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부터 2012년 2월까지 1년간 동경에서 살면서 가장 많이 찾았던 외식은 주로 회전초밥이었다.
둘째 아이가 일본에 와서 있을 때는 집 근처 회전초밥 체인점 '갓파즈시'에 갔는데, 물론 싸고 맛있어서 찾았지만 좌석마다 달려있는 터치주문판에 먹고 싶은 초밥을 주문해 넣으면 레일이 달린 고속 배달 접시로 배달되는 것이 신기해서 더 자주 찾았던 것 같다.
나 혼자 있을 때도 내가 근무하던 국문학자료관에는 구내식당이 없어서 자주 차를 타고 타치카와에 나가서 초시마루라고 하는 초밥집을 찾았다.
초시마루는 모든 초밥이 105엔인 갓파즈시에 비해 약간 고급이라고 할 수 있으나 평일 점심에는 생선탕요리에 해당하는 아라지루를 얼마든지 가져다 먹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가격차이가 크지 않아 거의 매일 찾았다.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직원 모두가 "어서 오세요. 맛이 있는 무대로"라고 힘차게 소리지른다. 매번 갈 때마다 초밥을 만들고 있으면서도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소리치는 요리사를 보면서 시끄럽기도 하지만 열심히 사는 그들에게서 힘을 받곤 하였다.
가게에는 "우리들은 점포라고 하는 무대에 선 배우입니다"라는 글귀가 쓰여있고, 이곳은 '초시마루'라는 가게가 극장이고 점포에서 일하는 스탭 전원이 극단원이라는 콘셉을 내세우고 있다.
일본의 스마트폰 뉴스사이트 'News Cafe'에 따르면, 일본전국이 불황에 허덕이는 가운데서 지금도 회전초밥 시장규모가 최근 10년에 약 2배로 늘어나며 외식업계를 이끄는 성장분야라고 한다.
현재 일본의 회전초밥 프랜차이즈의 매출 랭킹을 보면 최근 갓파즈시를 제치고 스시로가 1위가 되었고, 갓파즈시가 2위, 3위는 구라즈시 순으로 되어 있다. 지금 한국에 들어와 있는 일본 회전초밥 프렌차이즈는 이 중에서 스시로와 갓파즈시가 있다. 현재 스시로와 갓파즈시는 한국에 각각 7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 유명 회전초밥 체인점 '갓파즈시' ©JP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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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일본에서의 지점수는 갓파즈시가 2013년 1월 10일 현재(일본 위키페디아) 갓파즈시가 391곳, 스시로가 340곳, 구라즈시가 311곳으로 3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그 밑으로는 204곳인 하마즈시, 142곳 겐키즈시로 지점수가 확 줄어든다.
원래 회전초밥은 오사카(大阪)의 서서 먹는 스시가게 경영자인 시라이시 요시아키(白石義明)씨가 1958년 4월에 오픈한 '겐로쿠스시(元禄寿司) 1호점'에서 시작된다. 요시아키씨가 맥주공장에서 사용되던 컨베이어 벨트를 보고 힌트를 얻어서 개발한 벨트 위에 스시 접시를 올려놓아 돌게 한 것이 회전초밥의 시작이다. 이로써 고급 음식의 대명사였던 초밥이 대중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 일본 초밥의 역사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스시라는 용어가 삭제되고 초밥으로 순화되었다. 그래서 초밥을 찾아보면, "[명사] 일본 음식의 하나. 초와 소금을 친 흰밥을 갸름하게 뭉친 뒤에 고추냉이와 생선 쪽 따위를 얹어 만든다"로 나와 있다. 그러나 설명을 읽지 않아도 스시라는 것이 어떤 요리인지는 한국사람들 대부분 다 알고 있으리라. 영어로 'sushi', 'sushi bar'는 이미 세계어가 되어있다.
하지만 스시의 기원이 '새우젓', '명란젓'과 같은 젓갈이라는 사실은 잘 모르고 있다. 즉 김치가 야채의 저장방법이라면 젓갈은 생선의 저장방법이다.
귀중한 단백질원인 생선을 보존하기 위해 소금을 넣어 오랜 기간 발효시킨 젓갈에서 발전하여 기원전 4세기경 동남아시아에서 밥에 소금을 넣어 생선과 함께 저장하는 어육보존법이 발생했다. 생선의 내장을 처리해 밥과 함께 넣어두면 밥의 자연발효에 의해 생선의 보존성을 높인 음식이다. 이를 일본에서는 '나레즈시'라고 부르는데, 수십일에서 수개월동안 절여놓았다가 생선을 건져서 밥은 버렸다.
이 나레즈시가 중국으로 건너가고, 다시 8세기 전반에 일본에 전래된다. 지금도 이 나레즈시는 비와코(琵琶湖) 주변의 후나즈시(붕어), 와카야마(和歌山)의 꽁치 나레즈시, 기후(岐阜)의 은어 나레즈시가 남아있다.
무로마치시대(14-16세기)에는 생선과 함께 넣은 밥에 산미가 생길 무렵 먹는 방법이 생긴다. 빠를 경우는 담그고 삼사일만에 밥과 함께 먹게 되었다. 이렇게 생선의 보존보다는 밥을 맛있게 먹으려는 요리의 길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 된 요리서인 에도시대 초 '요리이야기料理物語'(1643년 간행)에는 이치야즈시(一夜鮨)가 나온다. 말 그대로 하룻밤 담아둔 초밥이라는 뜻인데, 무염의 작은 물고기나 물고기 조각을 소금을 넣은 밥과 교대로 쌓아서 하룻밤 숙성시킨 초밥이다. '요리이야기'에서는 소금을 치지 않은 은어에 소금을 친 밥을 얹어 짚으로 쌓아 불로 살짝 태운다. 그리고 이를 거적에 쌓아 덥혀서 기둥에 강하게 묶어 압력을 가하면 하룻밤에 숙성(발효)된다고 나와 있다.
이렇게 시간이 걸리던 초밥을 하룻밤에 숙성시키려고 한 이치야즈시는 발상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이치야즈시는 종래의 발효 초밥에서 사용하던 생선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이 이후에도 새로운 생선으로 초밥을 만들려는 시도가 계속된다.
초밥에 처음 식초가 사용된 기록은 1668년 '요리염매집料理塩梅集'이다. 오륙일만에 먹을 수 있는 후나즈시(붕어 초밥)에 술과 식초를 섞으면 이삼일 만에 먹을 수 있다고 나온다. 여기서 초밥에 식초가 사용됨으로서 발효를 시키지 않고 식초를 넣어서 만드는 즉석 초밥의 길이 열렸다고 할 수 있다.
◆ 즉석초밥은 혁신의 결과물
일본인들은 식초를 사용하는 초밥을 총칭해 하야즈시라고 불렀다. 원래 발효를 빨리 진행시켜 바로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술을 섞거나 누룩을 섞거나 하다가 술을 넣은 초밥이 식초로 변하여 신맛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하야즈시의 출현은 초밥이 발효식품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종래의 초밥이 저장식이었던 점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즉석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요리로 변화하였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1800년 경이 되면 초밥은 식초를 사용하는 하야즈시를 의미하게 된다.
하야즈시는 초밥 역사에 있어서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동남아에서 시작되어 중국을 거쳐 한국을 통해 일본으로 들어간 생선의 염장법이 낳은 요리지만 발효를 시키지 않으므로 루트가 같다고 할 수 없다. 발효를 시키지 않는다는 발상의 전환이 만들어 낸 혁신적인 요리이다. 이로써 식초를 친 밥 위에 신선한 생선을 올려놓아 간장에 찍어먹는 즉석초밥이 탄생했다.
이렇게 보면 현재 우리가 먹는 즉석초밥은 몇 번의 혁신에 의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첫 번째 혁신은 염장초밥에서 즉석초밥으로의 변신이고, 두 번째 혁신은 컨베이어 벨트의 이용이다. 그리고 세 번째 혁신이라면 초밥 제조과정의 기계화와 IT화라고 할 수 있다.
요즘은 한국의 롯데마트 등에서도 초밥 기계를 볼 수 있는데 일본의 회전초밥집 주방에도 초밥로보트가 활약하고 있다. 초밥의 밥 부분을 일본어로 샤리라고 부르는데 초밥로보트 1대가 1시간에 샤리 2000개를 만들 수 있다. 김밥도 마찬가지로 기계로 만들고 있어서 초밥을 초밥 기술자가 만들지 않더라도 기계 조작법만 익히면 누구든지 만들 수 있도록 되어있다.
가장 중요한 혁신은 IT화라고 할 수 있다. 하루에 1만 접시를 만드는 회전초밥집에서 폐기되는 접시를 줄이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현재 벨트 위를 돌고 있는 초밥을 파악하기 위해 접시에 코드를 붙이고 주방에 있는 센서가 이를 표시한다. 그리고 접시가 두 번 돌아도 주인을 찾지 못하면 자동 폐기되는 시스템을 도입하여 신선도를 유지한다.
하지만 이 시스템만으로는 폐기되는 접시 숫자를 줄일 수 없다. 그래서 2000년경부터 터치패널 주문시스템이 도입되었다. 그래서 요즈음 일본의 회전초밥집에 가면 접시 도는 곳이 두 군데 있어서 아래층은 벨트 위로 접시가 돌고 있고, 윗층에서는 레일이 깔려있어 주문한 초밥이 신칸선을 타고 배달되고 있다. 그러니까 1층은 종래의 회전초밥 방식이고 2층은 터치패널에서 주문한 제품이 주문한 손님에게 배달되는 방식이다.
▲ 회전초밥집의 터치패널(하단)과 터치패널로 주문한 초밥(상단) ©JP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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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에서는 여러 회전초밥전문점에 터치패널 방식이 보급되고 있다. 아예 진열장에 초밥모형을 진열하고 터치패널에서 주문한 초밥만 만들어서 돌리는 곳마저 있다고 한다.
◆ 맛있는 초밥
이렇게 초밥의 대중화가 진행되는 한편 아직도 고급 초밥 시장은 건재하다.
도쿄에만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셋을 준 초밥집이 네 군데다. 스키야바시지로(すきやばし次郎) 본점, 스시사이토(鮨さいとう), 스시미즈타니(鮨水谷), 스시요시타케(鮨よしたけ) 이 네 군데 초밥집은 한국에서도 유명해서 블로그로 검색해보니 많은 사람들이 다녀와서 블로그에 올려놓았다. 가격은 대략 1만 엔에서 3만 엔까지로 요즘 엔환율로 보면 11만원에서 33만원쯤이다.
나는 그다지 식도락가가 아니어서 그런지 굳이 이정도 돈을 내고 가서 먹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그냥 내가 지금까지 제일 맛있게 먹은 초밥을 소개할까 한다.
내 친구 중에 일본 영화감독이 있다. 이름은 켄모치 사토키, 가수 윤하가 주연을 한 '이번 일요일에'를 제작하였다. 일본에 갔을 때 켄모치 감독이 맛있는 초밥을 사주겠다고 새벽 첫 전철을 타고 츠키지 시장으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츠키지 시장역에 도착하는 첫 전철은 5시 22분. 이 시간에 맞추어 나가느라고 4시반경에 졸린 눈을 비비며 호텔을 나섰다. 아직 컴컴한 겨울이었는데 추위 속에서 그저 켄모치 감독이 안내하는 곳으로 따라갔다. 5시 40분경에 허름한 초밥집에 도착하였는데 이렇게 일찍인데도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가게는 5시에 연다고 한다.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가게 안을 들어가니 겨우 사람이 10명정도 앉을 정도로 좁은 카운터석이 있을 뿐이었다.
우리가 먹은 메뉴는 오마카세 세트(주방장이 마음대로 만들어주는 세트메뉴)로서 그날그날 좋은 재료를 초밥으로 만들어 준다. 그때는 얻어먹어서 얼마인지 몰랐으나 지금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3,900엔이다.
4만원 정도인데 생선이 크고 두껍다. 회전초밥은 가격이 싼 대신에 생선이 작고 얇다. 초밥을 한 개씩 만들어 주는데 보기에도 기름이 좌르르 흐르는 것이 식욕을 돋군다. 새벽에 식욕이 있을까하고 걱정하던 것이 확 날아갔다.
이날 먹은 마구로(참다랑어)와 하마치(방어) 등은 지금까지 먹은 초밥 중에서 최고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혹시 동경에 머물 경우에는 꼭 한번 들러서 맛보시길 바란다.
글. 최경국(명지대학교 일본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