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길 꺼려했던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조금씩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 9일 TV아사히 계열 방송프로그램에서, 교전권을 금하는 헌법 9조를 개정해 '집단안전보장'에 참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집단안전보장이란, 어느 한 국가가 타국을 침략하는 등 국제사회의 평화를 흐트러트렸을 경우, 각국이 침략국에 집단으로 제재를 가함으로써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는 안전보장체제다. 일본은 헌법 9조를 통해 교전권을 포기했기 때문에 집단안전보장의 수혜를 받을 수는 있을 뿐, 제재에 직접 참가할 수 없다.
▲ 121218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 ©JPNews | |
유엔헌장 7장은 이 같은 집단안전보장 체제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안전보장이사회가 경제제재 등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인정했을 경우, 국제평화와 안전 회복을 위해 육해공군이 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자민당이 지난해 4월 정리한 헌법개정안 초안을 인용, 교전권을 금하는 일본헌법 9조 1항을 수정해야 한다며,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무력행사를 하지 않는다면, (유엔의) 집단안전보장에 있어서 일본은 책임을 다할 수 있는가 의문"이라고 밝혔다.
(※ 일본헌법 9조 1항: "국권 발동으로서의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무력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포기한다") 일본정부는 자위대의 유엔군 참가에 대해 "장래, 유엔군의 편성이 실제 논의가 될 때 판단한다"는 입장을 나타내왔으나, 아베 총리는 헌법 개정을 통해 "(참가에 대비해) 정리를 해두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일본에서는 최근 헌법 개정의 발의요건을 정하는 헌법 96조 개정이 주로 논의되고 있다. 물론 이는 우익 정권이 평화 헌법(헌법 9조) 등의 헌법 개정을 더욱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다.
아베 총리는 이날도 "국민의 6,70%가 (헌법을) 바꾸려 해도, 전체 3분의 1을 약간 넘는 국회의원이 반대하면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못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헌법 96조 개정을 최우선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색깔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던 아베 총리가, 헌법 96조 개정논의에서 한발 더 나아가 헌법 9조 개정을 직접 언급하고 나선 것은 일본 국내에서도 다소 놀랍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가 7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정권 운영에 자신감을 얻은 게 아니냐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의 이번 발언에 대해서, 일본 민주당 등 야당 뿐만 아니라, 여당내에서도 당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마이니치 신문에 따르면, 한 자민당 방위상 경험자는 "헌법 개정은 여름 참의원 선거의 공약에 써두었으나, 집단안전보장은 (참의원) 선거에 이긴 뒤의 이야기다.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선거를 앞두고 굳이 대외적, 국내정치적으로도 민감한 사항을 건드려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자민당과 연립정권을 꾸리고 있는 공명당의 간부는 "선거철이 다가오기 때문에 무언가를 어필하고 싶은 마음이겠지만, 경제와 부흥을 최우선시하는 지금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아닌지"라며 쓴소리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