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월이 다 지나가고 3월이 왔다.
이때쯤이면 따뜻한 봄맞이로 한껏 들뜰 때이지만, 신오쿠보 한인타운의 분위기는 여느때보다도 얼어있다. 지난 2월 한 달 동안 유난히도 반한·혐한 시위가 많았던 탓이다.
한류 열풍으로 일본인들로 북적이던 신오쿠보 코리아 타운에 반한 시위가 잦아진 것은 지난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부터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모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본인이 직접 언급했듯이, 일본의 우경화 흐름에 제동을 걸고자 한국 대통령 최초로 독도를 방문했지만, 그의 독도 방문은 오히려 정반대의 역효과를 낳았고, 이를 계기로 일본에서는 우경화가 급진전됐다. 특히, 중국과의 영토 문제로 곤욕을 치르던 일본 민주당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었고, 결국 이는 보수정당 자민당의 대승으로 이어졌다.
그동안 일본 언론이 워낙 한류를 띄워주었고, 이에 대중이 동조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한류 열풍을 아니꼬운 눈으로 바라보던 일본 극우단체 회원들은 행동에 나서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독도 문제로 한일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자 극우 단체 회원들은 이를 빌미로 한인 타운에서 수시로 반한 시위를 벌이게 됐다.
지난해 9월부터 한두달에 한 번 꼴로 이뤄지던 코리아타운 반한 가두 시위는 지난 2월에는 무려 4차례나 열렸다. 특히, 일본의 건국기념일(11일)이 껴 있던 9, 10, 11일 연휴에는 일본 극우단체들이 번갈아가며 3일 연속으로 시위를 벌였고, 코리아 타운의 상인들은 매출감소는 둘째치고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폭력사태에 대한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 2월 9일 반한 시위
▲ 130209 신오쿠보 코리아타운 반한시위 ©권철
9일, 2,3백여 명에 달하는 극우 행동파 단체 회원들이 가두 시위를 벌었다. "한국인 때려죽여라", "한국인은 이 나라에서 나가라", "한류팬들은 강간당할지 모른다. 한국인은 위험하다" 등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퍼부어 가며 행진했다.
경찰이 함께 동행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길이 그리 넓지 않은 탓에, 시위대는 가까이 있는 한국인, 일본인들에게 매우 위협적이었다.
▲ 130209 신오쿠보 코리아타운 반한시위 ©권철
갑자기 시위대에 한 여성이 뛰어들었다. 반한 시위를 벌이는 시위대에 거세게 항의했고, 반한 시위대의 몇몇 남성이 이 여성과 몸싸움을 벌였다. 이 여성은 신오쿠보를 지나던 일본인이었다. 시위를 보고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고 한다.
"같은 일본인으로 창피하다"
필자는 시위대를 매번 취재하지만, 이 같은 시위가 일어나는데도 일본 주요 언론은 거의 취재하러 오지 않는다. 얼마 전 후지TV가 취재하러 온 적이 있었고, 그 이외는 전무하다.
이는 전세계적인 망신거리를 만들지 않으려는 TV방송사의 의도가 아닐까하는 지레짐작을 해본다.
▲ 130209 신오쿠보 코리아타운 반한시위 ©권철
시위대를 따라 사진을 찍는데 한 여학생이 울고 있었다. 한국인인 줄 알고 한국말로 물었는데, 일본인 학생이었다. 왜 우는지 궁금해 이유를 물을 겸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말을 걸자 이 여학생은 울면서 "죄송하다"를 연발하며 눈물을 훔쳤다. 아마도 반한 시위대의 위협적인 모습에 공포감과 더불어 이 마을에 사는 한국인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던 듯했다.
이날부터 10, 11일까지 3일 연속으로 이 같은 시위가 벌어졌다.
◆ 2월 11일
▲ 130211 신오쿠보 코리아타운 반한시위 ©권철
이날 일본의 건국기념일을 맞아 우익단체의 차량이 대거 출동했다. 한인과 한류팬들로 북적이는 신오쿠보 옆 쇼쿠안도리 도로에서 유턴을 반복하며 30분 동안 이곳에 머물렀다. 이 차에 설치된 확성기에서는 천황에 대한 찬양이 이어졌고, 한국에 대한 비판과 욕설이 난무했다.
이날은 특히, 천황제를 반대하는 일본 좌익단체들의 시위 코스에 신주쿠가 포함돼 일본의 좌익과 우익이 신주쿠 한인 거리에 총출동(?)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비록 좌익단체는 한인들을 배척하는 집단이 아니지만, 거리 상인들은 시위대가 출현한 사실만으로도 심한 불쾌감을 느꼈다. 일부 상인들은 좌익들까지 반한 시위에 나섰다고 오해하기도 했다.
▲ 130211 신오쿠보 코리아타운 반한시위 ©권철
일본의 우익단체들 가운데서는 야쿠자 조직과 연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최근 일본 경찰이 대대적인 야쿠자 단속에 나서는 상황이기 때문에, 조직원들을 우익단체원으로 가장 시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가두 시위에 참가하는 이들은 인터넷상에서 연락을 취해 모이는 반면, 이들은 오프라인상에서 조직을 유지하며 차량을 이용해 시위를 한다.
▲ 130211 신오쿠보 코리아타운 반한시위 ©권철
확성기 소리에 한 꼬마 아이가 겁먹은 표정을 짓는다. 강아지도 놀란 모습이다.
◆ 2월 17일 3일 간의 반일 시위에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크게 놀랐다.
시위 광경을 본 일본인 상당수가 "창피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일주일 뒤인 17일, 반한시위를 반대하는 시위대가 등장했다.
▲ 130217 신오쿠보 코리아타운 반한시위 ©권철
이날, 반한 시위대와 함께 신오쿠보 코리아타운에 등장한 '반(反) 반한 시위대'는 비록 적은 인원이었지만 '한국과 일본, 친하게 지내요'라는 종이를 들고 한일 우호를 외쳤다.
이들은 SNS를 통해 모인 이들로, 개중에는 대학 교수도 있었다.
반(反)반한 시위대를 본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모임)의 사쿠라이 마코토 회장이 갑자기 달려들었고, 경찰이 이를 제지했다. 사쿠라이는 코리아타운 가두 시위의 주동자 격인 인물로, 반한 시위나 반한 관련으로는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인물이다.
이날 일본 경찰은 이상한 행태를 보였다.
반한 시위 반대 모임이 피켓을 들고 소리지르면 강력하게 제지하면서도, 반한 시위대에는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던 것.
반한 시위 반대 모임이 사전에 시위 허가를 받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다하더라도 경찰의 제지 행동은 도가 지나쳤다.
"한국인을 떼죽음시켜야 한다"는 등의 상상도 못할 욕설을 눈앞에서 내뱉는 이들을 제지하지 않는 것 자체도 다소 의아스러운 부분이다.
▲ 130217 신오쿠보 코리아타운 반한시위 ©권철
이번에 필자가 찍은 사진을 자세히 보면, 한국인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일본인들뿐이다.
일본 내 한류붐은 일본인들에 의해 일어났다. 그리고 신오쿠보를 한류의 성지로 만든 것도 일본인이었다. 한쪽에서는 한류를 즐기고, 다른 한쪽에서는 반한 시위를 하고 거리 행인을 위협한다. 일본인들이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사이에서 재일 한국인들은 정말 피곤하다.
쇼쿠안도리에서 한국식당을 경영하는 김모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 아이가 시위대가 하는 말에 욱해서 밖으로 뛰쳐나간 적이 있어요. 우리는 그 아이를 말리느라 그날 장사도 못했어요. 시위대는 다수고 우리쪽은 소수인데 만약 폭력사태로까지 번지면 그 다음은 감당할 수 없을만큼 겉잡을 수 없어지잖아요. 억울하고 분한 것은 유학생 신분인 그 아이나 우리 모두 똑같지만, 만약 감정대로 맞받아치면 우리가 그들에게 말려들어가 더 큰 사태를 유발할 수도 있죠. 그래서 요즘에는 아르바이트로 일하러 오는 유학생 중에 유달리 욱하는 성격이 있거나 정의감이 투철한 아이가 있으면 시급을 주더라도 시위하는 날엔 못 나오게 해요. 만약 시위대와 맞붙었다가 불상사라도 나면 그 아이는 그대로 강제추방이에요. 일본에 공부하러 왔다가 한순간을 못참아 지금까지 한 고생을 물거품으로 만들수는 없지요. 정말이지 요즘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위에 서 있는 느낌 그런 기분으로 살아요."
이에 대해 일본주재 한국대사관과 한국정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코이라타운에서 한국식당과 한류숍을 운영하는 재일한국인들의 안위는 걱정이나 하고 있는 것일까?
정말이지 물어보고 싶다.
글: 권철·이지호
사진: 권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