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 '바람불다(風立ちぬ)'가 오는 20일, 일본에서 개봉한다. '벼랑 위의 포뇨' 이후 5년만에 개봉하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신작에 일본 애니메이션 팬들은 흥분과 기대를 감추지 않고 있다. 그런데 개봉을 앞둔 대규모 시사회에서는 일본관객들의 평이 엇갈린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이웃집 토토로',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수많은 명작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낸 미야자키 감독은 이번 작품 '바람불다'에서 1982년 사망한 항공기술자 호리코시 지로(堀越二郎)를 모델로 한 주인공의 반생을 그렸다.
호리코시 지로는 '제로센 전투기'로 불리는 영식함상전투기(零式艦上戰鬪機)의 설계자다. 제로센 전투기는 태평양 전쟁 당시 고성능 전투기로 호평받으며 전장을 누볐다. 이 전투기의 설계자를 모티브로 했다는 사실 때문에 일부 한국인들은 이 작품에 반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의외로 '제로센 전투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철저히 비행기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지닌 소년이 군수산업체의 엘리트 엔지니어가 되어 전투기를 만들어내기까지의 스토리에 치중하고 있다.
평소 반전 시위에도 참여하는 미야자키 감독의 작품인 만큼 한국 팬들이 우려하는 전쟁에 대한 미화도 없다. 대신 이번 작품 속에서는 아름답지만 불행한 소녀 나오코(菜穂子)와의 만남과 이별의 러브 스토리가 있다.
주연성우에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으로 잘 알려진 영화감독 안노 히데아키(庵野秀明)가 기용됐고, 주제가는 '마녀배달부 키키'의 주제가를 맡았던 마츠토야 유미(松任谷由美)가 담당했다. 영화를 본 마츠토야는 "오열할 정도로 감동했다"고 절찬했고, 미야자키 감독 자신도 상영회에서 울었다고 한다.
또한, 업계 관계자로부터 호평이 잇따랐다. 6월 열린 관계자 시사회 뒤, '섬머 워즈' 등 일본에서 히트작을 여러작 낸 호소다 마모루(細田守) 감독은 트위터를 통해 "이렇게 좋은 영화는 이제껏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며 극찬했다.
그러나 7월 들어 일반 관객 1만 명 이상을 상대로 초대한 대규모 시사회가 열린 뒤 일본 온라인상에서는 평이 엇갈리고 있다.
"지브리 작품은 역시 작화가 아름답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는 감상이 나오는 한편, "이야기를 알 수 없다", "지루해 잠들었다"는 혹평도 적지 않았다.
또한, 아이들을 데리고 시사회장을 방문한 부모들로부터 "아이들이 지루해해서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아이들에게 감상을 묻자 '의미를 알 수 없었다'란 말만 반복했다"는 불만이 쏟아져 나왔고, "지브리 만화영화면서 토토로나 포뇨 같은 캐릭터가 왜 나오지 않느냐"며 화내는 부모까지 있었다고 한다.
사실 이번 작품에 대해, 미야자키 감독은 "어른을 위한 영화"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영화에서는 전작처럼 화려하거나 코믹한 장면도, 클라이막스라 할 만한 부분도 거의 없다. 그런데 이 같은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영화관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이 때문에 상영 중에 지루해서 우는 아이나 영화관 안을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미야자키 감독의 이번 작품 '바람불다'는 지금까지는 성격이 많이 다른 애니메이션이다. 지금까지의 작품과 같은 판타지 장르가 아닌, 관동대지진이나 태평양 전쟁 등 실제 일어난 일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대지진, 전투기, 당시 일본의 모습 등이 현실에 기반해 그려졌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지브리 작품에서 보기 드문 어른들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지브리 작품 사상 첫 키스신도 등장한다.
작품 인생 처음으로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이 아닌, 어른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 그로서는 이번 작품을 통해 이례적인 도전에 나선 셈이다.
그는 사실 이번 영화 제작에 크게 반대했다고 한다. 애니메이션은 철저히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야자키 감독과 30여년을 함께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스즈키 도시오(鈴木 敏夫) 프로듀서는 이 영화의 제작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계속 미야자키 감독을 설득했다.
이와 관련해 스즈키 프로듀서는 일전에 이 같이 밝힌 바 있다.
"미야자키 씨는 전쟁 세대로, 어린 시절에는 전투기 그림만 그렸다. 그대로 전투기가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지만, 사상적으로는 전쟁이 극히 싫어 반전 시위에도 참가하고 있다. 그런 모순 속에서 산 사람이다. 그러니까 '왜 자신과 같은 인간이 생겨난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영화로 밝혀야 하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하나, 미야자키 씨의 전쟁이나 전투기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취미에 그치게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서 여러번 설득했다. 이제 나이도 나이이니만큼 정말 잘하는 것을 해야한다고 말이다"
▲ 스즈키 도시오 프로듀서 ©jpnews/山本宏樹 |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도 결국 그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번 영화를 제작했다. 이 영화는 세계적인 대불황, 대지진, 정치에 대한 불신 등 최근 일본의 상황과도 비슷한 1920~3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시대배경과 영화 포스터의 문구 '살아야 한다'에서 나타나듯, 이 영화는 다분히 메시지성이 강한 영화다.
기존의 지브리영화가 메시지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 영화의 주제 자체가 어린아이들이 보기에는 무겁다. 말그대로 '어른을 위한 동화'다.
스튜디오 지브리, 미야자키 감독이 지금껏 생산해온 작품들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호불호가 엇갈리고 있지만, 거장 미야자키 감독의 새로운 도전인 만큼, 애니메이션 팬들이라면 이번 신작을 한번쯤 감상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