최고 재판소가 조사한 의료사건 민사소송 건수(2004년)는 의사 1000명당 산부인과 12.4건, 외과 10.9건, 성형외과 7.4건, 비뇨기과 4.6건, 내과 3.8건으로, 외과계 소송이 많으며, 특히나 산부인과 소송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산부인과의 경우 내과에 비해 소송율이 3배나 된다.
이렇다보니 산부인과 의사를 꺼리는 의사들이 증가중이고, 산부인과를 폐지하는 병원도 매년 증가중이며, 산부인과가 있어도 원래 자기 병원 환자가 아니거나 산모와 태아의 위험이 클 경우 치료를 해주지 않는 병원까지 생기고 있다.
2008년 도쿄에선 뇌출혈을 일으킨 산모(36세)를 침대가 부족하단 이유로 구급병원이 받아주지 않아 산모가 사망하는 사건까지 있었다. 당시, 구급차가 무려 7개의 구급병원에 연락을 했지만 어느 한 곳도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출산율이 낮다며(2008년 현재 일본의 출산율(합계특수출생율)은 1.37), 다양한 정책들을 내놓고 있지만 임신을 하면 목숨을 걸어야할 실정까지 와 있다.
출산율 저하로 산부인과의 필요성이 저하되고 결국 산부인과를 폐지하는 병원이 늘고, 그렇다보니 남겨진 산부인과 의사들의 근무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있다. 이같은 현실에 산부인과 근무를 꺼려하는 의사는 더욱 늘고, 의사가 부족하니 병원으로선 환자를 받아줄 수가 없는 악순환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병원이 문제만도 아니다. 경제적 구심력을 잃어가는 일본사회의 현실도 문제고, 사랑보다 돈이 더 시급한 현대인의 머릿속도 문제다. 지금보다 더 못한 시절에, 하다못해 전쟁때에도 아이를 낳아키웠는데 왜 잘살면 잘살수록 돈이 없단 소리가 나오고 마치 아이를 돈으로 무장시켜 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물론 대책없이 무작정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도 문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살면서, 돈타령만 해대다가 더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릴 것도 안타깝다.
예약 없인 아이도 못 낳아
집 근처 산부인과 또는 여성 클리닉이란 간판이 붙은 개인병원을 찾아가봐도, 실제론 진찰만 해줄뿐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곳들이 더 많다. 산부인과도 산부인과 의사도 부족하니, 일본에선 아이를 임신하면, 바로 주치의를 찾고 출산 예약을 해야한다. 개인병원의 경우는 임신 8주전에 출산예약을 해둬야만 되는 곳도 있다.
어디서 출산을 할까? 한국 예비맘들이라면 한국, 일본 우선 나라부터 정하는 게 우선이겠다. 일본에서 아이를 낳는다면 조산원, 개인병원, 종합병원, 대학병원. 물론 집에서 출산을 할 수도 있다. 최근엔 유명한 조산사를 불러, 집에서 마음 편하게 출산을 하는 것도 일본 부유층엔 인기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집에서 출산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방음장치 하나는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하기에, 일반 여성들이 택하기엔 좀 무리가 있다.
조산원의 경우는 단련된 조산사가 최대한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아이를 받아준다. 산모의 요구를 100% 수용해 주는 곳이 많은 것도 장점이다. 온가족이 다 같이 출산 광경을 볼 수도 있고, 수중분만(이라고 해봤자 욕조안에서 아이를 낳지만), 남편을 등 뒤에서 꼭 껴안고 출산을 하는 등 그야말로 나만의 스타일의 고집&유지할 수 있다. 단, 산모와 태아에 아무 이상이 없을 경우에만 조산원을 이용할 수 있으며, 조산원자체의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 점이 단점이다.
개인병원의 경우엔 무통분만을 도입한 곳이 많고, 유명 제약사와 계약을 맺어 산모들이 다양한 샘플을 받을 수 있다. 침대보다 이불을 깐 개인실이 많은 것도 개인병원의 특징이다. 단, 산모를 많이 받기 위함인지 아니면 병실이 적어서인지 출산예약을 임신초기에 해두어야만 하고, 도쿄의 경우엔 대학병원보다 진찰료가 비싼 경향이 있다. 산모는 조산원의 중간쯤 되는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대학병원의 경우엔 일부 자연분만만을 고집하며, 출산 자세도 반드시 출산대위에 누워서만 가능하고, 병실은 침대위주다. 단 진찰료가 양심적이며, 위급한 상황의 경우 대학병원 응급실, 신생아 응급실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유명 제약사의 샘플을 받을 기회는 거의 없다.
*주의! 이같은 내용은, 필자가 병원에 다니며 느낀점, 일본에서 아이를 낳은 산모를 취재한 내용으로, 모든 조산원, 개인병원, 산부인과가 위 내용과 같지는 않습니다.
필자처럼 중기 유산 경험자의 경우는 개인병원도 종합병원도 해당사항이 아니기에, 신주쿠의 한 대학병원을 찾았다. 다행히도 나처럼 조산위기의 고위험산모를 위한 진료과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다.
더 다행스럽고 맘에 들었던 건 의사가 재일동포란 점이었다. 키가 작고, 덩치도 작아 여잔지 남잔지 구분이 어려웠던 의사에게 한국말을 하는지 못하는지 물어볼 겨를도 없었지만, 진찰을 시작하자마자 내게 “한국에서 왔느냐”고 물었고, 그 한마디로 왠지 믿음직스러웠던 것이다.
외국에서 우연히 만나는 한국사람은 참 반갑고, 잘 아는 사이도 아니면서 괜히 의지가 된다. 단지, 그 의사가 재일동포란 사실 하나로 그 병원을 출산병원으로 정했다. 대학병원의 경우는 출산예약 기간을 길게 두기도 하는데, 이 병원의 경우는 23주까지 예약을 하면, 출산이 가능하다는 점도 좋았다. 나중에야 무통분만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어찌나 놀랬는지 모르지만…….
(참고로 일본예비맘 인터넷 사이트 프레마마타운 조사의 무통분만율은 2.2%, 63%가 자연분만임. http://www.premama.jp/)
<출산을 위한 참고 홈피>
리본 출산원 리스트
http://www.web-reborn.com/saninjoho/saninjohoindex.html
일본모유협회가 정한 아기에게 좋은 병원(모유수유병원)리스트
http://www.bonyuweb.com/shoukai/about_bfh.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