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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야스쿠니재판, 기각당한 황당한 이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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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합사 재판 현장, 그리고 판결문 통해 본 황당한 기각 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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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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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청객: "무슨 소리냐", "설명해라!!" 경비원: "조용히 해주십시오!" 21일 오후 3시, 가스미가세키 도쿄 지방재판소에서 '야스쿠니 신사 무단합사 철폐 소송' 1심 판결이 내려졌다. "원고 측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소송비용은 원고측 부담으로 한다" 재판관의 말은 이 두 마디가 전부였다. 2007년 2월 26일 이 재판이 시작된 이래, 많은 이들이 오랜 기간 힘을 쏟아온 재판의 1심 선고는 불과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시간의 짧고 긴 것을 떠나, 왜 이 같은 판결이 나왔는지 직접적 설명조차 전혀 없었다. 갑자기 조용했던 재판정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도쿄지방재판소 재판부의 기각 판정에 분노한 방청객 일부가 야유를 보낸 것이다. "이유를 설명하라", "말이 되냐", "똑바로 해라"는 외마디 외침이 재판정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하지만 재판관은 이 같은 외침을 뒤로 한 채, 황급히 재판정을 빠져나갔다.
▲ 원고 측 합사 피해자 유족 중 한 명인 윤옥중 씨 (c) JPNews/이지호 | | 원고 측 합사 피해자 유족 중 한 명인 윤옥중 씨의 얼굴에는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일본 군부에 의해 강제 동원돼 노역하던 중 사망했고, 지금은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돼 있다. 생전의 아버지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죽어서도 아버지를 빼앗긴 것이다. 그녀는 "이게 뭐냐, 왜 기각이냐. 왜 기각인지 말을 안하느냐. 말도 안돼"라며 연신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았다. 방청객석에서도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100여 명의 방청객 대부분은 이 재판을 위해 지금껏 힘써온, '강제연행 기업책임추궁재판 전국네트워크'를 비롯한 여러 일본 시민단체 구성원들이었다. 이들은 이번 재판 과정에서 자료수집 등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힘을 쏟아온 이 재판의 1심 선고가 그렇게 간단히 끝나버리자, 이들은 너무도 허망해 했다. 한 방청객은 "어떻게 그렇게 아무런 직접적 설명도 없이 선고만 딱 하고 들어가느냐"며 분개했다.
▲ 야스쿠니 무단합사 철폐 소송 변호인단 단장 오구치 변호사 (c) JPNews/이지호 | | "최하, 최악의 판결이었다" 원고 측 변호인단 단장인 오구치 변호사의 말이다. 그는 3시 30분, 재판소 정문에서 열린 보고회를 통해 재판결과가 너무도 터무니없는 판결이었다고 개탄했다. "한 사람의 일본인으로서 죄송스럽다. 그러나 아직 최종 판결은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2,3심이 남아 있다. 앞으로도 원고 분들과 더욱 힘써 나갈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태평양전쟁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 장완익 변호사는, 도쿄지방재판소 근처 변호사 회관에서 열린 특별보고회에서, "충분히 예상된 판결이었다. 지금까지 일본 내 일제 강점기 관련 피해자 소송에서 이긴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고 밝히며, "아직 2심, 3심이 남아있다. 아직 다툴 기회가 많으니 희망을 가지자"고 언급했다. 또한, 같은 '태평양전쟁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의 집행위원장인, 민족문제연구소 김민철 씨는, "상식 이하의 판결 내용에 분노가 느껴지기보다는 허무함이 큰 것 같다. 이 같은 판결을 수없이 봐 왔기 때문이다. 때문에 특별히 절망할 것도 없다. 그러나 실망이 큰 것은 사실"이라며 크게 아쉬워했다.
▲ 원고 측 강제합사 피해자 유족 (c) JPNews/이지호 | |
▲ "부당한 판결이다" (c) JPNews/이지호 | | ▼야스쿠니합사 철회 소송?
야스쿠니 신사는, 메이지시대 이후 천황과 황족을 제외한 일반 국민을 국가가 직접 신으로 모신 유일한 신사다. 야스쿠니 신사의 신이 되기 위한 단 하나의 조건은 '천황을 위해 전사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전범재판에서 전범자로 몰려 사형된 A급 전범 도죠 히데키를 비롯, 1068명의 전범자도 야스쿠니에 합사됐다. 또한,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이 자행한 침략전쟁을 대동아 성전으로 추앙하고 있으며, 일본 군국주의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그런데, 이 야스쿠니 신사에는 일본인 외에도 2만 1천여 명의 한국인과 2만 8천여 명의 대만인 희생자가, 유족들의 동의도 전혀 구하지 않은 채 강제로 합사돼 있다. 한국인 희생자들이 천황을 위해 충성을 다한 충신인 양, 일본국가가 떠받들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합사된 피해자들의 유족들은 인격권을 침해한다며 합사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야스쿠니 신사 측은 "합사취하에 응할 수 없다. 전사한 시점에는 일본인이었기 때문에 사후에도 일본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합사 중단 요구를 거부했다. "일본인으로 전투에 참가해 사망한 이상, 야스쿠니 합사는 당연하다는 것"이다. 한국인 희생자의 유족들은 2001년부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야스쿠니 합사 취하를 요구하는 ‘재한군인, 군속재판’을 벌였다. 일본국가를 상대로 한 과거사 청산의 종합판이라 할 수 있는 이 재판에서, 야스쿠니 문제만 별도로 분리해 2007년 2월 26일, 일본 국가 및 야스쿠니 신사를 피고로 하는 야스쿠니 합사 철회 소송을 제기했다. 이 재판에는 야스쿠니 합사 생존자 1명과 유족 10명이 원고로 참여했다. ▼1심의 원고 청구 기각 판결, 무엇을 근거로 하고 있나?
(1) 야스쿠니 합사는 종교의 자유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신앙을 가지고 있는 종교를 통해 여러 명을 추모하고 그 영혼의 안락을 도모하는 등의 종교적 자유는 보호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가족의 경우, 자신들의 신조에 기초한 종교적 방법에 따라, 사망한 가족 구성원의 위령행위를 할지 여부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이 같은 개인의 자유를 위해 종교에 대한 법적 규제, 손해배상 청구 등이 이뤄질 경우, 반대로 종교의 자유를 크게 침해하게 된다고 해석했다. 두가지 자유가 상충하는 가운데, 어느쪽도 존중해야 하지만, 법적으로 제한할 경우, 다른 자유를 침해하게 되기 때문에 법적인 조치로 이어질 수 없다는 논리다.
종교의 자유가 강제적이고, 부당한 이익을 취득해 자신의 종교의 자유를 방해하지 않는 한 참고 넘어갈 수 밖에 없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자기 신앙과 맞지 않는다하여, 다른 자의 신앙에 기초한 행위에 대한 불쾌감 내지 혐오감 등의 종교상 감정을 법적 이익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2) 생존한 김희종 씨를 합사시킨 것은 행정상 오류일 뿐
전쟁에서 살아남아 미군의 포로가 됐던 김희종 씨를 사망했다고 단정,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시킨 것이 프라이버시권 침해가 아니냐는 원고 측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야스쿠니 신사가 영혼 명부를 유족을 제외한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지 않다"며 프라이버시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편, 살아있는 이를 합사시킨 점은 객관적으로 중요한 정보를 잘못 전달한 이상, 그 사람의 감정을 해하는 것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수 많은 사망자의 정보처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과실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며 행정상의 오류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요컨대, 행정상의 단순한 오류인데다, 비공개로 합사가 진행됐기 때문에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인격권 및 인격적 이익을 침해하는 위법적 행위는 아니다"라는 것이다.. (3) 원고 측의 정교(政敎) 분리 위반 주장? "연계했지만, 정교 분리 위반 아냐"
원고 측(강제합사 피해자 유족)은 피고국, 즉 일본 정부가 정교분리원칙(헌법20조 3항, 89조)을 위반해 합사자 정보를 피고 야스쿠니 신사에 무단으로 제공했고, 군인군속관계 명부를 한국 정부에 전달해 원고들의 인격권과 인격적 이해를 침해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원고 측 주장에 대해, 판결문은 합사 과정에서의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 신사간 연계사실은 명백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정교 분리 위반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가 합사 대상자 명단을 작성한 것은 사실이나, 이는 야스쿠니 신사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단순한 '행정 서비스'였다는 것이다. 또한, 어디까지 합사 여부 결정권은 야스쿠니 신사에 있었으며, 독자 권한을 가지고 움직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판결문은, 일본 정부가 지원, 간섭, 혹은 압박 등의 목적으로 야스쿠니 신사의 합사를 도왔다고 볼 수 없고, 일본이라는 국가의 정보제공 행위에 의해 합사에 대한 야스쿠니 신사의 자율성이 상실됐다고 보긴 어렵다고 밝히며, 정교 분리 위반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참을 수 없어서 제소했는데, 참을 수 있을 정도의 인격권 침해라니..."
오구치 변호사는 오후 4시 기자회견에서 "넌센스다. 최악의 판결, 저질 판결이다"라며 이번 재판 결과를 평가절하했다. 그는 "매우 부당한 판결이다. 일본인으로서 어떻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심정이다", "전전, 전후 기간동안의, 천황제로 인한 피해에 대해 한국인의 거부감, 혐오감이 드는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며 착잡한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 야스쿠니 무단합사 철폐 소송 (c) JPNews/이지호 | | 그는 이번 판결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조목조목 언급해 나갔다. "이번에 김희종 씨의 경우를 주목했다. 살아있는 사람을 죽은 이로 취급한 무례에 대해 어떤 판결이 나올지 본 것이다. 참을 수 없어서 소송을 걸었는데 참을 수 있는 정도의 인격권 침해라니 이런 넌센스가 따로 없다" 그는, 합사된 이의 명부는 기본적으로 수정할 수 없다는 야스쿠니 신사의 방침에 입각해, 그냥 '참으라'고 주장하는 재판부의 판결에 문제가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번 재판 결과는, 일본 제국주의가 행한 정책을 그대로 이어 받아 처리하고 있다는 것을 일본이 완전히 인정하는 꼴"이라며 재판결과를 크게 비판했다. 야스쿠니 합사에 대해 "식민지 정책으로 강제 동원을 당해 전사했다는 사실을 유족에게도 말하지 않고 마음대로 합사했다. 또한,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이 일으킨 전쟁을 대동아 아시아 해방 전쟁이라며 찬성하는 입장이다. 전후 일본사회에 있어서 꼭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오구치 변호사는, 야스쿠니 신사의 "당시 일본인이었으므로 합사했다"는 주장에 대해 서도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일본은 두 가지 견해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전후의 전쟁 피해자 보상에 있어서, 한국인 전사자를 외국인이라고 그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으면서, 합사할 때는 일본인이라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더구나, 정확한 수치 통계조차 유족에게 전달하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진실 위에서 진정한 의미의 한일 우호증진이 이뤄져야 한다", "원고 여러분들도 여러번 일본에 오셔서 재판하시고, 또한 돌아가신 분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해달라. 나도 여러분들의 분노를 이어 받아 앞으로도 계속해서 싸워나가겠다"고 밝혔다. ▼ 긴 싸움이 될 야스쿠니 재판 "긴 시야로 보면, 분명 변화있다" 이번 판결 결과는 어느 정도 예상된 수순이었다. 앞에서 장완익 변호사가 언급했듯이, 지금까지 일제 강점기 피해와 관련한 재판에서 이긴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2009년 10월 29일 재한군속군인 재판 때도, 이번 재판처럼 판사가 단 두마디만을 남기고 재판정을 빠져나갔다. 결국 이번 재판도 그 같은 재판의 연속선상이었던 것이다. 다만, 언제나처럼 '혹시나'하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어김없이 '역시'로 끝났다. 판결에 있어서도, 상식적으로, 사회통념적으로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야스쿠니 신사의 수정 불가 방침과 명단 비공개를 이유로 들며, 생존자인 김희종 씨의 합사를 지금도 중단하지 않은 점과, 그의 합사가 '참을 수 있는 정도'의 인격권 침해라는, 전혀 객관적이지 않은 주관적 잣대를 들이댄 점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주관적 잣대를 제시하면서 '객관적'이라는 단어가 판결문에 자주 나오는 것이 흥미롭다. 야스쿠니 신사 문제는 결코 간단치 않다. 전전, 전후에 걸쳐 이어지고 있는 천황제, 그리고 창씨 개명 문제(창씨개명된 이름으로 합사된다.) 등이 복잡하게 연결돼 있다. 이 같은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에 야스쿠니 문제는 쉽게 해결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천황을 위해 몸바친 자'만이 합사된다는 규정에서 알 수 있듯, 야스쿠니 신사는 천황제의 상징 그 자체다. 때문에 천황제가 존속되는 한 야스쿠니 신사는 영원히 건드릴 수 없는 성역으로 남을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 또한, 합사 취소 요구에 대한 판결 이유가 '대단히 합리적이지 않은 점'으로 볼 때, 아무리 타당한 근거를 제시한다 하더라도 재판에서 승소할 가능성은 지극히 적다. 한마디로 현재 단계에서는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물론, 재판에 관여하는 한일 양국의 시민단체와 재판을 돕는 지원자들은 이 같은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20여 년 가까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일처럼 시간과 열정을 다하는 일본인들이 있어 의미가 전혀 없는 재판은 아니다. 왜냐하면 재판을 함으로써 '은폐'에 관한한 '대단한 소양과 소질을 가진 일본정부'를 상대로, 비록 재판에는 패소할 지라도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길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 시민단체 'NO 합사소송을 지원하는 모임'의 사무국장 야마모토 나오요시 씨는 1993년부터 야스쿠니 합사 문제를 비롯한 일제 강점기 피해자 지원을 위한 활동에 나섰다고 한다. 그는 이번과 같은 판결이 처음은 아니라며 매우 덤덤해했다. 20여 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지켜봐온 그로서는 이번 판결이 그리 낯설지 않다는 얘기였다. 기자가 그에게 "결과가 나쁘다. 매번 이런 결과인데 지치지 않느냐"고 물었다. "판결 하나하나를 보면 그렇다. 하지만 긴 시각으로 보면, 분명 변화는 나타나고 있다. 지금은 판결에 대한 기대라도 조금 하지 않느냐. 옛날에는 재판에서 이긴다는 발상조차 못했다" 고 말했다. 이 조금씩 '변화한다'는 것을 위해 무려 20여년 가까이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국인 피해자와 일본시민단체, 그리고 지원자들이 싸워왔다. 웬만한 신념과 의지가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때로는 지칠만도 한데 그런 내색조차 비치지 않는다. "우리 일본인들이 해야 하는 일을 당연히 할 뿐입니다. 솔직히 패소에는 그렇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이렇게 재판을 통해서라도 과거 일본이 저지른 역사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소송을 하는 겁니다. 특히 연로하신 분들이 많아, 그분들이 살아 계실 때 과거 자료를 채증해야 하는데, 바로 이런 재판이 없으면 그나마 자료 모으는 것도 불가능해집니다. 더욱이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관심이 멀어져가기 때문에 애로점이 많습니다." 이말을 하는 이는 '강제연행 기업책임추궁 재판정보 네트워크' 야노 히데키 사무국장. 야노 사무국장은 앞의 야마모토 사무국장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일제강점기 시절 강제연행, 징용을 당해 일본에 끌려와 강제노역에 종사한 한국인을 위한 지원도 20여년째 해오고 있다. 그래서인지 '일본이 사무치게 밉다'며 지나가는 일본인조차 쥐어박고 싶을 때가 있다는 원고 측 할머니들조차도, 자신들의 재판을 성심성의껏 도와주며 같이 싸워주는 이들 일본인들에게만큼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을 도와주는 일본인 시민단체는, 일본사회 안에서는 지극히 소수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과거 한일역사에 대한 올바른 신념과 의지는 그 무엇보다도 뜨겁고 강하다. 때문에 '혹시나' 하는 일말의 '기대'조차도 큰 변화라는 야모모토 사무국장의 말처럼, 역사의식이 살아있는 일본인인 있는 한, 언젠가는 일본정부의 왜곡된 역사관도 조금씩 달라질지도 모른다.
▲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 이희자 씨. 원고 측 합사 피해자 유족5명 중 1명.(c) JPNews/이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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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7/22 [09:45] 최종편집: ⓒ jpnews_co_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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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
이걸말이라고 |
11/07/22 [16: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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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최악 최하의 판결
이런 말까지 하고 싶진 않지만 아마도 당신네 재판부 사고방식이라면 자위대가 미친척하고 헌법 9조 수정하고 보통국가라며 대본영마냥 전쟁하자고 하면 끽 소리도 못하고 텐노반자위따위나 외치면서 전쟁터에 뛰어들어야 될거다
하긴 독도에 미사일이라도 떨어지면 어떡하냐라고 생각하는 당신네 국가 정치인들 생각하면 아주 불가능은 아닐거 같다
그러니깐 아직도 패전이 아니라 종전이라고 생각하지
인간성에 대한 모독이다 이건 진심으로 당신네 나라가 미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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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일본은 물론 한국에서도 관심이 멀어져가기 때문에 애로점이 많습니다."라는 말이 가슴에 사무치는 군요... 사람인지라 기억은 퇴색되기 마련인데 일본은 얼마나 긴 시간을 끌 속셈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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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한 자들 |
장쾌 |
11/07/23 [21: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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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왈가왈부할 필요도 못 느끼겠다. 사필귀정이라, 반드시 대가를 받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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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정부~ |
ㅉ ㅉ |
11/07/24 [1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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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 빨지나 말로 전방위적으로 이런 것들 요구해야지 뭐하는지 합사 취하 반대 정신대 할머니 보상 문제 탈취한 문화재 반환 요구 강제 징병 요구 지금 방사능 오염으로 민폐끼치는 국제배상, 독도 문제에 대한 유연하면서도 실리적인 전략 및 요구. 정말 지진으로 모두 가라앉아도 시원치 않을 악업을 쌓은 일본 뿌린대로 너희들 더 큰 절망이 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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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께서 33년생이신데 |
유희천사 |
11/07/24 [1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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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당시 할머니 어렸을 적의 일본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기가찹니다. 일본 위안부에 안끌려 갈려고 아무하고나 결혼시켜서 안끌려가게 하였고, 놋그릇이며 뭐며 다 뺏어가고, 논에 벼 심으면 벼 하나 뽑아서 곡식 한 알 한 알 다 세어보고 '이 논에선 얼마만큼의 양이 나오겠다.'하고 계산 때려서 죽지않을만큼만 남기고 다 뺏어가고... 뭐, 이것만 있는게 아닙니다. 성폭력이며 강간은 자주 있었고, 남자들은 전쟁군인으로 끌려가고, 잔인하기 까지도 했었고... 듣다보면 기가찹니다. 이런 파렴치하고 인간이하의 짓을 해온 강제식민전쟁시대를 대동아 해방전쟁으로 미화하는 일본이 정말 밉습니다. 이런거 받아주면 끝도 없이 소송이 들어올걸 알기에 조기에 막는거 다 아는데, 진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거지요. 이 업을 어찌하려는건지 정말 대책없는 일본정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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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은 일본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정의라고 믿기 때문에.. |
gg |
11/07/25 [0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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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상식(?)에서는 당연한 판결이죠. 일본은 정치, 경제, 사법 모두 이권으로 연계되어 있습니다. 정부의 의견을 무시하는 판결은 있을 수가 없죠. 그리고 일본의 무서운 점은 일본에 이익이 된다고 판단이 되면, 그동안 내부적으로 다투던 모든 감정 접어두고,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 일치단결한다는 점입니다. 설령 그것이 정의가 아니더라도요. 정의가 아니라면, 어떻게든 포장하고 꾸며서라도 정의로 만들려고 하는게 일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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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억울한 시모노세키 강제구금에 대해 재판도 못한채 원통해 한다 |
최초의인디언 |
12/01/23 [0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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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억울하게 강제구금 당하던 2007년 2월 ~ 그해 야스쿠니 합사 찰폐소송이 열리었군요. 나는 여전히 원통해합니다 재판을 해야합니다. 좀 도와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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