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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에서 국민그룹으로 거듭나기까지
[SMAP 해체⓵]28년의 역사 정리해보니...
 
이지호 기자
▲  일본 남성 5인조 그룹 SMAP가 2016년으로 해체되면서 일본 각지의 CD 판매점에는 SMAP용 특별 코너가 마련됐다. 사진은 도쿄 시부야 타워레코드 1층에 마련된 SMAP 특별 코너의 모습.    ©JPNews

 

일본 남성 5인조 그룹 SMAP가 지난해 31일로 28년간의 그룹 활동을 종료했다.

 

일본 국민 그룹으로 불리던 SMAP의 해체 소식은 올 한해 가장 많이 보도된 연예 뉴스 순위나 가장 중대한 뉴스 순위, 일본 열도를 충격에 몰아넣은 뉴스 순위에서 모두 1위에 오를 만큼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해체’-> ‘해체 번복’ -> ‘공식 해체’로 이어진 SMAP 해체 관련 뉴스가 보도된 시간만 해도 29시간 38분 43초에 달한다. 해체 이유에 관한 루머도 무성하지만 대부분은 멤버들 간의 불화를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SMAP는 과연 어떤 그룹인지, 이들이 언제부터 국민 그룹으로 명성을 얻게 되는지부터 살펴보자. <편집자 주>

 

# SMAP, 그 시초는?
SMAP가 처음부터 SMAP란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 건 아니다. 전신은 ‘스케이트 보이즈’로 1987년 당시 최고의 아이돌 그룹인 ‘히카루 겐지’의 백댄서였다.

 

이때는 TOKIO의 고쿠분 타이치도 ‘스케이트 보이즈’ 멤버 안에 포함되기도 했다. 이후 1988년 4월 나카이 마사히로, 기무라타쿠야, 카토리 싱고, 모리 카츠유키, 쿠사나기 츠요시, 이나가키 고로 등 6명이 정식 멤버로 결정됐고 이름은 SMAP으로 변경됐다. SMAP이란 ‘Sports Music Assemble People’란 단어의 약자다.

 

SMAP이란 이름으로 활동을 개시할 당시 멤버들의 평균 나이는 14세. 멤버들은 ‘아이돌 공화국’같은 레귤러 프로그램이나 청춘가족, 3학년 B반 킨파치 선생 등 드라마에 속속 얼굴을 비추며 인기를 모으기 시작한다.

 

# 염원의 CD 데뷔
결성 후 3년이 지난 1991년 SMAP는 일본 부도칸에서 첫 라이브 콘서트를 개최한다. 아직 CD 데뷔 전이었지만 SMAP는 이 때 약 3만 명의 관중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한다. 이로 인해 ‘CD 데뷔 전 콘서트를 개최한 최연소 아이돌’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멤버들은 같은 해 8월 인기만화 ‘성투사 성시’ 뮤지컬에 도전했고 9월 ’Can't stop!! -loving-‘으로 염원의 CD 데뷔에 성공한다.

 

이 당시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아이돌 위주의 음악 프로그램이 속속 줄어드는 이른바 ‘아이돌 빙하기’에 들어섰지만 SMAP는 ‘유메가 모리모리’, ‘러브러브 SMAP’ 등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에 출연하며 아이돌 그룹으로서의 입지를 굳혀갔다.

 

1994년은 SMAP에겐 그야말로 최고의 한 해였다. 12번째 싱글곡인 'Hey Hey 오키니 마이도아리‘가 SMAP 최초로 오리콘 순위 1위를 차지했고 드라마 ’아스나로 백서‘로 연기자로서 주목을 받은 기무라 타쿠야가 주간지 앙앙(anan)이 뽑은 멋진 남자 1위로 선정되면서 일본 최고의 아이돌 그룹으로 승승장구하게 된다.

 

1996년 4월에는 SMAP 멤버 전원이 사회를 보는 대표 프로그램 'SMAP X SMAP'(스마스마)가 첫 전파를 타며 ‘SMAP 시대’가 왔음을 알린다.

 

# 모리의 탈퇴 후 5인 체제로
하지만 스마스마가 방영된 지 불과 5개월 만에 SMAP에게 큰 위기가 닥친다. 바로 멤버 모리의 탈퇴 선언이다. 모리는 오토 레이스에 도전하고 싶다는 이유로 스마스마 7회째인 1996년 5월 27일 다른 멤버들의 격려와 응원 속에 SMAP를 공식 탈퇴했다.

 

이들이 마지막으로 부른 곡은 ‘BEST FRIEND’. 리더인 나카이 마사히로와 이나가키 고로는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고 신고는 모리에게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눈물을 잘 보이지 않는 기무라 타쿠야도 눈물을 참으며 "모리를 언제나 응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리의 탈퇴는 아이러니하게도 SMAP 멤버들의 우정을 더욱 굳건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5명의 멤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또 SMAP이란 그룹으로 활등하며 최고의 자리를 향해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게스트를 초대해 SMAP 멤버들이 요리 실력을 겨루는 스마스마의 인기 코너 비스트로 SMAP에는 당대 최고의 연예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일본 언론들로부터 ‘눈과 입을 모두 만족시키는’ 프로그램이라는 찬사를 얻기도 했다.

 

1997년 기무라는 드라마 러브제너레이션에서 광고회사 직원으로 출연, 직업과 패션 등 시대를 반영하는 남성상으로 등극하게 된다. 쿠사나기 역시 드라마 ‘좋은 사람’으로 연기자로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 연기자뿐 아니라 아티스트로도 인정받다
SMAP은 이 시기 음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다. 1998년 출시한 27번째 싱글 ‘밤하늘의 저편’은 SMAP 최초의 밀리언셀러를 기록, SMAP 결성 10년을 자축하는 노래로 기록됐다.

 

이후 가족에의 사랑을 그린 발라드 곡, 라이온 하트(2008년, 32번째 싱글)이 연속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며 SMAP는 온국민이 사랑하는 ‘가족’같은 존재가 된다. 각자 활동에서도 주인공을 도맡으며 그룹으로서도 명성을 얻는 그야말로 일본 국민 그룹이 된 셈이다.

 

같은 해 SMAP에게 또 다시 커다란 변화가 생긴다. 바로 기무라의 결혼 발표다. 기무라의 결혼 상대는 2살 연상인 원조 아이돌 가수 쿠도 시즈카로 결혼 발표 당시 쿠도는 이미 임신 상태였다. 

 

인기 절정이었던 기무라의 결혼과 혼전 임신으로 팬들은 큰 충격을 받았지만 가정과 아이를 위해 결혼의 길을 택했다는 점 등을 팬들로부터 인정받으면서 별다른 헤프닝 없이 SMAP의 인기는 계속됐다.

 

이듬해인 2001년에는 이나가키가 큰 사고를 쳤다. 도쿄 시부야 인근에서 주차 위반으로 인한 트러블로 경찰에 체포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데뷔 10주년 기념 콘서트는 이나가키가 빠진 4명 체제로 진행됐고 SMAP는 연말 대표 음악 프로그램인 NHK 홍백가합전에도 출연하지 못했다. 이나가키는 5개월간의 자숙 기간을 거친 뒤 2002년 눈물을 흘리며 복귀했다.

 

# 인기 아이돌에서 국민 그룹으로
이듬해인 2003년 쿠사나기 주연의 드라마 ‘내가 사는 길’의 주연곡 ‘세상에서 하나뿐인 꼿’이 더블밀리언 셀러를 기록했고 최고 영예의 아티스트에게만 주어지는 홍백가합전 피날레를 SMAP가 장식하게 된다.

 

2005년 SMAP는 일본 아티스트로서는 처음으로 국립 가스미가오카 경기장에서 공연을 개최하게 된다. 이때 동원된 관객 수는 100만 명 이상으로 전해진다.
 
드라마에서도 SMAP의 활약상은 날로 더해갔다. 싱고는 NHK 대하드라마 주인공으로, 기무라는 후지TV 황금시간대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각각 발탁되며 연기자로서 큰 사랑을 받게 된다.

 

또 쿠사나기는 나와 그녀와 그녀가 사는 길에서 아버지로 성장해가는 은행원 역할을, 이나가키는 ‘이나가키 고로의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에서 탐정 역할을 맡으며 호평을 받는다.

 

리더 나카이는 전년 아테네 올림픽 당시 올림픽 메인 캐스터를 맡은 이후 좋은 평가를 얻으면서 본격적인 버라이어티 진행자로 활약하게 된다.

 

각자의 맡은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며 최고의 아이돌 그룹으로 거듭나던 그 때 다시한번 SMAP의 명성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벌어진다.
 
바로 쿠사나기가 2009년 도쿄 록폰기 미드타운 근처 공원에서 술에 취한 채 알몸으로 난동을 부리다 공연외설죄로 경찰에 체포된 일이다. SMAP 멤버 중 가장 점잖은 인물로 알려진 쿠사나기의 이러한 행태에 팬들의 충격도 적지 않았다.

 

이른바 알몸 파문으로 SMAP에 다시 쿤 시련이 닥쳤지만 다음날 싱고가 TV아사히 프로그램 'SmaSTATION!!'에서 사과하는, 신속한 대응 덕에 파문은 곧 수그러들었다.

 

# 모든 걸 국민과 함께했던 멤버들
2011년 데뷔 20년을 맞이한 SMAP의 평균 나이는 38세.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한해인 만큼 SMAP는 매해 개최하는 콘서트를 자제하고 팬미팅과 악수회 등 팬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행사를 진행했다.

 

또 스마스마를 통해 대지진 피해 성금을 모금하거나 이와테나 후쿠시마 현 지진 피해 지역을 직접 방문해 주민들에게 요리를 대접하는 등의 행사도 펼쳤다.  
 
같은 해 9월에는 SMAP 최초의 해외 공연을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 중국 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SMAP의 해체가 결정된 이후 주일 중국대사관은 이들이 중국에 방문했을 당시의 사진을 공식 트위터에 게재하고 고마웠다는 인사말을 남기기도 했다.

 

2014년에는 스마스마를 통해 멤버 5명이 처음으로 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연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기무라가 지도를 사러 편의점에 들르거나 멤버 전원이 노천온천에 들어가 온천욕을 즐기는 모습 등 인간적인 모습이 그대로 비춰져 큰 감동을 낳기도 했다.

 

# 28년 활동에 종지부...'해체'
그리고 2016년 1월. SMAP가 해체한다는 소식이 일본 열도를 큰 충격에 빠트렸다. 현재 소속사인 쟈니즈로부터 독립하겠다는 주장이었으나 이윽고 스마스마에서 멤버들이 이에 대해 사과하며 해체 소동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팬들의 입장에서 올해는 SMAP 데뷔 25주년이 되는 기념비적인 해다. 하지만 여느 때처럼 전달되던 콘서트 정보나 멤버들의 프로그램 출연 정보 등이 전혀 이들의 손에 들어오지 않으면서 팬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8월 14일, SMAP가 올해 말까지의 활동으로 팀을 해체한다고 공식 발표하게 된다. 다음 달인 9월 팬클럽 회원에게 25주년 기념품으로 사진집이 배포됐다. 하지만 상당수의 팬은 여전히 이 기념품을 열지 못하고 있다.

 

SMAP 팬들은 자필 서명 운동과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꽃’ CD 구매 운동 등을 벌이며 SMAP의 해체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팬들에 의해 수록곡이 결정된 마지막 베스트 앨범 ‘SMAP 25 YEARS’는 발매 첫주(12월19일~25일)에 동안 66만 장이 팔리는 기염을 토한다.

 

26일에는 멤버 자신들이 사회를 보는 스마스마가 최종회를 맞이한다. 4시간 48분 동안 이어진 방송에서는 SMAP 멤버들의 이제까지의 활약상이나 각종 사고, 헤프닝 등이 모두 방송됐다.
 
라스트 스테이지에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꽃’을 멤버 전원이 불렀고 이 무대는 멤버 전원이 함께 한 마지막 무대로 기록됐다. 나카이는 노래를 끝낸 후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이날 하루 동안 공식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팬들의 글이 약 1만1500건 게재됐고, 방송 도중에 도착한 FAX 사연도 1만 건에 달했다.

 

28년을 함께한 국민그룹이기에 해체 당일 생방송되는 NHK 홍백가합전에 출연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지만 쟈니즈가 이를 공식 거절하면서 SMAP의 활동은 사실상 끝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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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1/01 [17:19]  최종편집: 1999/11/30 [00:00] ⓒ jpnews_co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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