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을 마지막으로 일본의 3대 로우틴 패션 잡지 중 하나였던 '러브베리'가 휴간에 들어갔다. 사실상의 폐간이다.
러브베리는 2001년 12월에 창간돼 10년 동안 유지되던 잡지다. 일본에는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 1~2학년까지를 대상으로 하는 로우틴 패션잡지 시장이 존재하고, 이 시장의 개척자이자 절대 강자인 '니콜라'를 비롯해 '피치레몬', '러브베리', '하나츄' 등이 4대 잡지로 불린다.
발행부수는 2010년까지만 해도 니콜라가 22만 부, 피치레몬이 14만 부, 러브베리가 12만 부 수준이었다. '하나츄'는 2011년 5월호를 끝으로 휴간되었다. 그런데 남은 3개의 잡지 중 3인자였던 러브베리가 2010년 말부터 판매부수가 급락하면서 2011년 하반기에 와서는 9만 부 수준까지 판매부수가 떨어져 결국 휴간에 이르게 되었다. 그런데 이 러브베리 휴간에는 사실 AKB48이 매우 깊게 관여돼 있기 때문에, 러브베리의 기존 독자들과 러브베리 전속모델의 팬들 사이에서는 AKB48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다.
러브베리는 아이돌 그룹 '아이돌링'의 멤버인 아사히 나오와 중학생 패션 모델인 미키 호노카를 투톱으로 30여 명의 전속모델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0년 하반기부터 판매 부수가 급감하더니 작년 3월11일의 대지진 발생으로 판매 부수가 더욱 급락해 큰 위기를 맞게 된다. 이 때는 지진의 영향으로 모든 잡지의 판매 부수가 급락했는데, 러브베리는 판매 부수 감소를 막기 위해서 AKB48을 끌어들이는 선택을 하게 된다.
러브베리의 전속 모델들은 대부분이 자사의 모델 선발 오디션을 통과했거나, 모델 채용을 위한 별도의 오디션을 보게 되어 있다. 그런데 2011년 6월호에 돌연 아무런 이유도 없이 AKB48의 자매 그룹인 SKE48의 주력 멤버인 '마츠이 쥬리나'가 단독으로 표지에 실렸다. 표지 뿐만이 아니라 내부의 각종 기사에도 마츠이 쥬리나가 모델로 기용되었다.
그 다음 달인 2011년 7월호에는 어찌된 일인지 러브베리와는 전혀 관계 없는 AKB48의 '마에다 아츠코'가 표지에 등장했다. 8월호에는 역시 AKB48 멤버인 이타노 토모미가 다른 러브베리 전속 모델 3명과 함께 표지에 등장했다. 9월호에는 다시 마츠이 쥬리나가 러브베리의 투톱인 아사히 나오와 미키 호노카와 함께 표지에 등장하는데, 10월호에는 다시 마츠이 쥬리나와 AKB48 멤버인 '마에다 아미'가 듀엣으로 표지를 장식한다. 11월호에는 다시 마츠이 쥬리나와 마에다 아미, 그리고 러브베리의 기존 전속 모델인 아사히 나오와 하시모토 카에데, 12월호는 다시 마츠이 쥬리나의 단독 표지다.
그러더니 휴간이 결정된 뒤 나온 2012년 1월호에는 마츠이 쥬리나의 사진이 표지 구석에 작게 들어갔다가, 최종호인 2012년 3월호에서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작은 크기로 얼굴 사진만 작게 들어가게 되었다.
러브베리는 일시적으로 AKB48 효과를 보면서 지진 후 경쟁지들이 판매부수가 1만부 가까이 하락하는 와중에도 평균 판매부수가 2300부 정도 하락하는 수준으로 하락세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AKB48을 이용해 지면을 꾸리면서 기존 전속 모델들의 비중이 줄어들고, 기사 내용도 기존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 독자가 급속히 이탈, 2011년 하반기에 와서는 겉잡을 수 없이 판매부수가 하락하게 됐다. 여기에는 2011년 9월부터 투톱 중 한 명이었던 미키 호노카를 비롯해 에버그린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모델 4명이 경쟁지인 '피치레몬'으로 전격 이적한 것이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다시 말해, AKB48 멤버들이 표지에 나오니까 AKB48의 오타쿠들이 잡지를 사주면서 일시적으로 판매부수 하락을 막을 수 있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기존 독자층의 이탈을 가속화 시켜 결과적으로는 잡지가 휴간되어 버리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 2011년6월호부터 갑자기 AKB48 계열 멤버들이 표지를 독점하기 시작한 러브베리 © JPNews | |
러브베리의 휴간과 함께 열린 전속 모델들의 졸업식(러브베리 모델 졸업식)에 어쩐 일인지 표지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던 SKE48의 마츠이 쥬리나와 AKB48의 마에다 아미는 참석하지 않았다. 졸업식 행사는 지금까지 러브베리를 위해 고생해주었던 전속 모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한 일종의 위로식 같은 것으로 팬을 초청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이벤트는 아니었다. 이 졸업식에 두 사람이 참석하지 않는 것도 상당한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마에다 아미 같은 경우는 개인 스케줄이 거의 없는 멤버이기 때문에 굳이 못 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 러브베리 전속 모델들의 졸업식 이벤트. 표지를 독점하던 AKB48계열 멤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 JPNews | |
러브베리의 휴간 과정을 보면, 사실 AKB48의 운영 측이 그렇게까지 몹쓸 행동을 했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엄밀히 말해서 판매부수 하락을 막기 위한 자충수를 둔 것은 AKB48이 아닌 러브베리의 편집부 측이었고, 겨우 반년 남짓 전속 모델 활동을 했던 AKB48과 SKE48의 멤버에게는 수년 동안 전속 모델로 활동을 했던 다른 아이들 만큼의 애정이 없을 수도 있다. 어쩌면 더 빨리 휴간했을지도 모를 잡지를 AKB48이 어떠한 형태로든 수명을 연장 시켜 준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독자와 업계 관계자의 입장에서는 AKB48이 끼어드는 방식도, 그 결과도 쉽사리 납득할만한 것이 못 된다는 점이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러브베리의 휴간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은 AKB48의 인기가 생각하는 것만큼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 일본은 AKB48이 연일 CD 판매 기록을 갈아 치우고, TV만 틀면 AKB48의 멤버가 나오지 않는 프로그램이 없을 정도로 가히 일본의 미디어, 광고, 출판 시장을 장악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파워와 확장력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너무 문어발처럼 영역을 확장하다보니 많은 부작용들이 나오고 있다. 대부분이 러브베리처럼 전성기에 비해 떨어지는 실적을 회복하기 위해 AKB48을 투입했다가 오히려 기존 소비자층이 이탈해서 한번에 무너져버리는 패턴이다. AKB48을 기용하면 오타쿠들은 상식 이상으로 구매를 하겠지만, 기존에 구매하던 소비자층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불만을 느껴서 이탈해 버리는 것이다. 현대 마케팅의 기본인 CRM을 완전히 무시해버린 결과다.
사실 이렇게 되어버리는데는 AKB48의 구조적인 문제가 바탕에 딸려 있다. AKB48이라는 브랜드는 엄청나게 인기가 있지만, 현재 AKB48의 정식 멤버, 연구생, 자매 그룹인 SKE48, SDN48, NMB48, HKT48까지 소속된 멤버를 모두 합치면 200명을 훌쩍 넘어 버린다. 매일 전용 극장에서 공연을 한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인원과 그 인원을 유지하는 시스템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일거리가 있어야만 한다. 불경기인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AKB48의 일거리가 늘어나는 만큼 누군가는 일거리를 빼앗겨야만 한다.
보통 톱스타의 경우 일류 기업의 광고에는 출연하지만, 동네 떡볶이집 광고에 출연하지는 않을 것이다. 톱 스타는 1명의 스케줄 소화량과 그가 받아야 할 개런티의 수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AKB48은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멤버들이 여러 기획사에 분산되어 소속되어 있기는 하지만 멤버의 그룹 내에서의 위치에 따라서 스케줄의 여유와 개런티는 큰 편차를 보인다.
실제로 오퍼를 넣는 가격을 기준으로 하자면 최고 인기 멤버의 경우 하루 이벤트 출연을 위해 250만 엔을 개런티로 주어야 한다. 물론 일정은 꽉 차 있기 때문에 거의 반년 전에 오퍼를 넣어야 한다. 총선 순위 40위 정도인 멤버는 하루 이벤트 출연 개런티가 60만 엔 정도다. 스케줄은 많이 비어 있기 때문에 주말 이벤트가 아니라면 한달 정도 전에 오퍼를 넣어도 가능하다. 그보다 더 아래쪽 멤버로 가면 개런티는 한 없이 낮아지는데, 그때부터는 너무 개런티가 낮아서 한 번에 여러 명을 묶어서 불러야만 한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그다지 큰 비용을 쓰지 않아도 AKB48이라는 브랜드를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보통은 지불할 수 있는 개런티에 맞는 다른 연예인을 써도 될 곳에 기왕이면 요즘 화제의 AKB48을… 이라는 기획이 성립하게 된다.
일본 연예계는 스폰서 기업의 규모, 방송국의 규모, 전국 네트워크냐 로컬이냐, 인디냐 메이저냐 등에 따라서 시스템이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는 형태의 시장이었는데, AKB48이 이런 구도를 좋은 의미로 재편하고 있고 나쁜 의미로 무너뜨리고 있는 셈이다. 효과를 측정해서 기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인기가 있으니까 일단 AKB48을 쓰라는 암묵적인 강요가 계속 되는 모습을 보며 이 버블이 끝난 뒤의 모습이 쉽사리 상상이 되지 않는다.
글 | 김상하(프리 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