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년 1 월 9 일.
내게는 매우 특별한 날이다.
그러니까 공식적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한 인간을 장애가 있는 인간으로 확인시켜 준 날이기 때문이다.
그 확인이 ‘이제부터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으로 장애인이 된 것을 말하는지, ‘이 사회에 장애가 된 인간’으로의 장애인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나는 장애인이 되었다.
동사무소에서 장애 등록에 필요한 해당 서류를 제출하고 장애인 등록을 마친 후 사회복지 담당 직원으로부터 달랑 쪽지 한장을 받았다.
내가 장애인이 되고나서 처음으로 국가로부터 받은 서비스였다. 그 종이에는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각종 서비스. 지하철이나 수도권 전철의 무료 요금, 전화나 핸드폰등의 요금 감면, 국립공원등의 무료 입장 같은 서비스가 아주 자잘한 글씨로 씌어있었다.
“제가 시각장애 1급으로 등록된거 맞죠?”
“그런데요.”
“종이 말고 테이프나 기타 시각장애인도 확인 가능한 자료는 없나요?”
“없습니다. 집에가서 가족에게 부탁해서 읽으시죠.”
“물론 저야 가족에게 부탁할 수 있지만 만약 가족이 없는 경우는 어떻게 하나요?”
“죄송하지만 관련 자료는 이것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장애인이 되고난 후 처음으로 국가로부터 받은 서비스였다.
그런데 실제 집에 와서 읽어봐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이 되고 나면 국가로부터 엄청난 복지서비스를 받는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솔직히 나도 그랬다. 장애인만 되고나면 평생 나라에서 먹여 살려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종이에 자잘하게 적힌 내용은 별로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 나에게 필요하거나 유효한 서비스는 지하철 요금 무료와 통신요금(핸드폰, 가정용 전화, 인터넷등)의 30% 정도 요금 감면이랄까? 그러나 그것도 다른 서비스와의 중복이 안되므로 실질적인 혜택은 별로 없었다.
문제는 이런 서비스의 유무가 아니고 장애인이 되고 난 후 참여할 수 있는 재활 프로그램이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이나 단체등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시각장애인이 되고 나서 개인적 노력으로 이런 저런 기관을 알아내고 서비스를 받기까지 모두 개인적 노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렇게 시설이나 기관등을 알게 된후 만난 나 같은 중도 장애인들도 한결같이 마찬가지였다. 시각장애인들이 가지고다니는 흰 지팡이조차 어디서 판매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55 세에 중도 실명해 외출을 하기 위해 흰지팡이를 구하려 했으나 정보를 알지 못해 낚시대를 부러뜨려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중도 장애인은 심리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그런 상태에서 재활이나 사회참여에 필요한 서비스가 제때에 제공되지 못하는 문제는 심각하다. 대개의 경우 그런 심리적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선택하는 것이 '자살'이다. 내가 만났던 중도 실명자들의 경우 최소 몇 번은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하고 심지어 실제 행동에 나섰던 이도 상당수였다.
만약 중도 장애인에게 적절한 시기에 재활 관련 프로그램의 정보가 제공되고 서비스가 실시된다면 현재 부딪히고 있는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기 위해서는 장애인 등록 절차를 밟을 때부터 적절한 개입이 요구된다. 현재는 장애인 등록을 위해서는 의사의 진단서가 필요하다.
만일 진단서 외에 사회복지사와의 상담을 요구하거나 등록 후 현재 전국에 있는 각종 장애인 단체나 복지관등의 복지 기관들과의 연계를 통한 개입을 초기 단계부터 한다면 훨씬 효과적인 장애인 복지 프로그램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알고 지내는 중도 시각장애인들은 만나면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내가 전에는 그래도 은행원이었다.”
“그래도 실명전에는 대학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교수였다.”
이런 왕년의 스타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왕년의 화려한 스타들이 장애인이 되고나서 같은 생활을 유지하는 경우랑 극히 드물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역시 재활 프로그램 참여의 시기를 놓친 경우가 많다.
그러면 복지 선진국이란 일본은 어떨까?
일본도 크게는 다르지 않다. 다만 장애인 등록시 실제 필요한 서비스나 프로그램을 좀더 꼼꼼하게 알려주고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2006 년 결혼을 하면서 일본에 오게 되고 자연히 일본에서도 장애인 등록을 했다. 등록 당시 나를 진찰한 의사는 잔존시력이 남아 있는 나를 위해 그 잔존시력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애썼다.
그런 의사의 도움으로 일본의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일상 생활용품 지원 서비스’를 알았고 글자를 확대해서 볼 수 있는 독서 확대기를 국가로부터 90% 지원을 받아 살 수 있었다. 또 장애인의 활동보조를 위한 ‘캐어 매니져’와의 상담을 통해 내가 받을 수 있는 각종 서비스나 필요한 기관을 소개 받을 수 있었다. 그런 적절한 도움으로 말도 통하지 않던 일본에서의 생활에 조금씩 적응할 수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장애인에 대한 복지 서비스는 상당한 수준에 와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도 개선해야 할 사항이 많고 그에 대한 예산의 확보라는 어려운 문제도 있으나 실질적으로 서비스의 다양함과 프로그램은 결코 다른 나라에 뒤떨어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그런 서비스나 프로그램을 실질적으로 이용하는 장애인에게 적절하게 정보가 제공되느냐 하는 것이다. 특히 중도 장애인의 경우 초기 개입은 대단히 중요하다. 장애 초기부터 그런 서비스나 프로그램의 개입이 있다면 장애 전에 가지고 있던 직업생활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기회가 커질 뿐만 아니라 심리적 불안감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다.
그런 심리적 안정은 가족 관계에도 적용돼 가정이 해체되는 수많은 사례도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적절한 서비스를 적절한 시기에 맞춰 제공하는 세심한 노력이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