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 할 때 삭제하시죠!"
이건 조폭의 말이 아니다.
최근 일본에서 욘사마(배용준) 이래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모 배우 소속사 실장이라는 사람의 말이다.
어제, 도쿄를 집어삼킬듯한 장대비가 쏟아지는 오후 내내 제이피뉴스 편집실은 서울에서 걸려온 전화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류스타의 매니저로부터 온 전화에 기사를 쓴 담당기자가 응대했다. 자신이 맡고 있는 배우에 대한 기사를 '삭제' 해달라는 요구였다. 당연히 담당기자가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 매니저는 일본여성주간지 '여성세븐'에 나온 그 배우에 대한 기사가 사실이 아니라고 항변했다. 그래서 기자가 다시 물었다.
"그럼 여성세븐에는 항의를 했나요? 정정기사를 내달라고 요청을 했나요?"
하지만 그 매니저는 막무가내였다. 무조건 기사를 삭제해달라고 요구했다. 다시 담당기자가 말했다. 기사의 진원지인 '여성세븐'에서 정정기사를 내면 그대로 소개를 하겠다고. 그리고 기사내용이 정 마음에 걸린다면 소속사의 입장을 그대로 보도해 줄 수 있다고 역으로 제이피뉴스가 제안했다.
얼마 후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실장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 이로부터였다. 역시 매니저와 똑같이 기사를 삭제해달라는 요구전화였다. 담당기자가 그럴 수 없다고 버티자 그 실장은 편집장을 찾았다. 그래서 공은 내게로 넘어왔다.
"전화 바꿨습니다."
"그 기사 삭제해주시죠."
"그렇게 못합니다."
"아니 그 기사 내용이 사실이 아닌데 왜 삭제가 안된다는 거죠?"
"그럼 여성세븐에 기사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직접 항의를 해보셨나요? "
"그거는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까 먼저 기사부터 삭제해 주세요."
"그건 안됩니다. 우리가 오보를 했다든가 기사내용이 잘못됐다면 그건 당연히 삭제를 해야죠. 하지만 저희 제이피뉴스가 쓴 건 여성세븐이라는 주간지에 000라는 배우에 대한 기사가 이런 내용으로 보도되었다는 소개 기사기 때문에, 무조건 소속사의 요구로 삭제할 수는 없습니다. "
"여성세븐에 난 기사가 사실이 아니라니까요!"
"그럼 저희에게 이렇게 요구하기 전에 먼저 여성세븐에게 항의를 하세요!"
"삭제를 해달라니까요."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 메인페이지에서 내려드릴 수는 있습니다."
"아니 왜 삭제가 안된다는 거예요? 당신들이 확인했습니까?"
"그래서 저희들도 일본여성주간지에 한국배우가 이런 내용으로 기사가 났다는 소개기사로 보도한 겁니다. 저희 제이피뉴스는 일본전문 매체라서 한국과 한국인에 관한 기사뿐만 아니라 간 나오토 수상이라든가 일본정치인이 일본언론에 소개돼 화제가 되면, 이런 내용으로 보도가 됐다라고 있는 그대로 소개를 합니다. (이번 한류스타) 소개기사도 그 일부분이구요. 또 그렇게 하는 것이 독자들에 대한 제이피뉴스의 의무이자 권리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소속사의 요구로 무조건 기사 자체를 삭제할 순 없습니다."
"무조건 삭제해주세요!"
"안됩니다."
"좋은 말 할 때 삭제하세요!"
"지금 협박하시는 겁니까?"
"삭제하세요!"
"저희가 쓴 기사에 어떤 오류나 왜곡된 내용이 없기 때문에 절대로 삭제할 수가 없습니다. 대신 여성세븐 편집부에 찾아가 그 기사에 대한 사실확인 취재를 한 뒤 후속 기사를 쓸수는 있습니다."
"삭제하라니까요!"
"기사 내용에 오류나 왜곡이 있다면 모를까 소속사의 압력 때문에 기사를 삭제할 순 없습니다. 이건 제이피뉴스의 독자들에 대한 신뢰문제 때문이라도 무조건 삭제는 절대로 안됩니다."
문제의 발단은 어제 제이피뉴스가 내보낸 '여성세븐'의 소개 기사 때문이었다. 최신호 '여성세븐'에서는 톱뉴스로, 요즘 일본에서 제2욘사마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J배우에 대해서 기사를 실었다. 내용은 지난 8월 17일부터 5일간 J배우가 일본을 방문했는데, 그를 밀착취재한 내용이었다.
기사 내용은 J배우가 일본방문 나흘째인 20일 심야 12시경, 50여명이 참가하는 파티에 참가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J배우는 특히 한국어를 구사하는 미인과 친밀스럽게 대화를 나눈 뒤, 새벽 3시쯤에 J배우와 스탭, 그리고 예의 한국어를 구사하는 그 두명의 미인과 함께 나갔다는 것이다.
이튿날 점심시간에도 J배우와 그 여성은 함께 했다고 한다. 그래서 J배우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팬들사이에서는 "혹시 여자친구가 아닐까?"하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여성세븐'은 이를 톱뉴스로 보도했다.
한편, 제이피뉴스에서는 J라는 배우가 현재 일본에서 제2욘사마 열풍을 일으키고 있고, 또한 한류스타가 대중적인 일본 여성주간지에 어떻게 보도되고 있는지, 한국독자들도 알아야 했기에 정보차원에서 그대로 소개를 했다.
<앞부분 생략 ...일본 내 과열된 보도 경쟁때문인지 일부주간지에서는 000의 5일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여성세븐은 "모델스타일의 미녀 둘과 친밀한 만남을 가졌다"고 보도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담당기자는 나름대로 일본주간지들의 과열된 보도경쟁을 전제로 하면서, '여성세븐'에 난 기사를 간략하게 소개를 했다.
바로 이 기사를 J배우 소속사는 매니저와 실장이 번갈아가며 전화를 해서는 '좋은말 할 때 삭제하라'는 협박까지 서슴치 않으며 요구를 했다. 담당기자가 근심어린 표정으로 걱정을 했다.
"이제 다음부터는 J배우 취재하기가 어렵겠는데요."
"그렇다고 압력도 모자라 협박에 굴복해 삭제할 순 없지. 우리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이런식으로 압력 때문에 기사를 내리다가는 기사 모두 내려야 될 거야. 우리가 오보나 일방적으로 치우친 왜곡기사를 썼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는 한 제이피뉴스는 절대로 압력에 굴복 못해!"
문제의 기사를 쓴 담당기자의 말대로, 앞으로 J배우에 대한 직접적인 취재를 소속사로부터 거부당할 지 모른다. 하지만 내 신념에는 변함이 없다. 잡지기자 생활 1년, 그리고 한일 양국에서 프리랜서로 약 30년 가까이 기자로서, 작가로서 활동해오는 동안 압력 때문에, 협박 때문에 기사를 내린 적이 없다.
대신 85년도에 입양아를 취재하기 위해 내가 직접 모 아동복지 단체로부터 입양아 3명을 미국까지 에스코트하면서 한달간 미국 전역을 돌며 입양아 취재를 한 적이 있는데, 그만 모 잡지사가 그 기사를 보류해버렸다. 이유는 북한이 좋아하는 기사여서 안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난 한달간, 수십명의 미국 입양아를 눈물 콧물 흘리면서 만나 취재한 대장정 르포였는데도 불구하고, 전두환 정권에서 싫어한다고 보기좋게 장문의 기사가 폐기처분당하는 굴욕을 당했다. 그때 미국 전역에서 만난 입양아들은 기다렸다는듯 내게 분노를 쏟아냈었다. 자신들은 세번 조국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부모로부터 1번, 2번째는 한국사회가, 3번째는 조국이 자신들을 버렸다고 '한국'을 원망하고 증오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 자신들이 얼마나 차별을 받고 사는지, 어떤 입양아는 자신을 가정부 대용으로 일을 시키기 위해 입양했다고 울분을 토로했다.
그 후, 독자들의 선호에 따라 내기사에 대한 비판이나 비난을 받았을 지언정, 그렇다고 압력에 의해 기사를 내린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제이피뉴스도 마찬가지다.
제이피뉴스는 일본전문 매체다. 일본・일본인에 관해서라면 신분귀천에 관계없이, 이념의 좌우 관계없이 그들의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래서 우익 정치인에 대한 기사도 그대로 내보내고, 좌익정치인의 이야기도 아무런 여과없이 그대로 보도한다. 일본언론에 비친 한국인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좋은 내용이든 나쁜 내용이든 이 역시 여과없이 그대로 소개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에는 일본에 대한 뉴스는 우리 입맛에 맞는 내용 위주로 보도해왔다. 그래서 대부분 반일적인 내용의 뉴스만이 양산돼 왔었다. 하지만 독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오늘날 독자들의 지적 수준은 언론매체들을 훨씬 능가한다. 기사에 대한 판단은 독자가 한다. 기자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현상이나 사실을 보도할 뿐이다.
2년 전, 일본사진주간지 '프라이데이'에서 피겨스케이팅선수 김연아에 대한 묘한 의상 사진을 보도한 적이 있다. 제이피뉴스는 이를 그대로 소개했다. 다른 메이저 매체도 보도했다. 얼마후 소속사에서 전화가 빗발쳤다. 그 기사를 내려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난 서울에 있었다. 기사를 쓴 담당기자로부터 어떡하면 좋으냐고 시도 때도 없이 전화가 걸려 왔다. 나중에는 소속사 사장으로부터 다른 매체는 모두 기사를 내렸으니 이제 제이피뉴스만 내리면 된다라는 전화가 왔다고 했다. 댓글에는 '만약 김연아가 캐나다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못따면 제이피뉴스가 책임질 것이냐'는 비난이 폭주했다.
하지만 나의 결론은 '절대불가'였다. 훗날 김연아는 캐나다 올림픽에서 국민들의 염원대로 금메달을 땄다. 독자들이 만약 김연아가 금메달을 못따면 제이피뉴스가 책임질거냐 라는 책망을 다행히(?) 듣지 않게 됐다.
한국인은 일본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 된다. 자신들이 좋아할 뉴스만 접해서는 정확한 일본을 알 수가 없다. 일본과 일본인이 한국과 한국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또 어떤 이미지로 한국과 한국인이 일본인에게 비쳐지는지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일본 뉴스를 접해야 한다. 또한 '있는 그대로'의 일본뉴스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독자 몫이다.
그래서 내가 엄청난 개인적 고통과 경제적 출혈을 하면서까지 제이피뉴스를 만든 이유다. 때문에 절대로 불합리한 압력과 협박에 굴해 기사를 내릴 순 없다. 설사 두번다시 J배우를 취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언론의 정도(正道)를 망칠순 없다.
약 한달전, 이 순재 원로배우가 일갈한 적이 있다. 톱스타랍시고 선배배우들을 늘 기다리게 한다고. 그런 성숙지 못한 행동은 지양해야 한다고. 그때 J배우 매니저가 두번다시 그런 일이 없도록 조심하겠다고 즉각 사과했다.
그런데 어쩐일인지 제이피뉴스에는 처음부터 고압적인 태도로, 그것도 일방적으로 기사를 삭제하라고 명령조로, 시비조로 내내 요구해왔다. 나중에는 '좋은말 할 때 삭제하라'는 협박까지 서슴치 않았다. 이 같은 태도를 똑같이 '여성세븐'에게도 했는지 묻고 싶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제이피뉴스는 늘 '있는 그대로'의 일본뉴스를 전하는 매체다.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최근 한류스타들의 소속사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기사가 나가면 취재 자체를 봉쇄한다고 일선기자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언제부터인가 소위 '잘나가는 한류스타'들에게 인기가 '권력'으로 변해버렸다.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는 '취재불가'를 무기로 협박하기 일쑤이며, 약한 매체일수록 이 약발은 쉽게 먹혀든다. 때문에 연예담당기자들을 만나면, 누구누구 스타는 조금이라도 안 좋은 기사가 나가면 그다음 취재자체가 봉쇄된다 라는 말이 떠돌아 다닌다.
부디 J배우 소속사는 이같은 어리석은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이 기사도 차라리 소속사가 가만히 있었으면 그냥 조용히 묻혀 버릴 것을, 잘나가는 '한류스타'라는 그 오만이, 그 자만이 무리수를 두고 말았다.
다른 한류스타들도 J배우의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았으면 싶다. 아니면 오얏나무 아래서는 신발끈도 매지 말라는 말이 있듯이, 팬들과 일본언론이 일거수일투족 감시아닌 감시를 하는 줄 뻔히 알면서 미리 조심을 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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